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장을 정리하다가 7년 전 수험서를 펼쳤다. 이상한 일이 벌어져 있었다. 볼펜 밑줄은 멀쩡한데 형광펜 자국만 유령처럼 옅어져 있는 것이다. 같은 페이지에서 하나는 살아남고 하나는 증발했다면, 두 잉크는 애초에 다른 원리로 살았다는 얘기가 된다. 책 정리는 그 자리에서 중단됐다. 궁금한 것이 생기면 하던 일이 멈추는 체질이라 어쩔 수 없다.
미리 말해두면, 형광펜이 눈에 띄는 이유와 형광펜이 사라지는 이유는 같은 원리에서 나온다. 이 글은 그 원리 하나를 따라가는 이야기다.
형광은 반사가 아니라 재방출이다
일반 잉크의 색은 뺄셈으로 만들어진다. 종이에 닿은 빛 가운데 일부 파장을 흡수하고 나머지를 돌려보내는 방식이라, 빨간 잉크는 빨강 이외의 빛을 삼켜서 빨갛게 보인다. 당연히 들어온 빛보다 많은 빛이 나갈 수는 없다.
형광 염료는 여기에 덧셈을 얹는다. 사람 눈에 보이지 않는 자외선을 흡수한 뒤, 그 에너지를 눈에 보이는 파장으로 바꿔서 다시 내보내는 것이다. 주변 종이는 반사만 하는데 형광 자국은 반사에 재방출까지 더하니, 그 부분만 빛이 많아 보인다. 형광펜 자국이 스스로 빛나는 것처럼 보이는 이유가 이것이다. 색이 진해서 튀는 게 아니라, 물리적으로 더 많은 빛이 눈에 들어온다. 문구점 매대에서 파는 물건치고는 꽤 호사스러운 물리 현상 아닌가.

왜 하필 노랑이 국민색이 됐나
형광펜 매대의 절반은 노랑이다. 공개된 자료를 종합하면 이유는 두 겹이다.
하나는 재료의 사정이다. 노랑 형광펜의 대표 염료인 파이라닌은 형광 염료 중에서 값이 싸고 비교적 안정적이며 발색이 강하다. 다른 하나는 시대의 흔적인데, 흑백 복사기의 시대에 노랑 하이라이트는 명도가 높아서 복사본에 거의 찍히지 않았다. 원본에는 강조가 보이고 복사본은 깨끗하게 나오니, 사무실에서는 그야말로 유용한 성질이었다. 컬러 스캔이 기본이 된 지금은 절반쯤 무의미해진 장점이지만, 표준이라는 것은 한번 정해지면 이유가 사라져도 남는다. 이런 관성의 사례를 모아둔 스프레드시트가 나에게 있다. 여기까지 오면 끝을 보게 되어 있는 것이다.
형광펜의 약점, 빛에 진다
빛을 먹고 빛을 뱉는 구조에는 대가가 있다. 형광 염료는 흡수한 에너지로 분자가 쉴 새 없이 들뜨는 만큼 구조가 상하기 쉽고, 특히 자외선에 오래 노출되면 분해된다. 염료가 분해되면 재방출이 멈추고, 재방출이 멈춘 형광 자국은 흐린 얼룩만 남긴다. 내 수험서에서 일어난 일이 정확히 이것이다. 그 책은 몇 년을 창가 책장에서 살았다.
같은 페이지의 볼펜 밑줄이 살아남은 것과 대조해 보면 재미있다. 유성 볼펜의 색소는 애초에 빛을 받아 적극적으로 일하는 구조가 아니라서 상대적으로 오래 버틴다. 요컨대 형광펜과 볼펜의 수명 차이는 품질의 문제가 아니라 사는 방식의 문제다. 화려하게 사는 쪽이 먼저 바랜다니, 잉크의 세계에도 나름의 교훈이 있다.
그래서 어떻게 쓰는 게 합리적인가
원리를 알면 사용 기준이 따라온다. 수명이 몇 달인 기록, 그러니까 시험공부 같은 용도라면 아무 상관이 없다. 형광펜의 시인성은 단기전에서 최고의 무기고, 바램은 그 기록의 수명 바깥에서 일어나는 일이다. 반대로 몇 년을 보관할 노트와 책이라면 형광펜 단독 강조는 위험하다. 강조가 사라지면 "과거의 내가 중요하다고 판단한 목록"이 통째로 사라진다. 이 경우에는 형광 위에 밑줄이나 여백 기호를 함께 남기는 쪽이 맞다. 형광이 증발해도 구조는 남으니까. 직사광이 드는 자리를 피하는 것만으로도 수명은 꽤 달라질 것으로 추정한다.
그러니 형광펜을 고를 때 "더 쨍한 것"을 찾는 일은 대체로 무의미하다. 쨍함은 염료의 원리가 이미 보장한다. 오래 남기고 싶다면 펜이 아니라 표시 방법을 바꿀 일이다.
7년 전의 하이라이트는 복구하지 못했다. 대신 그 페이지에 연필로 다시 밑줄을 그었다. 이번에는 원리를 알고 고른 도구다. 그리고 다음 궁금증이 벌써 대기 중이다. 연필로 밑줄을 긋다 보니 궁금해진 것인데, 지우개는 대체 어떻게 흑연을 데려가는 걸까. 이 블로그는 아무래도 이런 식으로 굴러갈 모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