스탠드 밝기를 낮추고 야근을 하는 밤이 있다. 그런 날은 유독 눈이 뻑뻑해지고, 삼십 분만 지나도 미간에 힘이 들어간다. 색온도도 낮췄고 조도도 적당한 것 같은데 이상하다. 곰곰이 생각해보니 밝기를 최대로 켜놓은 날은 그런 적이 드물었다. 그래서 검색창을 열었다. 밝기를 낮췄을 때만 유독 눈이 피곤해지는 이유, 답은 LED 조명 플리커였다.
플리커는 조명이 눈에 보이지 않을 정도로 빠르게 깜빡이는 현상이다. 깜빡임 자체는 형광등 시절부터 있던 오래된 문제인데, LED 스탠드에서 유독 도드라지는 이유가 따로 있다. 그 이유를 원리부터 정리했다.
조명 플리커란 무엇인가
조명 플리커는 전기 신호를 따라 빛의 밝기가 초당 수십에서 수백 번 오르내리는 현상이다. 집에 들어오는 교류 전원은 1초에 60번 방향이 바뀌는데(60Hz), 이 전원을 그대로 받는 조명은 전압이 0에 가까워질 때마다 밝기가 함께 떨어진다. 방향이 바뀌는 만큼 밝기 골도 초당 120번 생긴다는 뜻이다.
문제는 이
가죽 다이어리를 처음 펼치면 표지가 얼마나 뻣뻣한지 책상 위에 세워만 둬도 저 혼자 스르륵 덮인다. 옆에 있는 다른 다이어리들은 아무리 눕혀놔도 펼친 자리 그대로인데, 새 가죽 커버만 자꾸 원래 모양으로 돌아가려 한다. 당신 책상에도 그렇게 자꾸 오므라드는 다이어리가 한 권쯤 있을 것이다. 길들이면 나아진다는 말은 들었는데, 그 길들이기라는 게 정확히 뭘 하는 과정인지는 아무도 설명해주지 않는다.
그래서 찾아봤다. 가죽 커버 노트는 왜 처음엔 뻣뻣하고, 그 브레이킹인(길들이기) 속도는 왜 제품마다 다른가. 답은 가죽을 만드는 태닝(무두질) 방식에 있었다. 같은 가죽 커버라고 불러도 콜라겐 섬유를 다루는 방법이 다르면 길들여지는 속도도, 심지어 길들여지는지 여부까지도 갈린다. 제조사 공개 자료와 태닝 공정 문헌을 종합해 정리했다.
가죽 커버 노트가 뻣뻣한 이유
가죽이 뻣뻣한 이유는 가죽을 이루는 콜라겐 섬유가 아직 촘촘하게 얽혀 있어서다. 가죽은 동물 피부의 콜라겐 섬유 다발이
기말 답안지를 채점하다가 샤프를 몇 번이나 눌렀는지 세어 본 적이 있다. 한 장에 노크 서너 번, 백 장이면 삼사백 번이다. 손가락이 아니라 리듬이 끊기는 게 문제였다. 채점 흐름이 뚝뚝 끊기던 어느 밤, 오토매틱 샤프라는 물건을 알게 됐다. 노크를 아예 안 눌러도 심이 계속 나온다는데, 처음 든 생각은 배터리라도 들었나 하는 것이었다.
답부터 말하면 배터리는 없다. 오토매틱 샤프는 필기할 때 손이 만드는 압력의 왕복을 노크 대신 쓴다. 이 글은 그 구조가 정확히 뭘 하는지, 오렌즈 네로와 파일럿 S30과 쿠루토가 다이브가 이 구조를 어떻게 다르게 구현했는지, 그리고 이 방식이 흔들이 샤프와는 뭐가 다른지까지 공개 자료를 종합해 정리한다.
오토매틱 샤프는 왜 노크 없이 심이 나오나
심을 내보내는 힘은 노크 버튼이 아니라 필기할 때 촉이 받는 압력의 왕복에서 나온다. 종이에 힘을 주는 순간 촉 안쪽 파이프가 아주 살짝 안으로 눌려 들어가고, 그 안의 스프링이 압축된다. 펜을 종
다이어리 지난주 페이지를 오늘 아침에 다시 펼쳤다. 손끝으로 종이를 쓸어보니 글씨 자리마다 오톨도톨한 골이 만져졌다. 볼펜으로 힘주어 쓴 자국이 그대로 눌려 박힌 것이다. 당신 다이어리에도 이렇게 눌린 자국이 한 페이지쯤 있을 것이다.
평량이 낮으면 자국이 남고 높으면 안 남는다는 말을 여기저기서 봤는데, 종이가 얇아서 그런가 싶어 포장을 뒤져 확인한 평량은 90gsm이었다. 딱히 낮은 숫자가 아니다. 종이 1제곱미터의 무게를 뜻하는 이 숫자가 볼펜 자국, 눌려서 생기는 자국이라는 뜻의 인덴테이션과 정확히 어떤 관계인지 스펙 자료를 뒤져 확인했다.
볼펜 자국(인덴테이션)은 왜 생기는가
볼펜 자국은 잉크가 아니라 압력이 만든다. 볼펜은 촉 끝의 작은 볼이 구르면서 잉크를 종이에 옮기는 구조라, 젤펜이나 만년필보다 필기 시 힘이 한 점에 몰린다(볼펜 볼 원리에서 이 볼이 어떻게 구르는지 다룬 적이 있다). 이 힘이 종이 섬유를 국소적으로 눌러 오목하게 변형시킨 흔적이 자국이다.
다이어리를 넘기다가 가름끈 끝이 붓처럼 풀려 있는 걸 발견했다. 어제까지는 멀쩡했다. 딱히 잡아당긴 기억도 없는데 실 몇 가닥이 삐죽 빠져나와 있었다. 당신 다이어리에도 지금 이렇게 너덜너덜해진 가름끈이 한 가닥쯤 있을 것이다.
책갈피 끈은 왜 유독 끝부분만 이렇게 풀리는가. 다이어리나 양장본에 꿰매어진 이 리본은 정식으로는 가름끈이라 부르는데(제책 공정에서 쓰는 용어다), 같은 리본이라도 소재와 마감 방식에 따라 풀림 속도가 완전히 달라진다.
책갈피 끈은 왜 끝만 풀리는가
리본이 풀리는 자리는 항상 자른 단면이다. 리본은 세로 방향의 날실과 가로 방향의 씨실이 교차해서 짜이는 좁은 직물인데, 가장자리(셀비지)는 실이 서로 감싸며 고정되도록 짜여 있어 원래 잘 안 풀린다. 문제는 원단을 원하는 길이로 자를 때 생긴다. 컷 라인은 날실과 씨실이 마주 물린 지점이 아니라 실이 그대로 노출된 채 잘리는 자리라서, 그 지점의 실 끝은 서로 붙잡아 줄 게 없다. 폴리에스터·나일론 같은
우산도 없이 나갔다가 갑자기 소나기를 만난 적이 있다. 가방 속 작은 수첩은 다행히 젖지 않았는데, 표지 안쪽을 보니 작은 글씨로 워터프루프라고 적혀 있었다. 종이가 물에 안 젖는다는 게 말이 되나 싶어서 뒤늦게 찾아봤다.
찾아보니 방수 노트라는 이름 아래 실제로는 서로 완전히 다른 물건들이 섞여 있었다. 어떤 건 종이에 코팅만 입힌 것이고, 어떤 건 아예 종이가 아니었다. 타이벡이나 스톤페이퍼처럼 원료 자체가 플라스틱과 광물인 소재도 있는데, 이름은 같은 방수라도 원리도 필기감도 완전히 다르다.
방수 노트, 종이인데 왜 물에 안 젖나
일반 종이는 펄프 섬유 사이 빈틈으로 물이 스며들어 젖고, 심하면 찢어진다. 방수 노트가 젖지 않는 이유는 크게 두 갈래다. 하나는 종이 표면에 물을 튕겨내는 코팅을 덧입히는 방식이고, 다른 하나는 아예 물을 흡수하지 않는 소재로 종이 자체를 대체하는 방식이다.
라이트인더레인 같은 제품이 앞쪽에 해당한다. 나무 펄프로 만든 보통 종이에 특수
서랍 정리를 하다가 몇 달 전에 사둔 포스트잇 뭉치를 발견했다. 반가운 마음에 모니터 옆에 붙였는데 몇 시간 만에 스르륵 흘러내렸다. 당신 책상 서랍에도 이런 뭉치 하나쯤 있을 것이다. 포스트잇 뒷면에는 접착제가 표면 전체에 발린 게 아니라 마이크로구체라는 작은 구슬 모양 입자가 듬성듬성 붙어 있다. 이 구조가 반복해서 붙였다 뗄 수 있는 이유이자, 시간이 지나면 헐거워지는 이유이기도 하다.
포스트잇 접착제, 마이크로구체란 무엇인가
포스트잇 뒷면의 접착제는 액체 풀처럼 면 전체를 덮는 방식이 아니라, 지름 수십 마이크로미터(1마이크로미터는 1000분의 1밀리미터)짜리 작은 구슬, 즉 마이크로구체를 성기게 한 겹만 뿌려 놓은 방식이다. 제조사 특허 문서(WO2009041920A1) 실험값 기준으로 마이크로구체 지름은 2125마이크로미터가 흔하고, 최적 범위는 1050마이크로미터로 잡는다. 다른 접착제 특허(US4855170)는 10~125마이크로미터까지 범위를 넓게 잡기도 한다.
며칠 여행 가방에 넣어 뒀던 만년필을 꺼내 첫 줄을 그었더니 잉크가 뚝뚝 끊겼다. 분명 캡을 끝까지 눌러 닫아 뒀는데도 이 모양이었다. 볼펜이었으면 새로 사면 그만인데, 만년필은 닙을 씻어야 하나 컨버터를 다시 채워야 하나 머릿속만 복잡해졌다.
캡을 닫아도 닙이 마르는 이유는 캡의 밀봉 구조 자체에 있다. 나사를 돌려 잠그는 캡과 눌러서 딸깍 닫는 캡은 밀폐력이 다르고, 그 안에 이너캡이 따로 있는지도 다르다. 그래서 밤 늦게 특허 문서까지 뒤졌다(원래는 캡 제대로 닫는 법만 확인하려던 것이었다). 어떤 구조가 왜 덜 마르게 만드는지 정리했다.
만년필 캡, 밀봉이 안 되면 왜 닙이 마르나
닙이 마르는 건 잉크 속 용매 성분이 증발하기 때문인데, 이 증발 속도를 좌우하는 게 캡 내부의 밀폐 정도다. 대부분의 만년필은 캡 안쪽에 있는 턱(숄더)이 펜 몸통(섹션) 끝에 맞닿으면서 닙 주변 공간을 막는 방식으로 밀봉한다. 별도 장치 없이 두 부품이 맞닿는 접촉면 하나가 밀봉의 전부인
회의가 길어지면 손이 심심해져서 볼펜을 딸깍거리게 된다. 몇 번 누르다 보면 옆자리 눈초리가 느껴진다. 그런데 얼마 전 만년필 뚜껑처럼 몸통을 돌려서 심을 꺼내는 볼펜을 손에 쥐어 보고서야, 이 흔한 딸깍 소리가 모든 볼펜의 기본값은 아니라는 걸 알았다.
노크 볼펜은 왜 누를 때마다 딸깍 소리를 내고, 트위스트 볼펜은 왜 그 소리가 안 날까. 궁금해서 특허 문서까지 뒤졌다. 답은 두 방식이 심을 고정하는 원리 자체가 다르다는 데 있었다. 노크식은 톱니와 하트 모양 홈으로 걸어서 고정하고, 트위스트식은 나사산으로 밀어서 고정한다.
노크 볼펜 원리, 딸깍 소리는 왜 나는가
노크 볼펜의 딸깍 소리는 버튼 아래 톱니(래칫)가 하트 모양의 캠 홈을 타고 넘어가면서 부딪히는 소리다. 버튼을 누르면 톱니가 캠 표면을 밀며 돌다가, 하트 모양 홈의 오목한 자리에 걸리는 순간 회전이 멈춘다. 이때 나는 충돌음이 첫 번째 딸깍이고, 다시 누르면 톱니가 그 홈을 벗어나 반대편 홈으로 넘어가면서
책상 서랍에 자료를 잔뜩 채워 넣었더니 어느 순간부터 열 때마다 끼익 소리가 나고, 끝까지 당기면 삐걱대며 걸리는 느낌이 들었다. 서랍장을 통째로 바꿔야 하나 고민하다가, 문제는 서랍 자체가 아니라 옆면에 붙은 레일일 수 있다는 걸 알게 됐다.
책상·수납가구에 쓰이는 서랍 레일은 크게 롤러형과 볼베어링형 두 가지로 나뉜다. 구조가 다르면 버티는 무게도, 소리도, 끝까지 당겨지는 길이도 달라진다. 제조사 공개 자료를 기준으로 두 레일의 차이를 정리했다.
서랍 레일 종류, 롤러형과 볼베어링형은 뭐가 다른가
롤러 레일은 나일론이나 플라스틱으로 만든 롤러 한두 개가 홈이 파인 트랙을 따라 구르는 구조다. 서랍 옆면과 가구 쪽 레일이 롤러 몇 개로만 맞닿아 있는 셈이다. 볼베어링 레일은 다르다. 서랍 쪽 레일과 가구 쪽 레일 사이, 보통 3단으로 겹쳐지는 레일 틈새마다 작은 강철 볼이 촘촘히 들어차 있다. 하나의 접촉점이 아니라 레일 길이 전체에 걸쳐 수십 개의 접촉점이 생기는 구조다
회사에서 서류 봉투 한 뭉치를 정리하다가 이상한 걸 발견했다. 어떤 봉투는 침을 발라야 겨우 붙고, 어떤 봉투는 손으로 꾹 누르기만 해도 딱 붙는다. 같은 서류 봉투인데 붙는 방식이 이렇게 다를 일인가 싶어 찾아봤다.
서류 봉투의 밀봉 방식은 크게 세 가지다. 물로 적셔야 붙는 방식, 누르기만 하면 붙는 방식, 벗겨내고 붙이는 방식. 셋은 접착제 자체가 다르게 움직이고, 그래서 보관했을 때 버티는 기간도 다르다. 제조사 공개 자료를 기준으로 정리했다.
서류 봉투가 침 발라야 붙는 이유
침을 발라야 붙는 봉투는 물에 녹는 접착제, 이른바 검물(gum)을 쓰기 때문이다. 합성수지와 덱스트린(전분에서 뽑은 접착 성분)을 섞은 것으로, 마른 상태에서는 아무 반응이 없다가 물기를 만나면 녹으면서 접착력이 생긴다. 이 접착제는 물풀이 종이를 붙이는 원리와 계열이 같다. 물에 녹은 고분자가 종이 섬유 사이로 스며들었다가 마르면서 굳는다.
이 방식의 장점은 보관에 강하다는 데 있다. 접착
몇 년째 쓰던 다이어리의 고무밴드가 어느 순간 헐거워졌다. 처음엔 표지를 야무지게 붙잡아주던 밴드가 이제는 손을 놓으면 스르르 벌어진다. 새 걸로 갈아볼까 하다가 문득 궁금해졌다. 이 고무밴드는 왜 늘어나기만 하고 원래 길이로 돌아오지 않는 걸까.
흔히 "고무가 삭았다"고 뭉뚱그리지만, 찾아보니 삭는 것과 늘어나는 것은 서로 다른 고장이었다. 다이어리 고무밴드가 헐거워지는 원리, 삭아서 끊어지는 원리, 그리고 요즘 늘어나는 실리콘 밴드가 라텍스보다 정말 나은 선택인지를 소재 자료를 기준으로 정리했다.
다이어리 고무밴드가 헐거워지는 이유
고무밴드가 헐거워지는 건 삭아서가 아니라 고분자 사슬이 늘어난 상태로 재배열됐기 때문이다. 고무줄 제조사가 정리한 용어로는 이 현상을 "영구변형(permanent set)"이라 부르고, 원인은 크리프(creep)라는 점탄성 거동이다. 고무를 이루는 긴 사슬 분자는 힘을 받아 늘어나면 원래 얽혀 있던 모양으로 완전히 돌아가지 않고, 새로운 배열로
다이어리에 스탬프를 찍고 바로 다음 장으로 넘겼다가, 앞장에 잉크가 그대로 옮겨붙은 적이 있다. 어떤 날은 손끝으로 문질러도 안 번지는데 어떤 날은 몇 분이 지나도 여전히 미끈거린다. 같은 스탬프대인데 왜 이렇게 마르는 속도가 다른가 싶어서 검색창을 열었다.
답은 스탬프대 안에 있었다. 스탬프 잉크는 크게 안료 잉크와 염료 잉크 두 갈래로 나뉘는데, 색소가 종이에 자리 잡는 방식 자체가 달라서 마르는 속도도, 어울리는 종이도, 어울리는 기법도 함께 갈린다. 제조사 공개 자료를 기준으로 이 둘의 차이를 정리했다.
안료 잉크와 염료 잉크, 마르는 속도가 왜 다른가
두 잉크의 마르는 속도 차이는 색소가 어디에 자리 잡느냐에서 갈린다. 염료 잉크는 색소가 액체 속에 녹아 있는 형태라 종이 섬유 속으로 스며들고, 스며드는 만큼 빨리 마른다. 반대로 안료 잉크는 색소가 고체 입자 상태로 액체에 떠 있는 형태라 종이에 스며들지 못하고 표면 위에 얹힌 채로 남는다.
Ranger Ink는
재킷 안주머니에 넣고 다니던 포켓 수첩을 며칠 만에 꺼냈더니 가운데가 반으로 접힌 자국이 그대로 남아 있었다. 페이지는 채 절반도 안 썼는데 벌써 이 모양이다. 반면 예전에 쓰던 스프링 수첩은 몇 달을 굴려도 이런 자국이 안 남았던 기억이 났다. 둘 다 손바닥만 한 수첩인데 왜 이렇게 다를까.
답은 제본 방식에 있었다. 포켓 수첩은 크게 접지형(새들 스티치)과 스프링형(와이어오) 두 갈래로 나뉘고, 이 구조 차이가 페이지 수 한계와 필기 안정성까지 갈라놓는다. 대표적인 두 제품의 공개 스펙을 나란히 놓고 뭐가 다른지 정리했다.
포켓 수첩 제본 방식 두 가지, 접지형과 스프링형
접지형은 종이를 반으로 접어 중심을 스테이플 2~3개로 고정하는 방식이다. 대표적으로 필드노츠(Field Notes) 오리지널 크래프트 메모북이 89×140mm 크기에 48쪽을 스테이플 3개짜리 새들 스티치로 묶는다. 스프링형은 낱장마다 구멍을 뚫고 철사(와이어)나 플라스틱 코일을 꿰어 연결하는 방식이다
서류 뭉치를 정리하다가 검지 옆이 베였다. 칼도 아니고 종이 한 장이었다. 그런데 화끈거리는 정도가 며칠 전 커터칼에 살짝 스쳤을 때보다 오래갔다. 더 무딘 물건한테 더 오래 시달리는 게 어이가 없어서 검색창을 열었다. 종이는 왜 이렇게 아프게 베나.
찾아보니 종이 베임을 다룬 물리학 연구가 실제로 있었다. 결론부터 말하면 종이는 아무 두께나 잘 베이는 게 아니라, 유독 잘 베이는 두께 구간이 따로 있다. 얇은 종이도, 두꺼운 종이도 의외로 안전한 쪽에 가깝다.
종이 베임이 칼에 베이는 것보다 아픈 이유
종이 가장자리는 매끈해 보여도 현미경으로 보면 톱니처럼 울퉁불퉁하다. 미국 일리노이 대학교 물리학 상담 코너(Physics Van)는 이 점을 명확히 짚는다. 무딘 날은 날카로운 칼날보다 조직에 더 많은 미세한 찢김을 남기고, 그 찢김이 통증을 오래 끈다는 것이다. 한 번 매끈하게 베이는 대신 톱니에 여러 번 걸려 뜯기는 셈이다.
여기에 종이 성분(표백 과정에 쓰인 화학물질
프린트한 원고에 연필로 교정 표시를 하고 지우다가 책상 위에 가루가 눈처럼 쌓였다. 옆자리 동료의 지우개는 가루가 알아서 뭉쳐서 손날로 한 번에 쓸려 나가는데, 내 것은 잘게 흩어져 소매에까지 붙는다. 같은 연필, 같은 종이인데 지우개만 다르다.
그래서 검색창을 열었다. (지우개 하나 때문에 이렇게까지 할 일인가 싶었지만, 이미 늦었다.) 가루 적은 지우개는 실제로 따로 있고, 그 차이는 지우개가 무엇으로 만들어졌는지에서 갈린다. 이 글은 지우개가 가루를 만드는 원리, 고무 지우개와 비닐(PVC) 지우개의 성분 차이, 가루가 뭉치는 이유, 그리고 가루가 아예 안 나오는 지우개까지 정리한다.
지우개 가루는 왜 생기는가
지우개 가루는 지우개가 일하면서 자기 몸을 깎아 낸 부스러기다. 연필은 종이 표면에 얇은 흑연 막을 얹어 놓는데, 지우개는 이 막을 문질러서 물리적으로 떼어낸다. 캐나다 맥길 대학교 과학 상식 사이트(Office for Science and Society)는 지우
필통을 정리하다 보면 롤러볼 펜과 볼펜, 라이너펜이 한 칸에 뒤섞여 있는 걸 자주 본다. 비슷하게 생겼으니 아무 생각 없이 던져 넣었을 텐데, 닙(펜촉) 구조를 뜯어보면 이 셋의 관계는 생각보다 복잡하다. 롤러볼과 볼펜은 사실 사촌에 가깝고, 라이너펜은 아예 다른 집안이다.
세 필기구를 볼 유무와 잉크 종류 기준으로 나란히 놓고 구조를 비교하면 필기감 차이가 어디서 오는지 바로 보인다. 어제 밤에 궁금증이 나서 그대로 못 자고 특허 문서와 제조사 자료까지 뒤져 정리했다(제도 펜 하나 사려던 참이었는데 이렇게 됐다).
롤러볼 펜과 볼펜, 닙 구조는 얼마나 같을까
결론부터 말하면 거의 같다. 두 펜 모두 텅스텐카바이드로 만든 작은 볼이 소켓 안에서 회전하며 잉크를 종이에 옮기는 방식이다. 볼이 굴러가며 잉크를 긁어내는 원리는 볼펜 볼 원리 글에서 이미 다뤘다. 두 펜의 차이는 볼 자체가 아니라 그 볼이 만나는 잉크에 있다.
볼포인트는 유성(오일 베이스) 잉크를 쓴다. 점도가 높
다이어리 매대 앞에서 표지 잠금 방식만 보고 고른 적이 있을 것이다. 자석이 딸깍 붙는 쪽은 괜히 더 고급스러워 보이고, 스냅 단추는 좀 클래식하다 싶다. 그런데 그 잠금 하나가 다이어리 수명을 얼마나 좌우하는지는 따로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그래서 스펙 자료를 뒤졌다. 노트 표지의 자석 클로저와 스냅 단추, 구조부터 완전히 다르다.
자석 클로저 구조, 원리는 뭘까
자석 클로저는 표지 양쪽에 마주 보게 심은 자석 두 개가 서로 끌어당기는 방식이다. 대부분 네오디뮴 계열이고, 등급에 따라 인력이 달라진다. 가벼운 소품용은 N35N42 등급으로 12kg 정도의 인력이면 충분하고, 핸드백 주 잠금처럼 힘이 더 필요한 자리는 N52 등급까지 올려 8kg 이상을 낸다.
재미있는 건 표지 재질이 인력을 깎아 먹는다는 점이다. 자석과 자석 사이에 가죽 1mm 층만 끼어도 인력이 절반 이상 떨어진다. 그래서 두꺼운 가죽 커버일수록 더 센 등급의 자석을 심어야 딸깍 소리가 유지된다. 그리고
계약서를 몇 년 만에 꺼내 보니 투명 파일 포켓 안에서 종이 귀퉁이가 비닐에 쩍 들러붙어 있었다. 억지로 떼어내자 그 자리만 누렇게 눌어붙은 자국이 남았다. 포켓이 서류를 상하게 할 수도 있다는 생각은 해본 적이 없어서, 이번에도 검색창부터 열었다(포켓 하나 사려다가 화학 이야기까지 하게 될 줄은 몰랐다). 원인은 포켓 자체의 소재였다. 투명 파일 포켓은 크게 PVC와 PP 두 가지 플라스틱으로 만들어지고, 이 둘의 안정성 차이가 몇 년 뒤 서류의 운명을 가른다. 당신 서랍에도 몇 년째 그대로 꽂혀 있는 파일 하나쯤 있을 것이다.
투명 파일 포켓, 오래 두면 서류가 상하는 이유
원인은 소재 안에 섞인 가소제(딱딱한 플라스틱을 말랑하고 투명하게 만드는 첨가제)다. PVC, 그러니까 폴리염화비닐은 원래 뻣뻣하고 잘 부서지는 플라스틱이라 프탈레이트 계열 가소제를 상당량 섞어야 우리가 아는 말랑한 파일 포켓이 된다. 문제는 이 가소제가 플라스틱 안에 영구히 붙박여 있지 않다는 점이다.
다이어리 표지 안쪽에 사진 한 장을 딱풀로 붙였다. 다음 날 펼쳐보니 그 페이지만 파도처럼 휘어 있었다. 옆 페이지는 멀쩡한데 사진을 붙인 자리만 그렇다. 풀칠 몇 번 했다고 종이가 이렇게까지 뒤틀리는 이유가 뭘까.
평량 탓이라고 생각했다. 다이어리 속지치고는 얇은 편이니까. 그런데 찾아보니 평량은 절반의 답이었다. 나머지 절반은 종이의 결 방향과 물기가 어느 면에 닿았는지에 있었다. 당신 다이어리 어딘가에도 이유 없이 우글쭈글해진 페이지가 한 장쯤 있을 것이다.
종이가 휘는 이유, 결 방향과 수분 팽창
종이가 휘는 이유는 섬유가 물을 먹을 때 사방으로 똑같이 부풀지 않기 때문이다. 종이를 만들 때 섬유는 기계가 흐르는 방향(MD, machine direction)으로 나란히 눕는다. 이 방향과 수직인 방향을 교차 방향(CD, cross direction)이라 부른다. 셀룰로스 섬유 한 가닥은 마른 상태에서 물을 최대로 먹은 상태까지 지름이 15~20% 늘어나는데, 섬유 대부
책상 서랍 안쪽에서 두 달 만에 형광펜을 꺼냈다. 뚜껑은 분명히 닫아뒀는데 첫 줄부터 색이 반쯤 죽어 있었다. 뚜껑을 닫는 것과 마르지 않는 것은 다른 얘기였다는 뜻이다.
형광펜이 마르는 속도는 뚜껑의 밀폐 구조에 따라 크게 갈린다. 같은 시간을 방치해도 어떤 형광펜은 멀쩡하고 어떤 형광펜은 반나절 만에 갈라진 소리를 낸다. 형광펜이 애초에 왜 빛나 보이는지는 다른 질문이다(관련 글: 형광펜은 왜 형광인가). 오늘 파고들 건 마름의 문제, 정확히는 뚜껑 구조와 잉크 증발의 관계다.
형광펜 잉크는 왜 마르는가
형광펜이 마르는 이유는 잉크 안의 휘발 성분이 공기 중으로 날아가기 때문이다. 형광펜 잉크는 대부분 물을 기본 용매로 색소를 녹인 수성 잉크인데, 펠트촉을 타고 잘 흐르도록 점도를 낮추는 용도로 에탄올이나 이소프로판올 같은 알코올을 소량 섞는 제품이 많다.
문제는 이 알코올의 휘발성, 그러니까 공기 중으로 빠르게 날아가는 성질이 강하다는 점이다. 뚜껑이 열려 있으면 알코
다이어리 리필 속지를 교체하려다 막혀 본 사람이 꽤 있다. 새 속지를 사서 기분 좋게 뜯었는데 구멍이 링에 제대로 안 걸리거나, 억지로 끼워 넣어도 종이가 한쪽으로 쏠리는 일. "같은 6공인데 왜 안 맞지?"라는 의문이 드는 순간이다.
결론부터 말하면, 6공 다이어리는 권장 표준이 있지만 법적 강제 규격이 아니라서 브랜드마다 구멍 간격이 미묘하게 다르다. 특히 A6 사이즈는 이름은 같아도 종이 폭이 최대 11mm까지 차이 나는 경우가 있다. 이 글은 그 규격 차이를 수치로 설명한다.
6공 링 간격에 표준은 있다
6공 링 바인더의 구멍 배치는 대략 이런 패턴을 따른다. 구멍 직경 5mm, 인접한 구멍 사이 간격 19mm, 가운데 큰 간격 51mm. 여섯 개 구멍을 세 개씩 두 묶음으로 나누고, 묶음 안에서는 19mm씩, 두 묶음 사이는 51mm를 두는 방식이다.
이 규격은 Filofax Personal 사이즈를 기준으로 오래전에 정착했다. Personal 사이즈는 6공 링 바
새 노트를 뜯어서 젤펜을 올렸더니 잉크 선 가장자리가 실처럼 갈라졌다. 지난 노트와 같은 가격대인데 이게 왜 이러지. 포장을 확인하니 80gsm. 지난 노트도 80gsm이었다. 무게가 같으면 같아야 하는 게 아닌가.
그렇지 않다. 평량은 종이 무게만 나타낸다. 표면 처리는 별도다. 이 글이 답하는 질문은 하나다: 같은 평량의 노트인데 번짐이 다른 이유가 뭔가.
퍼짐과 번짐, 두 현상은 원인이 다르다
번짐이라고 묶어서 부르지만 실제로는 두 현상이 따로 존재한다. 퍼짐(feathering)은 잉크 선 가장자리가 갈라지는 것이고, 번짐(bleed-through)은 잉크가 종이를 뚫고 뒤면까지 나타나는 것이다.
퍼짐은 표면에서 시작한다. 잉크가 종이 섬유에 닿는 순간 모세관 작용으로 섬유를 타고 옆으로 번진다. 섬유 배열이 불규칙할수록, 표면 처리가 부족할수록 퍼짐이 커진다. 번짐은 깊이의 문제다. 잉크가 섬유 사이 틈새를 따라 아래로 침투해 반대면까지 스민다. 평량이 낮거나 섬유
서랍 속 날짜 도장을 꺼내 서류에 찍다 보면, 같은 패드인데 찍히는 날이 다를 때가 있다. 어떤 날은 경계선이 선명한데, 어떤 날은 테두리가 번지고, 또 어떤 날은 잉크가 부족한 것처럼 흐릿하게 나온다. 누르는 힘 탓인가 종이 탓인가 생각하다가, 결국 패드 자체의 소재를 들여다보게 됐다. 당신 서랍 도장도 한 번쯤 이런 날이 있지 않았는지.
스탬프 패드는 크게 두 가지 소재로 나뉜다. 펠트(felt)와 폼(foam). 겉에서 보면 비슷한 두 소재는 잉크를 담고 내보내는 방식이 구조적으로 다르다. 그 차이가 찍힘의 선명도, 번짐, 그리고 패드 수명까지 결정한다.
펠트 패드와 폼 패드, 소재 구조가 어떻게 다른가
펠트는 양모나 합성 섬유를 열과 압력으로 눌러 굳힌 재료다. 실처럼 짜인 직물 구조가 아니라 섬유들이 뒤엉켜 압착된 상태여서, 내부에는 아주 작고 균일한 틈들이 촘촘하게 분포한다. 눈에는 보이지 않는 수준의 작은 틈들이 잉크를 붙잡아 두는 공간이 된다.
폼(foam)은
서랍 속 연필깎이를 꺼내 새 연필을 넣었더니 처음엔 잘 깎인다. 그런데 같은 연필깎이로 몇 주 뒤 다시 깎으면 느낌이 다르다. 날이 슥슥 미끄러지고, 심이 뭉툭하게 나온다. 연필 탓인가 싶어 다른 연필을 꽂아봐도 마찬가지다. 새 연필깎이로 바꾸면 다시 잘 깎인다. 결국 날 문제였다.
연필깎이 날이 무뎌지는 속도는 날 구조와 소재에 달려 있다. 이 두 가지를 이해하면 "왜 저가형이 빨리 망가지는지"와 "어떤 연필깎이를 고르면 오래 쓰는지"가 스펙 차원에서 설명된다.
연필깎이 날 방식은 두 가지다: 직선형과 원통형
연필깎이의 날은 크게 두 방식으로 나뉜다. 어떤 방식이냐에 따라 깎이는 형태와 날의 마모 특성이 달라진다.
직선형 날(flat blade): 원뿔형 구멍 안 한쪽 면에 칼날이 고정되어 있다. 연필을 구멍에 꽂고 돌리면 고정된 날에 연필 표면이 닿으면서 깎인다. 구조가 단순해 가정용 소형 연필깎이 대부분이 이 방식이다. 날이 하나인 외날형은 연필밥이 긴 나선형으로 나오
볼펜 리필을 사러 문구점에 들어섰다가 진열대 앞에서 멈춰 선 적이 있다. Parker, D1, G2라고 쓰인 라벨들이 나란히 꽂혀 있는데, 지금 쓰는 펜에 어떤 규격이 들어가는지 모른다. 검색을 해봐도 "G2 규격"이 파커 방식 볼펜심을 가리키는 건지 파일럿 G2 젤펜 리필인지 헷갈린다. 이 혼란은 제품 이름과 규격 이름이 겹쳐 있는 데서 시작한다.
볼펜 리필에는 사실상 세 분류가 있다. 크기 기준의 국제 표준인 D1, 브랜드 표준에서 출발해 국제 표준이 된 Parker G2 방식, 그리고 제조사별 독자 규격. 세 분류는 치수가 달라 서로 교체가 안 된다. 어느 쪽에 속하는지 알면 구매 전에 호환 문제를 미리 피할 수 있다.
D1 규격이란 무엇인가
D1은 ISO 12757-1로 정의된 국제 표준 규격이다. 길이 67mm, 지름 2.3mm — 볼펜 리필 가운데 가장 작은 분류다. 이 크기가 필요한 이유는 구조적으로 명확하다. 4색이나 5색 볼펜처럼 하나의 몸통 안에 여러 리필심
잉크가 4분의 1쯤 남은 시점에서 컨버터를 아무리 돌려도 공기만 들어왔다. 병 바닥에 잉크가 분명히 남아 있는데 닙이 거기까지 닿질 않아서다. 이 경험을 한 번이라도 해봤다면, 잉크 병 바닥이 단순한 디자인 결정이 아닐 수 있다는 의심을 품게 된다. 실제로 그렇다.
잉크 병의 형태가 제조사마다 다른 데는 이유가 있다. 이 글은 만년필 잉크 병의 주요 바닥 구조 4가지를 비교해, 잔량이 줄었을 때 컨버터 충전 효율이 어떻게 달라지는지 구조 측면에서 정리한다.
컨버터로 잉크를 빨아올리는 원리
만년필 컨버터는 음압(負壓, negative pressure)으로 잉크를 끌어올린다. 피스톤형 컨버터는 노브를 돌려 내부 피스톤이 위로 당겨지면 챔버가 팽창하고 진공 상태가 되면서, 닙을 통해 잉크가 빨려 올라온다. 스퀴즈형은 몸통을 눌렀다 놓으면 팽창과 수축이 일어나며 같은 효과를 낸다.
여기서 병 형태가 중요해진다. 충전이 작동하려면 닙 끝이 잉크에 충분히 잠겨 있어야 한다. 닙이 잉크
책상 뒤를 들여다보면 쉽게 구분이 안 된다. 모니터 전원선, USB 허브 케이블, 이어폰 선, 충전기까지 다 한 방향으로 흘러내리는데, 하나를 잡아당기면 예상 못 한 다른 선이 따라온다. 그 느낌이 매번 낯설다. 언젠가는 정리해야지 하면서 몇 달이 지나는 게 이 영역의 특징이다.
케이블 정리 도구를 검색하면 트레이, 클립, 슬리브, 채널이 동시에 뜬다. 하나만 고르면 되는 줄 알았는데 종류가 많아서 오히려 막막하다. 이 도구들은 구조가 다르고, 해결하는 문제도 다르다. 어떤 차이인지 알면 내 책상에 맞는 조합이 보인다.
케이블 정리 도구, 크게 네 가지 구조로 나뉜다
책상 케이블을 정리하는 도구는 역할에 따라 네 가지로 구분된다. 트레이형, 클립형, 슬리브형, 채널형이다. 이름과 생김새는 달라도 하는 일은 하나다. 케이블이 "어디에" 있어야 하는지를 정해주는 것. 어떤 도구는 케이블을 감추고, 어떤 도구는 경로만 잡아주고, 어떤 도구는 여러 선을 하나처럼 묶는다.
트레이형
노트북을 책상 위에 바로 두고 하루 종일 작업하다 보면, 퇴근 무렵에는 목만 아픈 게 아니라 뒤통수까지 뻐근하다. 너무 익숙해져서 당연한 줄 알고 지나쳤는데, 사실 이건 꽤 구체적인 이유가 있다.
노트북은 키보드와 화면이 하나로 붙어 있다. 손이 닿는 높이에 화면이 함께 있다는 뜻이다. 책상 위에 올려둔 노트북의 화면 상단 높이는 대개 2025cm. 눈 기준으로 3040도가량 고개를 숙여야 보인다. 인체공학 표준이 권장하는 화면 각도는 눈높이에서 최대 15도 하강이다. 현실은 그 두 배 이상이고, 하루 8시간이 쌓이면 뻐근함을 훌쩍 넘긴다.
거치대는 그 각도 문제를 물리적으로 해결하는 도구다.
눈높이와 화면 위치: 거치대 높이는 몇 cm가 맞나
Humanscale, OSHA 등 인체공학 표준이 공통으로 제시하는 기준은 이렇다. 화면 상단이 눈높이와 같거나 약 15도 이하 하강각에 오면 된다. 그 아래로 내려갈수록 목뿐 아니라 뒷머리를 잡고 있는 근육에 부담이 걸린다.
수치
색연필로 다이어리를 꾸미다가 이상한 경험을 한 적이 있다. 스탠드 아래에서 분명 살구색을 골랐는데 완성한 페이지를 창가에서 다시 보니 연한 주황에 가깝다. 낮에 잘 보이던 색이 밤에는 다르게 보인다는 걸 알면서도 매번 뒤통수를 맞는다. 조명 탓이라는 건 알겠는데 정확히 어떤 숫자가 문제인지 궁금해서 스펙시트를 뒤지기 시작했다.
조명 스펙을 볼 때 대부분의 시선은 색온도(K)에서 멈춘다. K는 빛이 따뜻한지 차가운지를 나타내는 수치다. 그런데 거기서 멈추면 절반을 놓친다. 색온도가 같아도 색을 얼마나 정확하게 보여주는지는 스펙시트의 다른 자리에 적혀 있다. CRI, 또는 Ra라고 표기된 숫자다. 색온도를 먼저 이해하고 싶다면 스탠드 색온도 고르는 법을 먼저 보는 편이 순서가 맞다.
CRI(연색성)란 무엇인가
CRI는 Color Rendering Index, 한국어로 연색성 지수다. 광원이 물체의 색을 얼마나 정확하게 재현하는지를 0~100으로 나타낸다. 기준은 태양광에 가까운
회의가 길어지면 발이 공중에 뜨는 느낌이 온다. 의자를 책상 높이에 맞춰 올리다 보면 발바닥이 바닥에 완전히 닿지 않는 상황이 생긴다. 처음 한 시간은 버틸 만하다. 두 시간을 넘기면 허리가 먼저 항의한다. 이유를 찾아보면 구조가 생각보다 간단하다. 발이 지지되지 않으면 골반부터 흔들리기 시작한다.
발받침(풋레스트)은 발이 바닥에 닿지 않을 때 쓰는 도구다. 단순해 보이지만 각도와 구조에 따라 앉은 자세 전체가 달라진다. 어떤 각도가 왜 차이를 만드는지, 흔들림 기능이 있는 제품은 뭐가 다른지, 원리부터 정리한다.
발이 공중에 뜨면 자세에 어떤 일이 생기나
발바닥이 지지되지 않으면 허벅지 뒷면이 의자 쿠션 끝에 눌린다. 이 압박이 시간이 지날수록 종아리와 발을 저리게 만드는 원인이다. 더 큰 문제는 골반이다. 발이 허공에 걸쳐 있으면 골반이 뒤로 기울어지기 쉽다. 이 후방 경사가 일어나면 요추의 자연스러운 전방 곡선이 무너지고, 그 부담이 허리 근육과 추간판으로 간다. 앉아
마우스가 아니라 마우스패드를 탓해야 할 때가 있다. 드래그 선택 영역이 자꾸 어긋나거나, 커서가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튈 때, 보통은 DPI를 올리거나 마우스를 교체하는 쪽을 생각한다. 그런데 원인이 패드 표면인 경우가 적지 않다. 광학 마우스 센서는 표면 질감에 따라 추적 방식이 달라지도록 설계됐기 때문이다. 이 글은 소프트(천)와 하드(플라스틱·알루미늄) 패드가 커서 정밀도에 구체적으로 어떻게 다른 영향을 주는지, 공개된 비교 데이터와 제조사 자료를 기준으로 분석한다.
광학 마우스 센서가 표면을 읽는 방법
광학 마우스 센서는 초당 수천 장의 표면 이미지를 연속 촬영해 이동 방향과 거리를 계산한다. 센서 하단의 LED(적외선 또는 가시광)가 표면을 비추면, 내장 CMOS 이미지 칩이 반사 패턴을 포착한다. 직전 프레임과 비교해 패턴이 얼마나, 어느 방향으로 이동했는지를 계산하는 방식이다.
여기서 표면 질감이 핵심이 된다. 표면에 미세한 요철이 풍부할수록 센서가 참조할 패턴
손목이 뻐근해서 팜레스트를 주문했다. 메모리폼이 가장 많이 팔리기에 그걸로. 며칠 뒤에는 젤 소재가 더 낫다는 글을 발견했고, 그 다음 날에는 "팜레스트는 오히려 해롭다"는 게시물이 눈에 띄었다. 결국 스프레드시트를 열었다. 여기까지 오면 이 조사는 끝을 보게 되어 있다.
팜레스트가 도움이 되는지는 소재보다 높이와 사용 방법에 달린 문제다. 이 원리를 먼저 이해하면, 소재를 고르는 일이 생각보다 단순해진다.
손목 통증의 구조: 굴곡 각도와 손목 터널 압력
팜레스트를 고르기 전에 손목 통증이 왜 생기는지부터 짚어야 한다. 타이핑 중 손목이 키보드보다 낮은 위치에 있으면 손목이 뒤로 젖혀진다. 이를 신전(背屈, dorsiflexion)이라 하고, 반대로 앞으로 꺾이면 굴곡(掌屈, palmar flexion)이라 한다.
두 방향 모두 공통점이 있다. 손목 터널(carpal tunnel), 즉 손목 뼈와 인대로 둘러싸인 좁은 통로를 지나는 정중신경(median nerve)에 가해지
가방을 열다가 노트 모서리가 짓눌린 걸 발견했다. 가죽 커버인 줄 알았는데 코팅이 얇게 벗겨져 있었다. 처음엔 그냥 쓸 수 있겠거니 했는데, 몇 달 뒤에는 모서리 전체가 너덜너덜해졌다. 그때서야 알았다. 내가 산 건 가죽이 아니라 PU 합성가죽이었고, 둘은 완전히 다른 물건이다.
노트 커버 소재는 크게 네 가지다. PP(폴리프로필렌), 합성가죽(PU 레더), 천연가죽, 천(패브릭). 어느 걸 고르느냐에 따라 1~2년 뒤 노트 상태가 달라진다. 이 글에서는 소재별 구조와 공개 스펙을 기준으로 내구성과 선택 조건을 정리한다.
PP 커버의 구조와 장단점
PP는 폴리프로필렌(Polypropylene)이다. 플라스틱 계열이지만 딱딱한 것이 아니라 약간의 탄성이 있어서, 구부렸다 놓으면 원래 형태로 돌아온다. 노트 커버에 쓰이는 PP는 단층 구조가 일반적이다. 내부 보강재 없이 소재 자체의 강성으로 형태를 유지하고, 두께는 보통 0.3~1.0mm 범위다.
강점은 세 가지다. 방수성이
몇 주를 서랍에 두었다가 꺼낸 만년필이 글씨를 안 쓰던 날이 있었다. 캡을 열고 종이에 대봤는데 아무것도 안 나왔다. 가볍게 흔들고, 꾹꾹 눌러봐도 헛걸음. 잉크는 분명 들어 있었는데. 그때 처음으로 '만년필도 세척이 필요하다'는 말이 실감으로 들어왔다. 왜 굳는지, 어떻게 막는지를 정리해봤다.
만년필 잉크가 굳는 원인 세 가지
잉크 굳음의 원인은 크게 세 가지로 나뉘고, 잉크 종류마다 다른 경로로 굳는다.
첫 번째는 수분 증발이다. 대부분의 만년필 잉크는 물을 기반으로 한다. 캡을 닫아두면 완전히 밀폐된 것처럼 보이지만, 시간이 지나면 미량의 수분이 빠져나간다. 수분이 줄면 잉크 속 염료나 안료가 농축되고, 피드 채널 내부에서 점도가 높아진 잉크가 표면부터 굳기 시작한다. 수용성 잉크 전반에 해당하는 경로다.
두 번째는 철분 잉크(iron gall ink)의 화학 반응이다. 철분 잉크에는 갈잉산(gallic acid, 오크 껍질에서 추출)과 황산철(ferrous sulfa
글씨를 쓰다가 잉크가 갑자기 끊겼다. 종이에 눌러도, 뚜껑을 잠갔다 열어도 반응이 없다가 어느 순간 다시 흐르기 시작한다. 그 과정이 반복되고 나서야 만년필 피드라는 단어를 처음 찾아봤다. 한 번이면 우연인데 두 번이면 원인을 파야 한다.
만년필에서 잉크가 일정하게 나오는 것은 저절로 되는 일이 아니다. 잉크를 닙(펜촉) 끝까지 공급하고, 빠져나간 잉크만큼 공기를 채워주고, 온도 변화나 필기 속도 변화에도 흐름을 유지하는 기능이 모두 피드(feed) 하나에 들어 있다. 이 글은 피드 구조가 어떻게 그 역할을 하는지, 소재 차이가 실제 흐름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를 분석한다.
만년필 피드란 무엇인가
피드는 닙 바로 아래에 딱 붙어 있는 부품이다. 잉크 저장소(컨버터나 카트리지)와 닙 끝 사이를 연결하는 통로 역할을 한다. 닙 뒤쪽을 보면 검은 납작한 판처럼 붙어 있는 것이 피드다. 대부분 검은색이라 눈에 잘 안 띄지만, 만년필을 분해하면 닙과 비슷한 크기의 별도 부품으로 따로 빠
잡화점 색연필 한 통을 오래 쓰다 보면 이상한 패턴이 생긴다. 빨간색은 금방 닳는데 파란색은 멀쩡하고, 겹쳐 칠해도 어떤 색은 잘 섞이고 어떤 색은 위에 덮이기만 한다. 나중에 성분을 뒤졌더니 답은 심 안쪽에 있었다. 심에 들어간 안료 입자 크기와 바인더 비율이 달랐고, 유성 색연필과 수성 색연필의 심은 그보다 더 근본적인 곳에서 갈렸다.
색연필의 발색과 혼색 능력은 심에 든 바인더 종류가 거의 결정한다. 유성이냐 수성이냐는 단순히 물에 녹느냐 아니냐의 차이가 아니라, 심의 딱딱함, 안료가 종이에 달라붙는 방식, 색이 섞이는 조건 전체를 결정하는 기준이다.
색연필 심은 무엇으로 만들어지나
색연필 심은 안료(pigment), 바인더(binder), 필러(filler) 세 가지 재료의 조합이다. 안료가 색을 내고, 바인더가 안료 입자들을 한데 묶어 심 모양으로 굳혀주고, 필러는 초크나 점토 같은 충전재로 심의 강도와 발림성을 조절한다.
바인더가 무엇이냐에 따라 유성 색연필과 수
문구 매대의 30cm 자는 보통 세 갈래다. 투명한 아크릴 자, 가벼운 알루미늄 자, 묵직한 스테인리스 자. 눈금은 셋 다 똑같이 생겼는데 가격은 몇 배씩 벌어진다. 눈금이 같다면 대체 무엇에 값을 매기는 걸까. 가위 날을 정리한 글 끝에 예고한 대로, 이번에는 직선의 최종 책임자인 자 차례다.
결론부터 말하면 자의 정확도는 눈금이 아니라 눈금을 지키는 능력에서 갈린다. 자 눈금에는 허용 오차 규격이 있고, 소재는 그 오차가 온도와 세월 앞에서 얼마나 버티는지를 정한다. 이 글은 자 눈금의 오차 규격, 소재별 열팽창, 눈금 새김 방식, 자 두께가 만드는 읽기 오차까지 공개 규격과 재료 물성값 기준으로 정리한다.
자 눈금에도 오차 규격이 있다: JIS B 7516
자는 감으로 만드는 물건이 아니다. 금속 자의 경우 일본 공업 규격 JIS B 7516이 눈금 허용 오차를 등급으로 정해 두는데, 1급 기준으로 전체 길이 500mm 이하에서 ±0.15mm다. 30cm 스틸 자라면 눈
마감 직전에 서류를 붙이다가 테이프 끝이 삐죽삐죽 나왔다. 다시 뜯어내고 다시 잘랐는데 또 같은 모양이다. 테이프가 나쁜 건지 디스펜서가 나쁜 건지 분간이 안 가서, 그날 밤 테이프 디스펜서 날 구조를 검색하기 시작했다. 마감 서류는 붙었는데 그 우선순위가 맞는지는 지금도 모르겠다.
찾아보니 절단면 품질은 날의 두 가지 변수가 결정하고 있었다. 날의 배치 방식과 날의 소재다.
테이프 디스펜서 날, 사선형과 일자형의 차이
테이프 디스펜서 날은 크게 사선형과 일자형으로 나뉜다. 배치 방식이 다르고, 같은 날카로움에서도 절단면 품질이 다르게 나온다.
사선형 날은 톱니가 대각선으로 기울어져 있다. 테이프를 당기면 절단이 한쪽 끝에서 시작해 반대쪽 끝으로 전파된다. 전체 폭을 동시에 자르는 게 아니라, 한 점에서 시작해 옆으로 이동하면서 잘리는 방식이다. 힘이 덜 필요하고 절단면이 고르다.
일자형 날은 톱니가 테이프 진행 방향에 수직으로 서 있다. 당기는 순간 테이프 전체 폭에 힘
커터날 각도를 정리하던 날, 사족에 한 줄을 적어 뒀다. 가위는 날이 두 장이라 완전히 다른 문제라고. 그 예약해 둔 새벽이 왔다. 시작은 단순한 위화감이었다. 커터는 무뎌지면 부러뜨려 새 날을 쓰는데, 가위는 몇 년을 써도 그럭저럭 잘 든다. 같은 종이를 자르는 도구인데 어째서 수명이 이렇게 다른가.
답부터 말하면 가위는 커터와 자르는 방식 자체가 다르다. 커터가 날카로운 쐐기를 박아 재료를 가른다면, 가위는 두 날의 어긋남으로 재료를 끊는다. 그리고 잘 드는 가위의 조건은 날의 날카로움보다 두 날이 만나는 각도, 대략 30도 안팎에 있다. 이 글은 가위의 절단 구조와 30도의 의미를 제조사 공개 자료로 정리하고, 사무용 가위와 재단용 가위가 어디서 갈라지는지 비교한다.
가위와 커터의 차이: 가르는 게 아니라 어긋나게 끊는다
가위질의 정체는 전단이다. 전단이란 재료의 위아래를 서로 반대 방향으로 미는 힘을 말한다. 두 날이 스치듯 지나가면서 종이의 한쪽 면은 위로, 반대쪽
온라인 장바구니에 풀을 담다가 3분을 썼다. 딱풀을 살까, 스틱풀을 살까. 검색까지 하고 나서야 머쓱해졌다. 둘은 같은 물건이다. 딱풀은 아모스가 1984년에 내놓은 고체풀의 상품명이고, 너무 유명해진 나머지 고체풀 전체를 부르는 이름이 됐다. 밴드를 대일밴드라고 부르는 것과 같은 사정이다.
그러니 풀 매대에서 실제로 갈리는 선택지는 둘이다. 고체풀이냐, 물풀이냐. 결론부터 말하면 두 풀은 수분이 날아가면서 굳는 같은 계열의 접착제고, 차이의 핵심은 수분의 양이다. 그 수분이 접착력과 종이가 우는 문제, 어울리는 용도까지 전부 가른다. 이 글은 고체풀과 물풀의 성분과 접착 원리를 공개 자료 기준으로 정리하고, 상황별로 어느 쪽을 집을지 기준을 세운다.
풀이 종이를 붙이는 원리: 스며들고, 마르면서 굳는다
종이용 풀의 일은 세 단계다. 표면을 적시고, 종이 섬유 사이로 스며들고, 물이 증발하면서 굳는다. 풀의 접착 성분은 물에 녹는 긴 사슬 모양 분자(고분자)다. 물에 녹아 있
다이어리 속지를 커터로 반듯하게 가르려다 실패했다. 칼이 종이를 자르지 못하고 끌고 가서, 잘린 면이 아니라 찢긴 면이 남았다. 날을 한 칸 톡 부러뜨리니 언제 그랬냐는 듯 다시 잘 들었다. 여기까지는 다들 아는 이야기다. 문제는 그다음 문구점 매대였다. 교체날 상자 하나에 30도라고 적혀 있었다. 각도를 고르라는 뜻인데, 그러면 여태 쓰던 날은 몇 도였을까. 상자 어디에도 없었다.
그래서 제조사 스펙을 뒤졌다. 결론부터 말하면 잘 드는 커터칼은 날끝 각도, 날 폭, 강재 세 가지가 정하고, 각도는 표준 58~59도와 예각 30도 두 갈래다. 이 글은 커터 양대 제조사인 오르파(OLFA)와 NT커터의 공개 자료를 교차해서 각도와 재질의 차이, 그리고 자르는 재료별 선택 기준을 정리한다.
커터날 스펙 비교: 오르파와 NT 교차표
두 제조사의 공개 스펙을 한 표에 모았다. 나란히 놓아야 보이는 차이가 있다.
스펙
오르파(OLFA)
NT커터
표준날 각도
59도
58
책상 끝에 자주 꺼내 보는 책 일곱 권을 세워 뒀다. 며칠은 꼿꼿했다. 한 권을 빼서 읽고 다시 꽂으러 갔더니 남은 여섯 권이 일제히 사선으로 누워 있었다. 도미노가 쓰러지다 만 각도였다. 밀어 세우면 이번에는 반대쪽으로 기운다. 세 번 반복하고서야 인정했다. 이건 책의 문제가 아니라 구조의 문제다.
북엔드를 검색하다가 더 앞의 것이 궁금해졌다. 책은 왜 꼭 쓰러지는가. 그리고 어떤 북엔드는 종잇장 같은 철판 한 장인데 어떻게 수십 권을 버티는가. 이 글은 책이 쓰러지는 이유와 L자 북엔드가 책 무게를 빌려 버티는 원리, 높이·무게·바닥 마찰로 고르는 기준을 도서관 보존 지침과 판매 자료 기준으로 정리한다.
책이 쓰러지는 이유: 받침은 좁고 무게중심은 높다
세운 책이 쓰러지는 이유는 받침이 좁아서다. 무게중심은 물체의 무게가 그 한 점에 모여 있다고 쳐도 되는 지점을 말하는데, 서 있는 물체는 이 점이 바닥에 닿은 면 바깥으로 나가는 순간 넘어진다. 단행본이 바닥에 닿는 폭은
다 써 가는 노트의 마지막 장은 글씨가 이상하게 못나 보인다. 펜을 의심하다가 종이를 의심하다가, 범인이 그 아래에 있다는 걸 한참 뒤에야 알았다. 마지막 장 밑에는 남은 종이가 거의 없다. 딱딱한 뒤표지와 책상뿐이다. 같은 펜과 같은 종이가 노트 앞쪽에서 순하게 굴러갔던 이유는 아래에 깔려 있던 속지 수십 장이 쿠션 노릇을 해 준 덕분이다.
데스크매트는 그 쿠션을 책상 전체에 까는 물건이고, 소재에 따라 쿠션의 성격이 완전히 달라진다. 이 글은 데스크매트 시장의 대표 소재인 PU가죽(합성가죽), 펠트, 유리 세 가지를 판매자 공개 자료와 해외 데스크셋업 가이드 기준으로 비교하고, 필기 중심인지 키보드 중심인지에 따라 고르는 기준을 정리한다.
데스크매트가 필기감을 바꾸는 원리: 종이 아래 바닥층
필기감은 펜과 종이 둘이 아니라 펜, 종이, 바닥 세 층이 함께 만든다. 바닥이 유리판이나 코팅 상판처럼 완전히 딱딱하면 펜 끝이 받는 반발이 그대로 손끝에 돌아온다. 꾹 눌러 써야
서류 정리함을 검색하면 결과가 정확히 두 갈래로 갈라진다. 책꽂이처럼 서류를 세워 꽂는 수직형, 그리고 얕은 쟁반을 층층이 쌓아 서류를 눕혀 두는 서랍형(레터 트레이)이다. 가격대는 비슷한데 구조는 정반대라서, 결정을 못 하고 장바구니에 둘 다 넣어 둔 채 사흘을 보냈다.
사흘 만에 내린 결론부터 적는다. 서류 트레이 두 구조의 진짜 차이는 생김새가 아니라 서류 한 장을 꺼낼 때 드는 동작 수다. 수직형은 두 동작이면 끝나고, 서랍형은 세 동작부터 시작한다. 대신 넣을 때는 순서가 뒤집힌다. 그러니 물어야 할 것은 어느 쪽이 좋은 트레이냐가 아니라, 내 서류가 얼마나 자주 들락거리느냐다. 이 글은 그 계산을 순서대로 정리한 것이다.
서류 트레이 두 종류: 세워 꽂는 수직형, 눕혀 쌓는 서랍형
수직형은 서류를 책처럼 세워서 등이 보이게 꽂는 구조다. 파일박스, 칸막이 꽂이, 북엔드형 소터가 여기 속한다. 종이는 원래 눕는 물건이라 낱장은 그대로 서지 않고, 폴더나 클리어파일에
등본이 필요한 날이었다. 분명히 뽑아 둔 기억이 있는데, 파일철 어디에 꽂았는지가 기억나지 않았다. 후보는 둘이었다. 집 관련과 기타. 결국 기타라고 적힌 파일철을 통째로 쏟았고, 등본은 세 번째로 두꺼운 종이 뭉치 속에서 나왔다. 소요 시간 25분. 서류를 넣는 데 든 시간은 10초였을 것이다.
이 사건의 범인은 등본이 아니라 라벨이다. 서류 정리의 성패는 파일철이나 서랍이 아니라 라벨링 체계, 그러니까 이름을 짓고 배열하는 규칙이 정한다. 이 글은 대표적인 파일링 체계 세 가지의 비용을 비교하고, 기타라는 블랙홀 없이 서류가 늘어도 버티는 라벨 규칙을 정리한다.
서류 정리의 목적: 넣기가 아니라 다시 찾기
먼저 전제 하나. 보관한 서류의 대부분은 다시 펼쳐지지 않는다. 그런데 다시 필요해지는 소수의 서류는 하필 급할 때 필요하다. 그래서 서류 정리라는 작업의 실체는 종이를 치우는 일이 아니라, 미래의 내가 던질 검색어에 미리 답을 깔아 두는 일이다. 라벨은 장식이 아니라
이번 달 초에 노트 귀퉁이에 표를 하나 그렸다. 세로로 습관 세 개, 가로로 날짜 서른한 칸. 열흘쯤은 장관이었다. 채워진 칸이 옆으로 줄지어 이어지는 걸 보는 맛에 습관을 지킨 날도 있었으니까. 그러다 12일에 칸 하나가 비었고, 신기한 일이 벌어졌다. 그날 이후로 그 표 자체를 안 보게 된 것이다. 습관이 무너진 게 아니라 표가 먼저 죽었다.
이 물건의 이름은 해빗트래커다. 왜 이렇게 강력하게 굴러가다가 이렇게 허무하게 죽는지 궁금해서 구조를 뜯어봤다. 이 글은 해빗트래커 격자의 작동 원리를 자료 기준으로 정리하고, 체인이 끊겼을 때에 대한 오해를 바로잡고, 모눈 노트에 직접 그리는 법까지 다룬다.
해빗트래커란: 행이 습관, 열이 날짜인 격자
해빗트래커는 행에 습관을, 열에 날짜를 놓고 실행한 날의 칸을 채우는 표다. 구조의 핵심은 기록 단가에 있다. 일기는 문장을 요구하고 플래너는 일정을 요구하는데, 이 격자가 요구하는 것은 색칠 한 번이다. 3초짜리 기록이라 바쁜 날에
회의 세 개가 연달아 있던 날, 퇴근 무렵의 할 일 목록을 보니 아침과 똑같았다. 지운 항목이 하나도 없는데 하루는 끝나 있었다. 목록은 죄가 없다. 할 일 목록이라는 양식에는 애초에 시간이라는 축이 없어서, 여덟 시간짜리 하루에 스무 시간어치 일을 적어도 아무 경고가 뜨지 않을 뿐이다.
그 결함을 보완하는 양식이 타임블로킹 플래너다. 하루를 시간 눈금으로 세로로 긋고, 할 일을 그 위에 블록으로 얹는다. 그런데 상품을 고르다 보면 같은 타임블로킹인데 어떤 것은 6시에 시작하고 어떤 것은 24시간이 다 있고, 눈금도 1시간짜리와 30분짜리가 섞여 있다. 이 글은 그 차이가 지면 위에서 무엇을 바꾸는지 계산해 보고, 일과 유형별로 맞는 레이아웃을 고르는 기준을 정리한다.
타임블로킹이란: 할 일을 시간 위에 얹는 방식
타임블로킹은 할 일 목록을 버리고 하루의 시간 자체를 블록으로 쪼개 각 블록에 일을 배정하는 방법이다. 딥 워크의 저자 칼 뉴포트가 대중화했고, 그는 시간을 블록으
지난 글 만년다이어리와 날짜인쇄형 비교에서 속지 갈아 끼우는 바인더를 제3의 길이라 불러놓고, 규격 이야기는 다음으로 미뤘다. 그 숙제를 하려고 쇼핑몰에서 속지 카테고리를 열었더니 옵션이 이렇게 나온다. 미니, 포켓, 바이블, 퍼스널, A6, A5. 문구를 사는데 갑자기 성경이 나오고, 같은 목록 안에서 어떤 이름은 알파벳과 숫자다. 이 명명의 무질서에는 이유가 있다.
결론부터 말하면 다이어리 속지 규격은 서로 다른 두 계보의 이름이 한 매대에 섞인 것이다. 하나는 종이 표준에서 온 미터법 이름(A5·A6), 하나는 영국 수첩 회사의 관례에서 온 인치 이름(미니·포켓·바이블)이다. 이 글은 판형별 실제 치수와 구멍 간격 수치를 정리하고, 속지를 살 때 뭘 확인해야 바인더에 맞는 물건이 오는지까지 다룬다.
다이어리 속지 이름은 두 계보다: ISO 판형과 브랜드 관례
A5와 A6는 국제 종이 규격 ISO 216의 이름이다. A4를 반 접으면 A5(148×210mm), 또 반 접으
7월에 다이어리를 사려고 장바구니를 열었다. 연초에 산 다이어리와는 몇 달 전에 서로 소원해졌고, 기록은 다시 하고 싶고, 그래서 새 물건을 찾는 흔한 경로다. 그런데 날짜가 인쇄된 다이어리는 지금 사면 1월부터 6월까지 반년치 지면이 포장을 뜯기도 전에 지난 페이지가 된다. 대안으로 눈에 들어온 것이 만년다이어리였다. 양식은 똑같은데 날짜 칸만 비어 있고, 언제 시작해도 된다고 적혀 있다.
언뜻 완벽한 답 같지만, 만년다이어리의 유연함은 공짜가 아니다. 값은 날짜 쓰기라는 노동으로 치른다. 이 글은 만년다이어리와 날짜인쇄형의 구조 차이, 만년형이 사용자에게 넘기는 일의 크기, 그리고 어떤 기록 패턴에 어느 쪽이 맞는지를 따져본다.
만년다이어리란: 날짜 칸이 비어 있는 다이어리
만년다이어리는 먼슬리와 위클리 양식은 인쇄돼 있고 날짜 숫자만 비어 있는 다이어리다. 쓰는 사람이 날짜를 직접 채우기 때문에 어느 해 어느 달에 펼쳐도 첫 장부터 쓸 수 있다. 만년이라는 이름이 여기서
다 쓴 노트는 버리지 않고 상자에 모아둔다. 언젠가 들춰볼 거라는, 아직 실현된 적 없는 믿음의 상자다. 며칠 전 그 상자에서 파손 두 건을 발견했다. 스프링 노트는 링이 눌려 페이지가 중간에 걸렸고, 밑에 깔린 회의 노트는 표지를 들자 낱장 여남은 장을 쏟아냈다. 같은 상자에서 같은 세월을 보냈는데 하나는 링이, 하나는 등이 무너졌다. 그리고 제일 오래된 양장 일지 한 권만 아무 일 없다는 얼굴로 나왔다.
차이는 제본이다. 노트 제본 종류마다 종이를 붙잡는 재료가 다르고, 약한 곳과 망가지는 순서도 다르다. 이 글은 스프링·떡제본·양장 세 방식의 구조와 각각 먼저 망가지는 부위, 오래 보관할 기록에 맞는 제본, 튼튼한 노트를 스펙에서 가려내는 법을 정리한다. 펼침성 비교는 노트가 180도로 펼쳐지는 제본 구조에서 했으니, 오늘의 관심사는 수명이다.
노트 제본 종류 3가지: 스프링, 떡제본, 양장
시중 노트의 제본은 크게 셋이다. 낱장에 구멍을 뚫어 링으로 꿰는 스프링, 낱장
회의록 귀퉁이에 작은 표를 그릴 일이 있었다. 열 셋에 행 넷짜리. 가로줄은 노트에 이미 그어져 있으니 세로줄 세 개만 그으면 되는데, 자 없이 그은 세 줄이 하나같이 오른쪽으로 기울었다. 표 하나가 사람을 이렇게 겸손하게 만든다. 그날 밤 모눈 노트를 검색하다가 더 앞선 갈림길에서 멈췄다. 같은 노트가 유선, 모눈, 도트, 무지 네 가지 속지로 나온다. 이 넷은 대체 무엇을 기준으로 고르는 물건인가.
먼저 답을 말하면, 속지 네 종류의 차이는 종이가 주는 안내선의 양이고, 고르는 기준은 취향이 아니라 주로 남기는 기록의 종류다. 문장이면 유선, 표면 모눈, 양식을 직접 그리면 도트, 그림이면 무지. 이 글은 유선·모눈·도트·무지 네 속지의 구조 차이와 브랜드마다 약속한 듯 똑같은 격자 간격 5mm, 그리고 도트 노트가 불렛저널의 표준이 된 이유까지 제조사 공개 스펙을 모아 정리한다.
노트 속지 4종류, 차이는 안내선의 양이다
넷을 한 줄에 세우면 이렇다. 유선은 가로줄만 있
다이어리 일정에 색 구분을 들이기로 했다. 일은 파랑, 개인 약속은 초록, 마감은 빨강. 그래서 4색 볼펜을 꺼내 엄지로 슬라이더를 딸깍거리는데, 문득 손이 멈췄다. 색을 바꿀 때마다 촉이 나오는 구멍은 하나다. 좁은 관 하나를 네 색이 번갈아 지나다니는데, 파란 글씨에는 빨강이 한 톨도 묻어 나오지 않는다. 이게 왜 당연하지.
답부터 말하면 당연한 게 맞다. 4색 볼펜 안에는 잉크관과 촉이 한 몸인 독립 리필이 네 개 들어 있고, 네 잉크는 펜 안 어디에서도 만나지 않기 때문이다. 이 글은 4색 볼펜의 내부 구조와 슬라이더가 색을 바꾸는 원리, 그리고 멀티펜의 세계를 지탱하는 공용 리필 규격 D1까지 정리한다. 일정 색 구분은 그날 밤 리필 규격 조사로 번졌고, 정신을 차려 보니 리필 호환표를 만들고 있었다. 표가 나왔다는 것은 이 조사도 끝을 봤다는 뜻이다.
4색 볼펜에는 펜이 네 자루 들어 있다
색이 안 섞이는 이유는 구조 그 자체다. 4색 볼펜의 리필은 잉크관 끝에 볼
어제 샤프심 글을 쓰면서 심은 1mm 안팎만 내놓으라고 적었다. 쓰고 나니 궁금해졌다. 노크를 한 번 눌렀을 때 나오는 심의 길이는 누가 정했나. 내 엄지는 매번 같은 깊이로 누르지 않는데 심은 매번 비슷하게 나온다. 우연일 리가 없다.
답부터 말하면 그 길이는 샤프 내부의 척이라는 부품이 움직이는 거리로, 설계 단계에서 고정된 값이다. 이 글은 노크 한 번에 벌어지는 일을 순서대로 뜯어보고, 그 기본 구조 위에 심 보호 기능을 얹은 세 계열, 쿠루토가와 오렌즈와 델가드가 각각 무엇을 해결하는지 공개 자료를 종합해 비교한다. 참고로 이 궁금증은 밤 11시에 시작해서 제조사 특허 해설 글을 세 개 읽고 끝났다. 예상 소요 시간을 늘 넘기는 것도 이제는 통계라고 부를 만하다.
샤프 노크의 기본 구조: 척이 심을 잡았다 놓는다
노크식 샤프의 심장은 척이다. 심을 물고 있는 두세 갈래의 작은 조(jaw)가 링 안에 앉아 있는 구조로, 평소에는 링이 조를 조여서 심을 단단히 물고 있다
주말에 밀린 가계부를 몰아서 맞추는 중이었다. 숫자는 틀리면 지워야 하니까 볼펜 대신 샤프를 잡았는데, 세 줄에 한 번꼴로 심이 톡톡 부러졌다. 부러진 심 토막이 종이 위를 굴러다니는 걸 보면서 생각했다. 이게 내 손 탓인가, 심 탓인가, 아니면 굵기 탓인가.
답부터 말하면 셋 다 관련이 있는데, 가장 큰 변수는 심 굵기와 심을 빼 둔 길이다. 이 글은 샤프심이 무엇으로 만들어지는지, 0.3과 0.5와 0.7이라는 숫자가 실제로 무엇을 바꾸는지, 심이 부러지는 원인과 안 부러지게 고르는 기준까지 정리한다. 가계부 정산은 그날 못 끝냈다. 대신 샤프심 규격을 정리한 표가 하나 생겼는데, 이 교환이 남는 장사였는지는 여전히 계산 중이다.
샤프심은 무엇으로 만드나: 흑연과 폴리머
샤프심은 흑연 가루를 폴리머(플라스틱 계열 고분자) 결합재로 굳혀 구운 심이다. 나무 연필의 심이 흑연을 점토로 굳히는 것과 재료부터 다르다. 이 폴리머 배합은 1962년 펜텔이 0.5mm와 0.7mm 심
회의록을 몰아 쓰던 날이었다. 마음이 급해서 손이 말을 앞질러 갔고, 페이지를 넘기려고 손날로 종이를 쓸었더니 방금 쓴 문장이 길게 번져 있었다. 파란 자국은 손날에도 묻어 있었다. 옆자리 동료의 메모는 멀쩡했다. 조건이 다른 것은 펜 하나뿐이었다.
결론부터 말하면 그 차이는 잉크의 용매, 그러니까 색을 실어 나르는 액체가 기름이냐 물이냐에서 온다. 펜 포장에 적힌 유성·수성·중성이 바로 그 구분이다. 이 글은 세 잉크의 성분과 점도 차이를 비교하고, 번짐과 건조 속도와 필압을 기준으로 용도에 맞는 볼펜을 고르는 법까지 정리한다. 회의록은 그날 밤 다시 정리했다. 잉크 용매를 검색하다가 자정을 넘긴 것은 예정에 없던 일이지만.
유성 수성 중성 펜의 차이, 용매가 가른다
세 이름은 잉크의 용매 구분이다. 유성 잉크는 기름 계열 용매에 염료를 녹인 것이고, 수성 잉크는 물에 염료를 녹인 것이다. 중성 잉크는 물 기반이라는 점에서는 수성 쪽이지만, 안료와 겔화제(잉크를 젤리처럼 굳
문구점 시필 코너에서 같은 0.5가 적힌 볼펜 여섯 자루를 나란히 그어 본 적이 있다(여섯 자루는 과했다는 자각은 있다). 선 여섯 개가 전부 달랐다. 굵기도, 손끝에 오는 감촉도 달랐다. 같은 숫자를 달고 어떻게 이럴 수 있는지, 집에 오는 내내 펜 끝에서 구를 작은 공을 생각했다. 볼펜이라는 이름이 앞세우는 그 볼 말이다.
그래서 이 글은 볼펜 볼의 원리를 다룬다. 지름 1mm 안팎의 공이 어떻게 잉크를 종이로 옮기는지, 촉 안쪽은 어떻게 생겼는지, 굵기 표기 0.5는 무엇의 치수인지, 부드러운 볼펜과 긁히는 볼펜은 어디서 갈리는지. 제조사 기술 문서와 공개 자료를 종합해 정리했다.
볼펜 볼의 원리, 잉크 묻은 공을 굴려서 쓴다
볼펜은 잉크를 뿜지 않는다. 잉크가 묻은 공을 종이 위에 굴린다. 촉 끝 볼의 안쪽 절반은 잉크 관에 잠겨 있고, 잉크가 중력을 타고 내려와 그 면을 적신다. 펜을 끌면 볼이 구르면서 잉크 묻은 면을 종이에 대 주고, 잉크를 넘겨준 면은 돌아 들어
모니터 밑에 두꺼운 책 두 권을 괴어 둔 책상을 본 적이 있을 것이다. 어쩌면 당신 책상일지도 모른다. 낮은 화면에 맞춰 고개를 숙이다 보면 목이 먼저 항의하고, 그쯤 되면 검색창에 모니터암을 치게 된다. 문제는 그다음이다. 스펙표에는 가스스프링, 기계식, 하중 3.2~11.3kg 같은 말이 줄줄이 나오는데 어느 것 하나 친절하지 않다.
그래서 제조사 스펙시트와 기술 자료를 뒤져 정리했다. 이 글이 답하는 질문은 셋이다. 모니터암의 가스스프링은 어떤 원리인지, 기계식 스프링과 무엇이 다른지, 하중 범위는 어떻게 읽는지. 결론 하나만 미리 말하면, 하중은 최대보다 최소가 더 자주 발목을 잡는다.
모니터암이 아무 높이에서나 멈추는 원리, 가스스프링
가스스프링은 압축 질소가 든 밀봉 실린더다. 모니터를 내리면 실린더 속 피스톤이 가스를 누르고, 가스는 눌린 만큼 되밀어 낸다. 자전거 공기 펌프의 입구를 막고 눌렀다 놓을 때 오는 반발력과 같은 종류의 힘이다.
모니터암은 이 반발력
연말마다 다이어리를 산다. 그리고 거의 매년 데일리 플래너를 골랐다. 하루에 한 면씩, 날짜가 큼직하게 박힌 그 두툼한 물건 말이다. 문제는 결과가 늘 똑같다는 것이다. 1월은 빼곡하고, 2월은 듬성듬성해지고, 3월이 되면 대부분의 페이지가 백지다.
올해는 자책하기 전에 원인을 따져봤고, 답부터 말하면 의지가 아니라 양식 선택의 문제였다. 하루 기록량이 적은 사람이 데일리를 사면 빈 공간이 죄책감이 되어 다이어리를 덮게 만든다. 이 글은 위클리와 데일리 플래너의 차이를 정리하고, 자기 기록량을 재서 3월에도 살아남는 플래너를 고르는 법을 다룬다.
위클리와 데일리, 한 면에 담는 날짜 수가 다르다
플래너 양식이란 결국 하나의 질문에 대한 답이다. 한 면에 며칠을 담을 것인가. 데일리는 한 면에 하루, 위클리는 한 면에 이레, 먼슬리는 한 면에 한 달을 담는다.
같은 크기의 지면을 시간으로 얼마나 잘게 쪼개느냐의 문제다. 데일리로 갈수록 하루에 배정된 공간은 넓어지고, 먼슬리로
일기용 한 권, 업무용 한 권, 스크랩용 한 권. 노트 세 권을 가방에 넣고 다니다 보면 어느 순간 한 권으로 합치고 싶어진다.
그 답은 대체로 두 갈래다. 하나는 링과 구멍의 세계, 시스템 바인더이고, 다른 하나가 오늘의 주제인 트래블러스노트다. 가죽 커버와 고무밴드만으로 노트 여러 권을 묶는 방식인데, 구성품이 커버·밴드·리필 세 가지뿐이라 구조가 놀랄 만큼 단순하다. 이 글은 그 장착 원리와 바인더와의 차이, 꽂을 수 있는 리필 권수, 어떤 사람에게 맞는지를 정리한다.
트래블러스노트 구성품, 커버·밴드·리필
기본 구조는 세 부품이 전부다. 등에 구멍을 낸 커버, 그 구멍을 통과하는 고무밴드, 그리고 밴드에 등이 걸리는 얇은 제본 노트(리필).
리필을 가운데에서 펼쳐 밴드에 끼우면 장착은 그걸로 끝이다. 구멍도 링도 접착제도 필요 없다. 리필을 더 걸고 싶으면 보조 밴드를 하나 더 넣어서 두 권, 세 권을 나란히 묶으면 된다. 제본 방식 글의 말을 빌리면, 리필 각각은
업무 노트를 잘 써보겠다고 인덱스탭 한 통을 산 적이 있다. 결과는 역설적이었다. 탭이 늘어날수록 오히려 찾는 속도가 느려진 것이다. 중요한 페이지마다 붙이다 보니 노트 옆면은 어느새 무지개떡이 되어 있었다.
원인부터 말하면 색이 너무 많았다. 인덱스탭 색상 코딩은 색을 다섯 개 안팎으로 줄이고 기준을 하나로 유지할 때만 작동한다. 이 글은 색이 글자보다 빨리 인식되는 원리와 탭이 오히려 방해가 되는 조건, 그리고 실패하지 않는 색상 코딩 규칙을 정리한다.
색이 글자보다 빨리 인식되는 이유
색상 코딩이 작동하는 근거는 인지의 순서에 있다. 색이나 크기, 방향 같은 시각 정보는 글자를 읽기도 전에 거의 자동으로 처리된다.
노트 옆면을 훑을 때 파란 탭은 읽지 않고도 눈에 튀어나오지만, "회의록"이라고 적힌 탭은 하나하나 읽어야 한다. 색 코드는 찾는 일을 "읽기"에서 "보기"로 끌어내리는 장치다. 불렛저널의 인덱스가 목차라면, 인덱스탭은 그 물리적인 바로가기인 셈이다.
인
필통을 정리하다가 같은 모델의 볼펜이 세 자루라는 걸 발견했다. 잉크가 다 되면 리필심 대신 매번 새 펜을 샀던 흔적이다. 리필이 있는 줄 몰랐던 것도 아닌데 왜 자꾸 본체를 샀을까.
게으름이라고 결론 내리기 전에 그 게으름이 실제로 얼마짜리인지 계산해 봤고, 답부터 말하면 펜에 따라 다르다. 천 원대 펜은 리필해도 이득이 거의 없고, 만 원대 이상 펜은 리필 서너 번이면 본체 값을 회수한다. 이 글은 그 갈림길과 함께, 리필 규격 확인법과 새 펜만 살 때 생기는 숨은 비용까지 정리한다.
리필형 볼펜과 일회용 볼펜, 가격 구조 차이
시중 가격들을 모아 스프레드시트에 정리해 보니, 펜의 세계는 리필 관점에서 두 부류로 나뉜다.
저가 펜은 본체 가격과 리필심 가격이 거의 붙어 있다. 본체가 천 원인데 리필이 칠팔백 원인 식이다. 이 구간에서 리필은 경제 행위가 아니라 그냥 취향의 문제다. 그립이 길이 들었든 몸통에 정이 들었든, 돈으로는 딱히 정당화가 안 된다.
중가 이상의
스테이플러 침이 떨어져서 문구점에 갔다. 입에서 "10호 주세요"가 반사적으로 나왔고, 계산을 마치고 나오다가 문득 멈춰 섰다. 10호가 대체 무슨 뜻이지. 옆 선반의 상자에는 24/6이라는 분수 같은 표기가 붙어 있었다.
해독 결과부터 말하면, 24/6은 철사 굵기와 다리 길이라는 두 개의 치수고, 10호는 일본에서 온 별도의 소형 침 번호 체계다. 이 글은 두 표기의 뜻과 함께 스테이플러로 찍을 수 있는 최대 매수, 침 없는 스테이플러, 용도별로 어떤 침을 살지까지 정리한다. 평생 쓴 물건의 규격을 정작 모르고 있었다는 머쓱함이 이 글의 동력이다.
스테이플러 침 24/6 표기가 뜻하는 것
24/6에서 앞 숫자는 철사의 게이지(굵기)이고 뒤 숫자는 다리 길이를 밀리미터로 나타낸다. 24게이지 철사로 만든 다리 6mm짜리 침이라는 뜻이다. 국제적으로 통용되는 표기다.
26/6은 더 가는 철사에 같은 길이, 24/8은 같은 굵기에 더 긴 다리다. 게이지는 숫자가 클수록 오히려
현관의 클립보드, 서류 동선을 개편할 때 진행 서류의 지정석이 됐던 바로 그 물건이 서류를 한 장 흘렸다. 집게를 살펴보니 물리는 힘이 예전 같지 않다. 반대편 책상에서는 두꺼운 묶음에 물린 바인더 클립이 종이에 반달 모양 자국을 새기는 중이다.
진단부터 말하면, 흘리는 집게는 스프링이 지친 것이고 자국을 남기는 집게는 크기가 안 맞는 것이다. 이 글은 클립이 종이를 무는 원리(지렛대와 스프링), 무는 힘과 자국의 맞바꿈, 스프링이 약해지는 이유와 예방법, 용도별로 고르는 법을 정리한다.
클립이 종이를 고정하는 원리, 지렛대와 스프링
클립보드의 집게든 바인더 클립이든 구조는 같다. 힘을 내는 건 스프링이고, 그 힘을 손가락이 이길 수 있게 해주는 게 지렛대다.
클립보드는 감긴 토션 스프링이고, 바인더 클립은 몸통 자체가 판 스프링이다. 누르는 자리와 무는 자리 사이에 받침점을 어떻게 배치하느냐에 따라, 작은 손가락 힘으로 그보다 훨씬 큰 무는 힘을 제어하게 된다. 바인더 클
불렛저널을 검색하면 완전히 다른 두 세계가 나온다. 하나는 수채 팔레트와 스티커로 가득한 다꾸의 세계, 다른 하나는 창시자 라이더 캐롤이 처음 만든, 검정 펜 하나로 굴러가는 원래의 기록법이다.
결론부터 말하면 불렛저널 쓰는 법의 핵심은 꾸미기가 아니라 4가지 요소다. 불릿 기호, 인덱스, 로그, 마이그레이션. 이 글은 각 요소가 무슨 문제를 해결하는지 하나씩 설명하고, 어떤 사람에게 필요한지와 가볍게 시작하는 법까지 정리한다. 화려한 쪽에 압도되어 시작을 자꾸 미루는 사람을 여럿 봤기 때문이다.
불릿 기호, 할 일의 상태를 표시하는 법
원래 표기법은 세 가지 기호가 전부다. 점(•)은 할 일, 동그라미(○)는 일정, 대시(–)는 메모다. 할 일이 끝나면 점 위에 X를 치고, 미루면 화살표(>)로 바꾼다.
요점은 예쁨이 아니라, 한 줄 한 줄이 자기 상태를 스스로 표시한다는 것이다. 목록을 나중에 다시 읽을 때 "이게 뭐였더라" 하고 해석하는 수고가 통째로 사라진다. 기호는
책상 구석의 "나중에 볼 것" 더미가 어느새 3단 오거나이저 높이를 넘어섰다. 맨 아래 서류가 무엇인지조차 기억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인정한 날, 더미를 뒤집는 대신 구조부터 따져보기로 했다.
결론부터 말하면, 서류가 쌓이는 건 게으름이 아니라 "쌓아두기"라는 방식 자체의 문제다. 해법은 들어오는 서류를 한 곳(인박스)에 모으고 세 갈래 출구(진행·보관·배출)로 내보내는 동선을 만드는 것이다. 이 글은 그 동선 설계와 함께 서류를 세워둘지 눕혀둘지, 서류량에 따라 어디까지 갖출지를 정리한다.
쌓아둔 서류를 안 보게 되는 이유
서류 더미는 새 것이 위에 얹히고 꺼낼 때도 위에서부터 꺼내는 구조다. 그래서 먼저 온 것일수록 계속 아래에 깔린다.
문제는 서류의 급한 정도가 도착 순서와 아무 상관이 없다는 데 있다. 아래에 깔린 것들 중에 마감이 훨씬 급한 것들이 섞여 있다. 게다가 더미는 눈에 보이는 게 맨 위 한 장뿐이고, 나머지는 "있다는 기억"에만 의존한다. 기억에 의존하는
회의실에서 만년필을 꺼냈다가 조용히 다시 넣었다. 회사 복사지 위에서 내 글씨가 수염 난 얼룩으로 변하는 걸 봤기 때문이다. 같은 펜이 집의 노트에서는 흠잡을 데 없이 매끄럽게 구르는데, 종이가 바뀌자 완전히 다른 도구가 되어버렸다.
만년필이 종이를 가리는 이유부터 말하면, 잉크를 다른 필기구보다 훨씬 많이 쏟아내는 도구라서다. 그래서 종이의 약점이 페더링, 번짐, 비침이라는 세 가지 문제로 그대로 드러난다. 이 글은 세 현상의 원인을 나눠서 정리하고, 만년필에 맞는 종이를 확인하는 법과 안 맞는 종이에서 버티는 법까지 다룬다.
만년필 잉크가 유독 많이 나오는 이유
출발점은 잉크 방출량이다. 볼펜의 유성 잉크가 끈적한 잉크를 볼로 조금씩 굴려 바르는 방식이라면, 만년필은 묽은 수성 잉크를 모세관 현상으로 흘려보내는 방식이다. 단위 길이당 종이에 도달하는 액체의 양이 필기구 중에서도 최상위권이다.
그래서 볼펜이 아무 종이에서나 무난한 반면, 만년필은 종이의 모든 약점을 사정없
손글씨를 몰아 쓴 날이면 중지 첫마디에 펜이 지나간 자국이 남는다. 오래 눌린 살이 조용히 항의하는 흔적이다. 늘 손버릇 문제라고만 생각했는데, 필기구 인체공학 자료들을 읽다가 관점이 완전히 바뀌었다.
결론부터 말하면, 필기할 때 손이 아픈 이유의 상당 부분은 펜의 스펙 세 가지에 있다. 그립 지름, 그립 소재, 그리고 무게중심이다. 이 셋이 쥐는 힘을 어떻게 바꾸는지, 손이 편해지는 조합은 무엇인지 정리한다.
그립 지름이 가늘면 손에 힘이 더 들어가는 이유
직관과 반대로, 가는 펜일수록 손은 더 세게 쥔다. 그립이 가늘수록 손가락이 더 오므라들고, 오므라든 손은 같은 제어를 하기 위해 더 강하게 쥐어야 하기 때문이다.
통용되는 인체공학 가이드들이 필기구 그립 지름으로 10mm 안팎 이상을 권하는 이유가 여기 있고, 손이 크거나 필기량이 많을수록 굵은 그립의 이득도 그만큼 커진다. 물론 반대급부도 있다. 굵은 그립은 세밀한 획 제어에서 정밀도를 조금 내준다. 가는 펜이 여전
회의실 풍경이 반으로 갈라진 지 오래다. 절반은 노트북과 태블릿, 나머지 절반은 여전히 수첩. 태블릿 진영으로 넘어갔던 동료 하나가 최근 수첩으로 돌아왔길래 이유를 물었더니, 타이핑한 회의는 기억이 안 난다는 것이다.
자료를 찾아본 결론부터 말하면, 구조가 있는 현상이 맞다. 손글씨가 기억에 유리한 이유는 도구의 마법이 아니라 처리 방식의 차이다. 타이핑은 들리는 대로 받아 적게 되고, 손글씨는 느려서 어쩔 수 없이 요약하게 되는데, 그 요약의 수고가 기억을 만든다. 이 글은 그 연구 근거와 태블릿 필기의 위치, 목적별로 필기 도구를 고르는 법을 정리한다.
손글씨와 기억력, 연구가 실제로 말하는 것
이 주제의 대표 연구로 자주 인용되는 것이 2014년 뮬러와 오펜하이머의 노트 필기 실험이다. 강의를 손글씨로 필기한 집단과 노트북으로 필기한 집단을 비교했더니, 단순 암기력은 비슷했지만 개념을 이해하는 문제에서는 손글씨 집단이 우세했다.
연구진이 지목한 원인이 흥미롭다. 도구
모니터 아래에 메모를 마스킹테이프로 붙여뒀다. 한 달 뒤 메모는 바닥에 떨어져 있었다. 같은 주에 다른 사건도 접수됐다. 벽에 붙였던 테이프를 떼자 벽지 표면이 함께 뜯겨 나왔다.
결론부터 말하면 마스킹테이프는 접착력이 약한 테이프가 아니라 떨어짐을 설계한 테이프고, 그 설계에는 점착 등급이 있다. 한쪽에서는 너무 빨리 놓아버리고 다른 쪽에서는 너무 꽉 붙잡는 이 일관성 없어 보이는 물건의 스펙을, 두 사건을 재료 삼아 정리한다.
마스킹테이프가 붙는 원리, 감압접착제
테이프류의 접착은 감압접착제가 담당한다. 이름 그대로 압력을 받는 만큼 붙는 접착제다.
풀이나 본드처럼 굳으면서 붙는 게 아니라, 반고체 상태의 끈끈한 물질이 압력을 받으면 표면의 미세한 요철로 흘러들어 밀착하는 방식이다. 그래서 세게 문지를수록 접촉 면적이 늘어 점착력이 올라가고, 시간이 지나도 서서히 퍼지면서 더 단단히 붙는다. 붙인 직후엔 잘 떨어지던 테이프가 반년 뒤엔 안 떨어지는 그 현상의 정체가 바로
헌책방에서 같은 연대의 책 두 권을 만졌다. 한 권은 페이지 모서리가 누렇게 바스라져 가루를 남겼고, 다른 한 권은 종이가 그저 미색일 뿐 멀쩡했다. 나이는 같은데 노화가 다르다.
두 책의 운명을 가른 것은 종이의 산도다. 산이 남아 있는 산성지는 스스로를 분해하며 부서지고, 산을 없앤 중성지는 수백 년을 버틴다. 이 글은 산성지가 부서지는 이유와 중성지의 원리, 그리고 오래 남길 기록에 맞는 종이 고르는 법을 정리한다. 헌책방 취미가 없어도 상관있는 이야기다. 지금 쓰는 다이어리가 20년 뒤 어느 쪽 책이 될지를 이 산도가 정하기 때문이다.
산성지가 시간이 지나면 부서지는 이유
산성지는 종이에 남은 산이 종이 자신을 분해하기 때문에 부서진다. 외부의 공격이 아니라 제 몸에 지닌 산으로 스스로를 소화하는 구조다.
19세기 후반부터 20세기 후반까지 대량 생산된 종이는 대부분 산성지다. 목재 펄프를 값싸게 종이로 만드는 과정에서 산성 약품이 쓰였고, 종이에 남은 산은 시간이
문구점에서 6공 속지를 사 왔고, 집의 6공 바인더에 끼우려다 멈췄다. 구멍이 링과 만나지를 않는다. 여섯 개 대 여섯 개인데 서로 완전히 다른 곳을 보고 있었다.
원인부터 말하면, 6공은 규격 이름이 아니라 그저 구멍 개수일 뿐이다. 판형(A5·바이블·미니)마다 구멍 배열이 달라서 판형이 다르면 6공끼리도 호환되지 않는다. 이 글은 그 구조와 함께 규격 표기 읽는 법, 링 지름과 수납량, 사기 전에 확인할 것들을 정리한다. 환불하러 가기 전에 원인을 알아야 재발을 막을 수 있으니까.
6공이어도 판형마다 구멍 배열이 다르다
시스템 다이어리의 구멍 배열은 판형에 종속된다. A5 6공, 바이블 6공, 미니 6공은 저마다 용지 크기가 다르고 구멍 여섯 개의 간격 배열도 다르다.
공통 패턴은 3+3이다. 위쪽에 세 구멍, 아래쪽에 세 구멍이 몰려 있고 가운데는 비어 있는 형태인데, 그 묶음 사이 거리와 묶음 내 간격이 판형마다 미묘하게 다르게 설계돼 있다. 그래서 바이블 6공 속지
만년필 잉크가 떨어졌다는 친구의 두 번째 상담이 왔다. 첫 상담은 닙이었는데, 이번 질문은 리필이다. 카트리지를 계속 사는 게 나을지, 아니면 컨버터라는 걸 사야 할지.
계산 결과부터 말하면, 카트리지 20~30개를 쓸 만큼 필기량이 있으면 컨버터와 병잉크 쪽이 이득이다. 매일 쓰는 펜이면 1년 안쪽에 도달하는 지점이고, 가끔 꺼내는 펜이면 몇 년이 걸린다. 이 글은 그 계산 과정과, 가격 말고 따져야 할 조건들을 정리한다. 취향 문제처럼 보이지만 절반은 계산 문제라서, 계산부터 하고 취향을 얹는 순서가 맞다. 결국 또 시트를 열었다.
만년필 컨버터와 카트리지 구조 차이
카트리지는 일회용 잉크 탱크, 컨버터는 재사용 잉크 탱크다. 꽂는 자리는 같다.
카트리지는 잉크가 담긴 일회용 플라스틱 통이다. 펜에 꽂으면 내부 침이 막을 뚫으면서 잉크가 흐르기 시작한다. 다 쓰면 버리고 새것을 꽂으면 그만이라, 잉크를 직접 만질 일이 없다. 컨버터는 같은 자리에 꽂는 재사용 탱크다. 피
자정 넘어 다이어리를 몰아 쓰는데 눈이 유난히 뻑뻑했다. 스탠드를 노려보다가 몸통의 스티커를 발견했다. 6500K. 낮에는 아무렇지 않던 이 숫자가 밤에는 왜 눈을 이렇게 공격하는가.
자료를 읽고 얻은 답부터 말하면, K 뒤의 숫자는 밝기가 아니라 빛의 색(색온도)이고, 6500K의 푸른 흰빛은 밤 시간대와 안 맞는 배치였다. 이 글은 색온도의 뜻과 시간대별로 적합한 색온도, 함께 봐야 할 조도, 색온도 조절 기능이 실제로 필요한 사람을 정리한다. 새벽의 우선순위는 늘 이런 식으로 정해진다.
색온도(K)와 밝기는 다른 개념이다
색온도의 단위인 K(켈빈)는 광원이 내는 빛의 색을 나타낸다. 숫자가 낮으면 주황빛에 가까운 전구색, 높으면 푸른 흰빛에 가까운 주광색이고, 그 사이 4000~5000K 대가 중립적인 주백색이다.
직관과 반대로 차가운 파란빛이 오히려 높은 숫자라는 점이 자주 헷갈리는데, 금속을 달굴 때 빨강에서 흰색을 거쳐 파랑 순으로 뜨거워지는 물리에서 온 이름이라
내 얇은 사전에 형광 줄을 그었더니 뒷장의 단어 세 개가 노란 배경을 얻어버렸다. 앞장을 강조했는데 뒷장이 멋대로 편집된 것이다. (도서관에서 빌린 책 이야기는 아니다. 빌린 책에 형광펜을 긋는 건 그 자체로 범죄니까.)
얇은 종이에서 형광펜이 사고를 내는 원인은 두 가지다. 잉크가 종이를 뚫고 스며드는 번짐, 그리고 색이 뒷면까지 보이는 비침. 이 글은 그 원인을 정리하고, 뒷면을 지키는 대안 세 가지(고체 형광펜, 파스텔 형광펜, 드라이 하이라이터)를 스펙 기준으로 비교한다.
형광펜이 뒷면까지 비치는 이유
형광펜이 뒷면을 망치는 경로는 두 갈래다. 첫째, 형광펜은 잉크를 많이 쏟는 도구다. 넓은 칩으로 면을 칠하는 구조라 필기구 중에서도 단위 면적당 잉크 방출량이 가장 많은 축인데, 수성 잉크가 이 정도 양으로 들어오면 사전지 같은 얇은 종이는 그냥 뚫려버린다. 이게 번짐이다. 둘째, 용케 안 뚫려도 문제가 남는다. 형광색은 빛을 더해 내보내는 색이라 존재감이 워낙 강해서
책상 위에 물을 쏟았다. 수습하고 보니 피해가 이상하게 편파적이었다. 다이어리의 볼펜 글씨는 멀쩡한데, 만년필로 쓴 페이지는 파랗게 번져서 졸지에 수채화가 되어 있었다. 같은 잉크라는 이름을 쓰는데 왜 하나는 버티고 하나는 흘러내리는가.
새벽까지 잉크 조성 자료를 읽고 얻은 답부터 말하면, 잉크는 색을 붙잡아두는 방식에 따라 염료 잉크, 안료 잉크, 철갈 잉크로 나뉘고 물에 버티는 힘과 관리 부담이 각각 다르다. 이 글은 세 종류의 차이와 용도별로 고르는 법을 정리한다. 물 쏟은 날 밤에 할 일치고는 좀 뜬금없었지만, 건진 것은 확실했다.
염료 잉크란, 색이 물에 녹아 있는 잉크
만년필 잉크의 기본값은 염료 잉크다. 색 분자가 물에 완전히 녹아든 상태로, 설탕물처럼 입자가 없는 균일한 용액이다.
이 구조의 장점은 만년필이라는 기계와의 궁합이다. 입자가 없으니 가느다란 잉크 길을 막을 일이 없고, 발색이 맑고 선명하며, 색 배합이 자유로워서 잉크 색 놀이의 대부분이 여기서 일
만년필에 입문하겠다는 친구에게 연락이 왔다. 질문은 단 한 줄이었다. EF랑 F 중에 뭐 사.
간단히 답해주려다 알게 된 결론부터 말하면, 만년필 닙 굵기 표기는 국제 규격이 아니다. 같은 F가 브랜드에 따라 다른 굵기를 가리킨다. 이 글은 그 이유와 함께 일본 닙과 서양 닙의 차이, 한글 필기에 맞는 닙 고르는 법을 정리한 것이다. 친구에게 답장을 보낸 건 그날 밤 늦게였고, 반응은 "그냥 아무거나 살걸"이었지만.
만년필 닙 표기가 브랜드마다 다른 이유
EF, F, M, B라는 표기는 ISO 같은 표준이 정한 수치가 아니라, 각 제조사가 자기 기준으로 붙이는 상대 등급이다. 그래서 "F 닙 = 몇 mm"라는 절대 환산표는 존재하지 않고, 공개된 브랜드별 자료를 모으면 같은 F라도 선폭이 대략 0.1mm 이상 벌어진다.
볼펜의 0.5mm 표기가 볼 지름이라는 물리량을 가리키는 것과는 완전히 대비되는 지점이다. 만년필의 세계는 숫자 대신 문자를, 규격 대신 관례를 쓴다.
노트의 왼쪽 페이지에 쓸 때마다 오른손이 두 가지 일을 한다. 쓰는 일, 그리고 자꾸 닫히려는 페이지를 누르는 일. 문진을 올려놓고 쓰다가 문득 억울해졌다. 어떤 노트는 펼치면 얌전히 펴져 있는데 이 노트는 왜 자꾸 저항하는 걸까.
답부터 말하면 표지도 종이도 아닌 제본 방식, 그중에서도 등의 구조가 펼침을 정한다. 이 글은 중철·링·사철·무선 네 가지 제본 방식의 펼침 차이와 "180도 펼침" 광고 문구를 확인하는 법, 용도별로 제본을 고르는 법을 정리한다.
노트가 평평하게 펼쳐지는 원리
노트가 펼쳐진다는 것은 등 부분이 바깥쪽으로 휘어준다는 뜻이다. 등이 딱딱하면 페이지들이 등에서 부채꼴로 일어서고, 안쪽 페이지는 계곡처럼 말려 들어간다. 손으로 눌러야 하는 노트가 바로 그 상태다.
그러니 펼침성은 종이의 문제가 아니라 구조의 문제다. 등을 무엇으로, 어떻게 묶었는가가 전부를 결정한다.
제본 방식 네 가지, 중철·링·무선·사철 비교
중철, 그러니까 스테이플 제본은
책상 위가 한계에 도달해서 정리용품을 검색했다. 데스크 오거나이저 매대를 한 시간쯤 들여다보다가 이상한 점을 발견했다. 서랍형이든 선반형이든 대부분이 3단이었다. 2단도 4단도 5단도 만들 수 있을 텐데 왜 시장은 하필 3단으로 수렴했을까.
답부터 말하면 두 가지가 겹친 결과다. 앉은 자세에서 손이 편하게 닿는 높이가 약 30cm까지라는 인체공학, 그리고 책상 물건이 자주·가끔·보관 세 층으로 나뉜다는 분류 심리다. 이 글은 그 근거와 함께 소재별 수납 차이, 오거나이저 놓는 위치까지 정리한다. 정리는 이번에도 계산이 끝난 뒤로 미뤄졌다.
3단 오거나이저가 손 닿는 높이에 맞는 이유
앉은 사람이 시선 이동 없이 팔을 뻗어 편하게 닿는 수직 범위는 책상 면 위로 대략 30cm 안쪽이다. 인체공학 자료들이 공통으로 말하는 수치다.
오거나이저 한 단의 실용 높이를 8~10cm로 잡으면, A4 서류나 필기구가 들어가는 최소 높이인데, 3단이 정확히 그 경계에 딱 맞아떨어진다. 4단
서랍을 정리하다가 볼펜을 아홉 자루 발견했다. 시필을 해보니 네 자루가 안 나왔다. 잉크가 절반 넘게 남은 게 훤히 보이는데 대체 왜 침묵하는가.
결론부터 말하면, 안 나오는 볼펜의 원인은 크게 세 가지고 그중 상당수는 살릴 수 있다. 이 글은 볼펜 잉크가 굳는 원인과 살리는 법, 예방법을 정리한다. 버리는 일은 자연스럽게 미뤄졌고, 굳은 볼펜의 원인을 규명하는 일이 대신 시작됐다. 이런 식으로 청소가 조사로 바뀌는 게 벌써 몇 번째인지 모르겠다.
볼펜 잉크가 굳는 세 가지 원인
공개 자료를 종합하면 안 나오는 볼펜의 원인은 세 가지다. 용제 증발, 팁 표면의 건조 피막, 그리고 잉크 역류다.
첫 번째는 용제의 증발이다. 유성 잉크는 색소를 알코올 계열 용제에 녹인 것인데, 펜 끝 볼과 소켓 사이의 미세한 틈으로 용제가 아주 천천히 달아난다. 용제가 줄면 잉크 점도가 계속 올라가다가 결국 볼이 구르지 못하는 지경에 이른다. 뚜껑을 잃어버린 펜이 먼저 가는 이유가 여기 있다.
서류에 수정액을 바르고, 다 말랐다고 판단했고, 틀렸다. 위에 쓴 볼펜 글씨가 덜 마른 흰 바닥과 함께 밀리면서 서류는 아까보다 더 심란해졌다. 다시 뽑은 서류에는 수정테이프를 썼는데, 이번엔 긋자마자 바로 쓸 수 있었다.
결론부터 말하면, 일상적인 수정은 수정테이프가 기본값이고 수정액은 요철이나 넓은 면적에서만 이긴다. 이 글은 같은 "흰색으로 덮기"인데 왜 하나는 기다려야 하고 하나는 바로 쓰는지, 그 원리 차이와 상황별 기준을 정리한다. 지우개 원리 글에서 미뤄둔 숙제이기도 하다.
수정테이프와 수정액, 원리는 같다
두 도구 모두 잉크를 지우지 않는다. 이산화티타늄이라는 백색 안료로 잉크 위를 덮을 뿐이다.
이산화티타늄은 불투명도가 매우 높아서 얇게 발라도 아래를 가리는데, 흰 페인트나 선크림에 들어가는 것도 이 안료다. 색이 입자로 일하는 안료 잉크와 같은 원리다. 두 도구의 진짜 차이는 안료가 아니라 그 안료를 종이에 옮기는 방식에 있다.
수정액의 원리, 바르고
회사 비품함에서 연필을 하나 집었다. 몸통에 HB라고 적혀 있었다. 그 순간 이상한 기억이 따라왔다. 초등학생 때는 다들 2B를 쓰라고 했는데, 어른의 연필은 왜 HB일까.
답부터 말하면, 연필 경도 기호는 등급이 아니라 흑연과 점토의 배합 비율 표시다. H는 단단하고 연하게, B는 무르고 진하게. 이 글은 그 기호가 뜻하는 것과 함께, 어린이 연필이 2B인 이유, 미국 연필의 #2, 경도를 정해 두는 JIS 규격, 용도별로 경도를 고르는 법까지 정리한다. 연필을 깎다 말고 시작된 검색이 여기까지 왔다.
연필 경도 기호(H·B)가 뜻하는 것
연필심은 흑연 가루와 점토를 반죽해서 굽고, 이 배합비가 경도의 전부다. 점토가 많아질수록 심이 단단해지고(H, hard) 글씨는 연해진다. 흑연이 많아질수록 심이 무르고(B, black) 글씨는 진해진다. HB는 그 중간, F는 HB와 H 사이에 낀 미묘한 존재다. 4H에서 2H, H, F, HB, B, 2B, 4B로 갈수록 점토의 자리
발단은 노트 쇼핑몰의 후기였다. "만년필에는 무조건 100gsm 이상"이라는 문장이 상식처럼 반복되고 있었다. 평량은 종이 1제곱미터의 무게일 뿐인데, 무게가 무거우면 정말 안 비칠까.
스펙 자료를 모아 따져본 결론부터 말하면, 절반만 맞는 이야기다. 비침을 정하는 것은 무게가 아니라 불투명도고, 번짐을 막는 것은 사이징이라는 표면 처리다. 이 글은 비침과 번짐이 왜 다른 현상인지부터 안 비치는 노트를 고르는 기준까지 정리한다. 젤펜 글 끝에서 예고한 숙제이기도 하다. 이런 절반짜리 상식이야말로 이 책상이 좋아하는 먹잇감이다.
비침과 번짐, 서로 다른 현상이다
후기들이 "비친다"로 뭉뚱그리는 현상은 사실 둘이다. 비침(show-through)은 뒷면 글씨가 종이를 투과해 어른거리는 것으로 빛의 문제고, 번짐(bleed-through)은 잉크가 종이를 뚫고 뒷면까지 도달하는 것으로 침투의 문제다.
원인이 다르면 처방도 달라야 하는데, 둘을 섞어 부르는 순간 "두꺼운 종이 사면
표지가 마음에 들어서 산 노트가 있다. 첫 페이지를 쓰는데 어딘가 갑갑했다. 자세히 보니 내 글씨가 줄을 자꾸 넘어가서, 받침이 아랫줄을 침범하고 있었다.
원인부터 말하면 줄간격이다. 노트 줄간격은 6~8mm 규격으로 나뉘고, 자기 글씨 높이의 1.5배 안팎이 편안한 간격이라는 기준이 있다. 이 글은 줄간격 규격과 한글 글씨의 관계, 그리고 자기에게 맞는 줄간격을 찾는 법을 정리한다. 당신 서랍 어딘가에도 "예쁜데 이상하게 손이 안 가는 노트"가 한 권쯤 있지 않은지. 범인은 아마 줄간격이다.
노트 줄간격 규격, 6mm부터 8mm까지
유선 노트의 줄간격은 대충 정해지지 않았다. 미국 기준으로 와이드 룰이 약 8.7mm, 칼리지 룰이 약 7.1mm, 내로우 룰이 약 6.4mm로 규격화되어 있고, 국내 노트는 브랜드에 따라 대체로 6~8mm 사이에서 만들어진다.
문구점에서 "대학노트"라 불리는 물건의 줄간격이 브랜드마다 미묘하게 다른 이유가 여기 있다. 각자 다른 규격 계보를
다이어리를 사흘 밀리고 몰아 쓰는 밤이었다. 손에 잡히는 볼펜으로 첫 줄을 썼는데 종이를 긁는 느낌이 거슬려서 다른 펜으로 바꿨더니, 이번에는 미끄러지듯 나갔다. 둘 다 촉은 0.5mm였다.
결론부터 말하면 이 차이는 잉크 점도, 그러니까 잉크가 얼마나 끈적한가에서 온다. 이 글은 젤펜과 유성볼펜의 필기감 차이를 점도로 설명하고, 내 손에 맞는 펜을 고르는 기준까지 정리한다. 밀린 일기는 결국 다음 날로 넘어갔다. 우선순위가 이상하다는 자각은 있는데, 고칠 생각은 별로 없다.
볼펜 굵기(mm)만으로 필기감을 알 수 없는 이유
0.5mm라는 숫자에는 필기감 정보가 없다. 펜 포장의 0.5mm는 볼의 지름, 정확히는 선폭 규격이다. 같은 규격의 두 펜이 완전히 다른 느낌을 주는 이유는 그 바깥에 있고, 공개된 자료를 종합하면 대부분 잉크의 점도다.
젤펜과 유성볼펜의 잉크 점도 차이
젤펜과 유성볼펜의 잉크 점도는 몇 배 정도가 아니라 자릿수가 다르다. 제조사들이 공개한 스펙을
필통을 열었더니 지우개가 자에 눌어붙어 있었다. 떼어내니 자 표면이 뿌옇게 녹아 있다. 지우개가 옆에 있던 문구를 공격하는 이 현상, 한 번쯤 겪어봤을 것이다.
범인을 찾다 보니 질문이 하나 앞서 나왔다. 애초에 지우개는 어떤 원리로 연필 글씨를 지우는 걸까. 답부터 말하면, 지우개는 글씨를 갈아내는 게 아니라 흑연을 자기 쪽에 붙여서 떼어낸다. 이 글은 그 원리와 플라스틱·고무 지우개의 차이, 그리고 필통 사건의 범인까지 정리한다.
연필 자국이 종이에 남는 원리
연필로 쓴 자국은 잉크처럼 종이에 스며든 것이 아니다. 흑연 입자가 종이 표면의 섬유 사이에 얹혀 있을 뿐이다.
볼펜 글씨는 잉크가 섬유 속으로 파고들어서 지우개로는 어쩔 도리가 없지만, 연필 글씨는 표면에 붙어 있는 상태라 떼어낼 수 있다. 지울 수 있는 필기구와 없는 필기구의 운명이 여기서 갈린다. 참고로 표면에 얹히는 흑연의 양은 연필 경도(H·B)에 따라 달라서, 진하게 쓴 연필일수록 오히려 잘 지워진다.
책장을 정리하다가 7년 전 수험서를 펼쳤다. 볼펜 밑줄은 멀쩡한데 형광펜 자국만 유령처럼 옅어져 있었다. 같은 페이지에서 하나는 살아남고 하나는 증발했다면, 두 잉크는 애초에 다른 원리로 살았다는 뜻이다.
그래서 이 글은 형광펜의 원리를 정리한다. 형광펜이 왜 유난히 밝게 보이는지, 왜 노란색이 표준이 됐는지, 왜 햇빛에 바래는지. 셋 다 형광 염료라는 하나의 원리에서 나오는 이야기다. 책 정리는 그 자리에서 중단됐다. 궁금한 게 생기면 하던 일이 멈추는 체질이라 어쩔 수 없다.
형광펜이 유난히 밝아 보이는 이유
형광펜이 밝아 보이는 이유는 받은 빛보다 많은 빛을 눈에 돌려보내기 때문이다. 색이 진해서 튀는 게 아니라, 물리적으로 더 많은 빛이 눈에 들어온다.
일반 잉크의 색은 뺄셈으로 만들어진다. 종이에 닿은 빛 가운데 일부 파장을 흡수하고 나머지를 돌려보내는 방식이라, 빨간 잉크는 빨강 이외의 빛을 삼켜서 빨갛게 보인다. 당연히 들어온 빛보다 많은 빛이 나갈 수는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