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년필 잉크가 떨어졌다는 친구의 두 번째 상담이 왔다. 첫 상담은 닙이었는데, 이번 질문은 리필이다. 카트리지를 계속 사는 게 나을지, 아니면 컨버터라는 걸 사야 할지. 좋은 질문이다. 취향 문제처럼 보이지만 사실 절반은 산수 문제라서, 산수부터 하고 취향을 얹는 순서가 맞다. 결국 또 시트를 열었다. 두 번째 상담부터는 시트가 열리는 속도가 눈에 띄게 빨라졌다.
두 방식의 구조
카트리지는 잉크가 담긴 일회용 플라스틱 탱크다. 펜에 꽂으면 내부 침이 막을 뚫으면서 잉크가 흐르기 시작한다. 다 쓰면 버리고 새것을 꽂으면 그만이라, 잉크를 직접 만질 일이 없다. 컨버터는 같은 자리에 꽂는 재사용 탱크다. 피스톤이나 스크류를 돌려서 병잉크를 빨아들이는 구조로, 잉크는 병에서 사와 직접 채운다. 하드웨어로 치면 내장 배터리와 충전지의 관계쯤 된다.
손익분기의 산수
공개된 시중 가격으로 대략 계산해 본다. 브랜드나 환율에 따라 달라지니 자릿수 감각으로만 읽으면 된다. 카트리지는 개당 수백 원이고 용량은 개당 1ml 미만이 일반적이다. 병잉크는 30에서 50ml에 만 원에서 이만 원대가 흔한 구간인데, ml당 단가로 환산하면 카트리지의 몇 분의 일 수준으로 뚝 떨어진다. 컨버터 자체는 오천 원에서 만 원 안팎의 일회 투자다.
이 숫자들을 조합하면 손익분기가 나온다. 컨버터 가격을 카트리지와 병잉크의 ml당 단가 차이로 나누면, 대략 카트리지 20에서 30개 분량을 쓰는 시점에서 컨버터와 병잉크 쪽이 역전한다. 매일 쓰는 펜이라면 1년 안쪽, 가끔 꺼내는 펜이라면 몇 년이 걸릴 수도 있는 거리다. 컨버터가 경제적이라는 통설은 참이지만, 필기량이 그 참을 실제로 집행할 만큼 되는가는 사람마다 다른 조건문이다.

산수 밖의 변수들
경제성만으로 결론을 내면 세 가지 변수를 놓친다. 먼저 색 선택권이다. 카트리지로 나오는 색은 브랜드당 십수 종에 불과하지만 병잉크의 세계는 수천 종에 이른다. 잉크 색을 고르는 재미가 목적이라면 컨버터는 경제성이 아니라 그 세계로 들어가는 입장권이다. 다음은 관리 부담이다. 컨버터를 쓰려면 채우기와 닦기, 주기적인 세척이 세트로 따라온다. 안료 잉크를 쓸 계획이면 이 세척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다. 마지막은 휴대성이다. 이동 중 리필은 카트리지의 완승이다. 병잉크를 가방에 넣고 다니는 건 물을 쏟은 다이어리보다 더 큰 사고 시나리오를 품고 다니는 것과 다름없다.
절충안도 있다. 빈 카트리지에 스포이트나 주사기로 병잉크를 재주입하는 방식은 통용되는 우회로다. 컨버터 없이도 병잉크의 단가를 누릴 수 있지만, 손이 가장 많이 가는 길이기도 하다.
세척 부담의 실체도 숫자로 적어두면 한결 덜 무섭다. 통용되는 관리 주기는 잉크를 갈아탈 때마다, 그리고 같은 잉크라도 한두 달에 한 번 헹구는 정도다. 도구는 미지근한 물이면 충분하다. 세제나 뜨거운 물은 금물인데, 패킹과 수지 부품이 상하기 때문이다. 한 번에 십 분짜리 일이니, 커피 내리는 루틴에 슬쩍 얹어두면 잊히지 않는다.
친구에게 보낸 답
친구에게 보낸 답은 이랬다. 하루 한 페이지 이상 꾸준히 쓰고 잉크 색에 슬슬 눈이 가기 시작했다면 컨버터. 손익분기를 1년 안에 넘기고 색의 세계가 통째로 열린다. 필기가 간헐적이고 펜은 그저 도구일 뿐이라면 카트리지. 20개를 다 쓰기도 전에 세척 부담이 먼저 청구된다. 출장이나 이동이 잦다면 용도를 나누는 것도 방법이다. 집 펜은 컨버터로, 가방 펜은 카트리지로. 리필 방식은 대부분 펜에 종속되지 않고 호환되니, 나중에 갈아타도 늦지 않다.
답장 끝에 시트를 첨부했더니 친구의 답이 왔다. 너 이런 거 좋아하는구나. 부정하지 않았다. 좋아서 하는 계산이 언제나 제일 정확한 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