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책방에서 같은 연대의 책 두 권을 만졌다. 한 권은 페이지 모서리가 누렇게 바스라져 가루를 남겼고, 다른 한 권은 종이가 그저 미색일 뿐 멀쩡했다. 나이는 같은데 노화가 다르다. 책의 팔자를 가른 것이 무엇인지 궁금해졌는데, 답은 종이의 산도였다. 이 이야기가 헌책방 취미가 없는 사람에게도 상관있는 이유는, 지금 쓰는 다이어리가 20년 뒤 어느 쪽 책이 될지를 바로 이 산도가 정하기 때문이다.
산성지, 자기를 파괴하는 종이
19세기 후반부터 20세기 후반까지 대량 생산된 종이는 대부분 산성지다. 목재 펄프를 값싸게 종이로 만드는 과정에서 산성 약품이 쓰였고, 종이에 남은 산은 시간이 지나며 종이의 골격 분자인 셀룰로오스를 가수분해로 야금야금 끊어낸다. 사슬이 짧아진 종이는 누렇게 변하고 유연성을 잃다가 결국 만지면 부서진다. 외부의 공격이 아니라 종이가 제 몸에 지닌 산으로 스스로를 소화하는 구조라서, 서늘한 서고에 고이 모셔둬도 진행 자체는 멈추지 않는다. 도서관들이 20세기 장서 앞에서 겪는 대규모 열화 문제가 바로 이것이다.
중성지, 산을 빼고 방패를 넣다
중성지는 이 자멸 회로를 두 갈래로 끊는다. 산성 사이징을 중성이나 알칼리성 약품으로 바꾸고, 탄산칼슘 같은 알칼리 완충제를 종이에 넣어 외부에서 들어오는 산까지 중화해 버린다. 공개 자료 기준으로 중성지의 기대 수명은 조건이 나쁘지 않으면 수백 년 단위로 이야기되는데, 산성지가 수십 년 만에 바스러지는 것과는 자릿수부터 다르다. 보존용 종이에는 영구 보존을 위한 국제 규격도 따로 존재해서, archival이라는 표기가 붙은 물건은 대체로 이 계열이다.
현대의 반전도 하나 적어둔다. 지금 문구점에서 파는 노트나 복사지의 상당수는 이미 중성 공정으로 만들어진다. 제지 산업이 환경과 품질을 이유로 알칼리 공정으로 넘어온 덕에, 산성지 문제는 점점 오래된 책만의 병이 되어가는 중이다. 다만 전부는 아니다. 재생지 일부와 신문지, 저가 갱지 계열은 여전히 산성 쪽에 있고, 표기가 없는 종이는 어느 쪽인지 알 방법이 없다.

잉크와의 합산
보존은 종이 하나만의 변수가 아니다. 잉크 성분 글에서 다룬 조합을 여기에 겹치면 계산이 완성된다. 산성지에 염료 잉크는 최악의 조합이다. 종이도 삭고 글씨도 함께 바랜다. 중성지에 안료 잉크라면 보존의 정석에 가깝다. 흥미로운 역설도 있다. 수백 년을 버틴 철갈 잉크는 그 자체가 산성이라 종이를 서서히 부식시킨다. 중세 문서 중에는 글씨 모양대로 종이가 뚫려버린 것들이 실제로 있다. 기록이 종이를 이긴 사례라고 해야 할지, 둘 다 진 사례라고 해야 할지는 보는 관점에 달렸다.
오래 남길 것과 아닌 것
기준은 결국 그 기록의 목표 수명이다. 몇 달짜리 소모성 메모나 업무 노트라면 산도는 애초에 고려 대상이 아니다. 아무 종이나 쓰고 아무 데나 둬도 그만이다. 반대로 일기나 육아 기록처럼 몇십 년 뒤에 다시 펼 계획이 있는 노트라면, 결제 전에 중성지나 acid-free 표기를 확인할 가치가 충분하다. 가격 차이는 크지 않은데 수명 차이는 자릿수라서, 보존 목적 기록에서 이만한 가성비의 선택지도 드물다. 표기가 없으면 그냥 보수적으로 가정하는 편이 안전하다.
헌책방의 바스러지던 책은 결국 사지 않았다. 대신 그 책 덕분에 내 다이어리 뒤표지에서 acid-free 표기를 찾아 확인했다. 있었다. 20년 뒤의 나는 적어도 종이 때문에 과거를 잃지는 않을 예정이다. 잉크는, 염료를 쓰고 있으니 아직 절반의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