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구점에서 6공 속지를 사 왔고, 집의 6공 바인더에 끼우려다 멈췄다. 구멍이 링과 만나지를 않는다. 여섯 개 대 여섯 개인데 서로 완전히 다른 곳을 보고 있었다. 환불하러 가기 전에 원인을 알아야 재발을 막을 수 있으니, 시스템 다이어리의 규격 지도를 한번 그려보기로 했다. 결론부터 말하면, 6공은 규격 이름이 아니라 그저 구멍 개수일 뿐이다.
같은 6공, 다른 좌표
시스템 다이어리의 구멍 배열은 판형에 종속된다. A5 6공, 바이블 6공, 미니 6공은 저마다 용지 크기가 다르고 구멍 여섯 개의 간격 배열도 다르다. 공통 패턴은 3+3이다. 위쪽에 세 구멍, 아래쪽에 세 구멍이 몰려 있고 가운데는 비어 있는 형태인데, 그 묶음 사이 거리와 묶음 내 간격이 판형마다 미묘하게 다르게 설계돼 있다. 그래서 바이블 6공 속지는 A5 6공 바인더의 링 위에 아예 올라가지도 못한다. 내 사고의 원인도 정확히 이것이었다. 바인더는 A5였고 사 온 속지는 바이블 판형이었는데, 포장에는 둘 다 그냥 6공 리필이라고만 적혀 있었다.
표기가 혼란을 판다
혼란의 절반은 표기 관행에서 온다. 같은 판형이 바이블, 성서, B6 변형, 포켓 등 여러 이름으로 불리고, 쇼핑몰 목록에는 판형 표기 없이 그냥 6공이라고만 적힌 상품이 흔하다. 만년필 닙 표기처럼 여기도 표준이 아니라 관례의 세계인 셈이다. 확실한 확인법은 두 가지뿐이다. 상품명에서 판형을 찾을 것, 그리고 그게 없으면 용지 치수와 구멍 배열의 실측치를 볼 것. 이미 갖고 있는 바인더가 있다면 속지 한 장을 꺼내 구멍 간격을 자로 재두는 게 가장 빠른 예방주사다. 사진으로 찍어 폰에 저장해 두면 매장에서 헤매는 일도 없다.

링 지름, 두께의 상한선
판형이 맞아도 변수는 하나 더 남아 있다. 링 지름이다. 링의 안지름이 수납 가능한 속지 두께의 상한을 정한다. 지름 20mm 링과 30mm 링은 겉보기엔 비슷해도 실제 수납량은 수십 장 단위로 갈린다. 통용되는 감각으로는 링 지름의 70에서 80퍼센트까지가 실용적인 수납선이다. 꽉 채우면 페이지 넘김이 뻑뻑해지고 구멍이 찢어지기 시작한다. 속지를 많이 들고 다니는 사람은 판형 다음으로 링 지름을 꼭 확인해야 하고, 반대로 얇게 쓰는 사람이 큰 링을 사면 부피만 낭비하게 된다.
생태계, 규격의 수명
마지막 기준은 개별 상품이 아니라 생태계다. 시스템 다이어리는 바인더보다 리필이 훨씬 오래 사는 물건이라, 리필 생태계가 넓은 판형이 장기적으로 유리하다. A5와 바이블 판형은 여러 브랜드가 속지를 내는 사실상의 공용 규격에 가깝고, 브랜드 고유 판형은 그 브랜드가 단종하는 순간 함께 고아가 된다. 예쁜 고유 판형에 정착하는 것도 그 자체로 취향이지만, 리필을 계속 살 수 있는가를 결제 전에 한 번쯤 물어볼 가치는 충분하다.
사기 전에 확인할 것
정리하면 이렇다. 시스템 다이어리 리필은 6공이라는 글자를 그대로 믿지 말고 판형명과 구멍 배열, 링 지름 세 가지를 함께 본다. 이미 바인더가 있으면 속지 실측치를 폰에 저장해 두고, 새로 시작한다면 생태계가 넓은 A5나 바이블로 들어가는 게 안전하다. 속지를 자주 갈아 끼우지 않는 사람이라면 애초에 제본 노트가 더 맞을 수도 있다. 바인더의 존재 이유는 결국 재배열이니까.
환불은 다녀왔다. 이제 내 폰에는 바인더 구멍 실측 사진이 저장돼 있고, 책상 위에는 판형이 맞는 속지가 얌전히 꽂혀 있다. 실수의 값으로 왕복 20분이 들었지만, 규격 지도 한 장을 얻었으니 이 정도면 수지가 맞는다고 정리해 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