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버터(병 잉크를 빨아들여 담는 교체식 잉크 통)에 잉크를 채우고 투명한 통을 불빛에 비춰 보면 잉크 위에 공기가 한 덩이 걸려 있을 때가 있다. 되돌려 짜서 다시 채워도 그대로다. 병에는 잉크가 넉넉한데 왜 안 차는지, 고장인지 궁금해서 새벽에 제조사 FAQ를 뒤졌다(고장 여부 확인에 새벽이 필요한 일인지는 나도 모르겠다).
만년필 잉크 공기방울은 어느 정도까지는 정상이다. 파일럿 공식 FAQ가 컨버터 40을 두고 직접 그렇게 답한다. 다만 처음부터 잉크가 거의 안 들어오거나 필기가 끊긴다면 원인이 따로 있다. 제조사 공식 안내와 판매점 정비 안내를 교차해서 정상과 문제를 가르는 기준과 공기를 줄이는 순서를 정리했다.
컨버터에 공기가 남는 건 정상일까
파일럿 컨버터 40 기준으로는 정상이다. 파일럿 공식 FAQ(일본어)는 흡입할 때 닙 안쪽 피드(잉크가 닙으로 가는 길을 낸 부품)의 홈(빗살 홈, 잉크 홈, 공기 홈)에 있던 공기도 함께 빨려 들어오므로 통 안을 전부 잉크로
문구점 진열장 앞에서 닙에 14K라고 새겨진 만년필을 한참 들여다봤다. 금이라니까 써 보지도 않았는데 왠지 더 부드러울 것 같았다. 근거는 없었다(진열장 앞에서 하는 생각치고는 너무 근거가 없다). 그래서 근거를 찾아봤다.
스틸닙과 골드닙의 필기감 차이는 재질 하나로 정해지지 않는다. 금 닙이 스테인리스 닙보다 부드럽다는 건 제조사도 인정하지만, 부드러운 정도는 닙의 두께와 모양에도 좌우되고 매끄러움은 종이에 닿는 맨 끝의 팁이 정한다. 제조사 설명과 판매처 가이드를 교차해서 재질이 어디까지 영향을 주는지 정리했다.
스틸닙과 골드닙, 재질은 이렇게 다르다
스틸닙은 특수 스테인리스로, 골드닙은 금에 다른 금속을 섞은 합금으로 만든다. 14K는 금이 58.5%, 18K는 75%이고 나머지는 다른 금속이다. 21K는 24분의 21이니 87.5%가 된다(계산값). 세일러 공식 페이지는 이 세 가지 금 닙을 부식에 강하고 탄성이 풍부하며 숫자가 클수록 닙 자체가 부드럽다고 설명한다.
서랍을 정리하다가 노란 형광펜을 네 자루나 발견했다. 잉크가 마를 때마다 새것을 사고 마른 것은 버린 흔적이었다. 그런데 형광펜 중에는 몸통은 그대로 두고 잉크가 든 부분만 갈아 끼우는 리필형도 있다는 걸 나중에 알았다. 진작 그걸 샀으면 이 서랍 사정이 좀 나아졌을까.
리필형 형광펜과 일체형은 구조부터 다르고, 그 차이가 비용과 버려지는 쓰레기양에 어떻게 이어지는지는 계산해봐야 아는 문제였다. 실제 판매가를 놓고 손익을 따져봤다.
리필형 형광펜과 일체형, 구조부터 다르다
리필형은 몸통을 남겨두고 잉크가 든 부분만 교체하는 구조고, 일체형은 잉크와 팁, 몸통이 하나로 성형돼 있어 다 쓰면 펜 전체가 소모품이 되는 구조다.
국내에서 실제로 팔리는 리필형 사례로는 펜텔 핸디라인S가 있다. 노크식 본체에 리필심(품번 SLR3)을 갈아 끼우는 구조로, 리필심 안에 펠트팁과 잉크가 함께 들어 있어서 이 부분만 빼고 새로 꽂으면 된다. 반대로 모나미 에딩슈퍼 600 같은 일체형은 잉크
샤프 끝의 작은 지우개는 금방 닳는다는 걸 누구나 안다. 필통 속 블록 지우개가 훨씬 오래 간다는 것도 안다. 그런데 이유를 설명해 보라고 하면 "작아서"에서 말문이 막힌다. 작으면 왜 빨리 닳는 걸까. (작아서 닳는다는 건 이유가 아니라 관찰이다. 이 문장을 쓰고 나서야 알았다.)
샤프 지우개가 일반 지우개보다 빨리 닳는 이유는 크기만으로도 상당 부분 설명된다. 같은 힘으로 문질러도 접촉면이 작으면 그 면이 받는 압력이 커지고, 마모 깊이는 압력에 비례한다. 이 글은 공개된 치수로 그 차이가 얼마나 벌어지는지 계산해 보고, 샤프 지우개를 교체할 때 확인할 점까지 정리한다.
샤프 끝 지우개 크기, 블록 지우개와 얼마나 다를까
샤프 끝 지우개는 대체로 지름이 몇 mm인 가는 원기둥이다. 톰보 모노 그래프 라이트의 판매 페이지는 이 샤프에 지름 3.6mm의 모노 지우개가 달린다고 적는다. 톰보 미국 공식 페이지는 모노 그래프의 지우개를 돌려서 뽑아 쓰는 방식이라고 소개하고, 심과
선반 안쪽 폭을 재려고 30cm 자를 댔다. 한 번에 안 닿아서 자를 밀고 당기며 눈금을 이어 붙였는데, 이어 붙이는 지점마다 오차가 쌓이는 게 뻔히 보였다. 접이식 자를 하나 살까 싶어 검색창을 열었다가 멈칫했다. 목공 도구 코너에는 흔한데 문구 매대에는 잘 안 보인다. 접으면 부피가 줄어드는 자가 왜 이렇게 드문가. 접이식 자와 일자형 자가 휴대성과 눈금 정확도를 정말 맞바꾸는 관계인지, 공개된 규격과 제조사 자료를 기준으로 따져봤다.
접이식 자와 일자형 자, 구조부터 다르다
일자형 자는 처음부터 끝까지 한 덩어리다. 소재가 나무든 금속이든 아크릴이든, 눈금이 찍힌 면 전체가 하나의 강체로 붙어 있다. 접이식 자는 이 강체를 10~20cm 단위 여러 구간(링크)으로 잘라 힌지로 이어 붙인 물건이다. 스위스 제조사 SOLA에 따르면 자사 힌지는 "고급 에폭시 코팅 스웨덴산 스틸"로 만들고, 각 힌지가 스프링과 걸쇠(래치) 기능을 함께 갖도록 설계한다. 접었다 펴는 동작을 15
회의 중에 메모하다가 심이 다 들어가서 뚜껑을 눌렀다. 손을 완전히 새로 고쳐 잡아야 했고, 그 잠깐 사이에 발표자가 넘긴 슬라이드 한 장을 놓쳤다. 별일도 아닌데 그날따라 유난히 거슬렸다. 그래서 찾아봤다. 왜 대부분의 샤프는 심을 꺼내려면 손을 놓아야 하는가.
답은 이미 있었다. 사이드노크 샤프다. 몸통 옆을 누르면 그립을 놓지 않고도 심이 나온다. 그런데 왜 다들 상단노크만 쓰는가. 궁금증은 여기서 시작됐다.
사이드노크 샤프 원리, 상단노크와 뭐가 다른가
둘의 노크 메커니즘 자체는 같다. 심을 물고 밀어내는 클러치(척) 구조는 노크 위치와 무관하게 똑같이 작동한다. 한국어 위키백과 설명대로 클러치는 "메커니즘 맨 앞에 있으며 샤프심이 일정 길이만큼 배출하고 잡아주는 역할"을 한다. 다른 건 이 클러치를 밀어주는 버튼의 자리뿐이다. 상단노크는 배럴 맨 끝 노브를 축 방향으로 누르고, 사이드노크는 그립 근처 옆면 레버를 누른다.
문제는 힘의 방향이다. 상단노크는 손가락 힘
좁은 칸에 숫자를 채워 넣다가 방금 쓴 글자가 손끝에 가려 안 보인 적이 있다. 가계부든 스케줄표든 칸이 좁을수록 이런 일이 잦다. 펜을 바꿔볼까 하고 문구점에 갔다가 처음 보는 표기를 만났다. 니들팁. 이름조차 처음 들어봐서 살짝 머쓱했다.
볼펜 코너에는 니들팁과 콘팁(원뿔형)이 나란히 팔린다. 둘 다 같은 볼펜인데 촉 모양이 왜 다르게 나뉘어 있을까. 니들팁 볼펜과 콘팁 볼펜은 촉을 감싸는 하우징(촉을 감싸는 금속관) 구조부터 다르고, 그 차이가 시야 확보와 잉크가 흐르는 유입구 지름까지 가른다.
니들팁과 콘팁, 촉 구조가 어떻게 다른가
니들팁은 가늘고 긴 금속관이 볼을 감싸는 구조고, 콘팁(원뿔형)은 짧고 굵은 원뿔이 볼을 감싸는 구조다. 이름 그대로 하나는 바늘을, 하나는 원뿔을 닮았다.
구조가 갈리는 이유는 강도다. 원뿔은 막대보다 구조적으로 강해서, 콘팁은 필기 각도가 조금 삐딱해도 잘 안 휜다. 니들팁은 하우징을 가늘게 뽑은 만큼 약점이 될 부분이 없도록 다듬어
회의가 두 시간을 넘어가면 항상 같은 손이 먼저 지친다. 오른손 엄지와 검지 사이, 펜을 쥔 자리다. 그날 들고 간 만년필 두 자루를 번갈아 쓰다가 이상한 걸 느꼈다. 하나는 쥐고 있어도 손이 편한데, 다른 하나는 쥐자마자 서늘하고 삼십 분쯤 지나면 손끝이 뻐근해졌다. 무게 차이인가 싶어 재보니 큰 차이가 없었다. 다른 건 그립부(펜을 쥐는 부분) 소재였다. 하나는 경질고무, 하나는 금속이었다. 당신 필통에도 유난히 서늘하게 느껴지는 펜 한 자루쯤 있을 것이다.
만년필 그립부는 크게 경질고무(에보나이트), 레진(플라스틱), 금속 세 가지로 나뉜다. 이 소재 차이가 손의 피로도를 가르는 진짜 이유는 무게보다 '마찰이 붙는 속도'와 '열을 빼앗는 속도'에 있다.
만년필 그립부 소재 종류, 경질고무·레진·금속
그립부에 쓰이는 소재는 경질고무, 레진, 금속 세 갈래로 나뉜다. 경질고무는 상표명으로는 에보나이트라 부르는데, 고무를 황으로 가황 경화시킨 소재다. 가공이 까다롭고 손이 많
다이어리에 밑줄을 긋다가 이상한 걸 발견했다. 어제 그은 줄은 가늘고, 오늘 그은 줄은 훨씬 두껍다. 같은 펜인데 이렇게 다르면 손이 떨렸다고 해야 할지 펜이 이상해졌다고 해야 할지 판단이 안 선다. 결국 필통을 열어 형광펜 촉을 하나하나 들여다봤다. 원인은 손이 아니라 촉의 생김새였다. 형광펜 촉은 크게 사각닙(치즐팁)과 원형닙(원통촉) 두 형태로 나뉘고, 이 모양 차이가 밑줄 굵기의 일관성을 통째로 결정한다.
이 형광펜이 왜 유난히 밝아 보이는지는 형광펜이 밝게 보이는 이유에서 이미 짚었으니, 이번에는 촉 모양 얘기만 하겠다.
형광펜 사각닙과 원형닙, 스펙부터 비교하면
두 촉의 가장 큰 차이는 굵기가 고정이냐 가변이냐다. 사각닙은 쥐는 각도에 따라 굵기가 크게 바뀌고, 원형닙은 어떻게 쥐어도 굵기가 거의 그대로다.
구분
사각닙 (치즐팁)
원형닙 (원통촉)
단면 구조
평평하게 비스듬히 잘린 면
둥글고 대칭인 점
굵기 범위
약 1.0~4.0mm (모나미 에
기말 답안지를 채점하다가 샤프를 몇 번이나 눌렀는지 세어 본 적이 있다. 한 장에 노크 서너 번, 백 장이면 삼사백 번이다. 손가락이 아니라 리듬이 끊기는 게 문제였다. 채점 흐름이 뚝뚝 끊기던 어느 밤, 오토매틱 샤프라는 물건을 알게 됐다. 노크를 아예 안 눌러도 심이 계속 나온다는데, 처음 든 생각은 배터리라도 들었나 하는 것이었다.
답부터 말하면 배터리는 없다. 오토매틱 샤프는 필기할 때 손이 만드는 압력의 왕복을 노크 대신 쓴다. 이 글은 그 구조가 정확히 뭘 하는지, 오렌즈 네로와 파일럿 S30과 쿠루토가 다이브가 이 구조를 어떻게 다르게 구현했는지, 그리고 이 방식이 흔들이 샤프와는 뭐가 다른지까지 공개 자료를 종합해 정리한다.
오토매틱 샤프는 왜 노크 없이 심이 나오나
심을 내보내는 힘은 노크 버튼이 아니라 필기할 때 촉이 받는 압력의 왕복에서 나온다. 종이에 힘을 주는 순간 촉 안쪽 파이프가 아주 살짝 안으로 눌려 들어가고, 그 안의 스프링이 압축된다. 펜을 종
며칠 여행 가방에 넣어 뒀던 만년필을 꺼내 첫 줄을 그었더니 잉크가 뚝뚝 끊겼다. 분명 캡을 끝까지 눌러 닫아 뒀는데도 이 모양이었다. 볼펜이었으면 새로 사면 그만인데, 만년필은 닙을 씻어야 하나 컨버터를 다시 채워야 하나 머릿속만 복잡해졌다.
캡을 닫아도 닙이 마르는 이유는 캡의 밀봉 구조 자체에 있다. 나사를 돌려 잠그는 캡과 눌러서 딸깍 닫는 캡은 밀폐력이 다르고, 그 안에 이너캡이 따로 있는지도 다르다. 그래서 밤 늦게 특허 문서까지 뒤졌다(원래는 캡 제대로 닫는 법만 확인하려던 것이었다). 어떤 구조가 왜 덜 마르게 만드는지 정리했다.
만년필 캡, 밀봉이 안 되면 왜 닙이 마르나
닙이 마르는 건 잉크 속 용매 성분이 증발하기 때문인데, 이 증발 속도를 좌우하는 게 캡 내부의 밀폐 정도다. 대부분의 만년필은 캡 안쪽에 있는 턱(숄더)이 펜 몸통(섹션) 끝에 맞닿으면서 닙 주변 공간을 막는 방식으로 밀봉한다. 별도 장치 없이 두 부품이 맞닿는 접촉면 하나가 밀봉의 전부인
회의가 길어지면 손이 심심해져서 볼펜을 딸깍거리게 된다. 몇 번 누르다 보면 옆자리 눈초리가 느껴진다. 그런데 얼마 전 만년필 뚜껑처럼 몸통을 돌려서 심을 꺼내는 볼펜을 손에 쥐어 보고서야, 이 흔한 딸깍 소리가 모든 볼펜의 기본값은 아니라는 걸 알았다.
노크 볼펜은 왜 누를 때마다 딸깍 소리를 내고, 트위스트 볼펜은 왜 그 소리가 안 날까. 궁금해서 특허 문서까지 뒤졌다. 답은 두 방식이 심을 고정하는 원리 자체가 다르다는 데 있었다. 노크식은 톱니와 하트 모양 홈으로 걸어서 고정하고, 트위스트식은 나사산으로 밀어서 고정한다.
노크 볼펜 원리, 딸깍 소리는 왜 나는가
노크 볼펜의 딸깍 소리는 버튼 아래 톱니(래칫)가 하트 모양의 캠 홈을 타고 넘어가면서 부딪히는 소리다. 버튼을 누르면 톱니가 캠 표면을 밀며 돌다가, 하트 모양 홈의 오목한 자리에 걸리는 순간 회전이 멈춘다. 이때 나는 충돌음이 첫 번째 딸깍이고, 다시 누르면 톱니가 그 홈을 벗어나 반대편 홈으로 넘어가면서
프린트한 원고에 연필로 교정 표시를 하고 지우다가 책상 위에 가루가 눈처럼 쌓였다. 옆자리 동료의 지우개는 가루가 알아서 뭉쳐서 손날로 한 번에 쓸려 나가는데, 내 것은 잘게 흩어져 소매에까지 붙는다. 같은 연필, 같은 종이인데 지우개만 다르다.
그래서 검색창을 열었다. (지우개 하나 때문에 이렇게까지 할 일인가 싶었지만, 이미 늦었다.) 가루 적은 지우개는 실제로 따로 있고, 그 차이는 지우개가 무엇으로 만들어졌는지에서 갈린다. 이 글은 지우개가 가루를 만드는 원리, 고무 지우개와 비닐(PVC) 지우개의 성분 차이, 가루가 뭉치는 이유, 그리고 가루가 아예 안 나오는 지우개까지 정리한다.
지우개 가루는 왜 생기는가
지우개 가루는 지우개가 일하면서 자기 몸을 깎아 낸 부스러기다. 연필은 종이 표면에 얇은 흑연 막을 얹어 놓는데, 지우개는 이 막을 문질러서 물리적으로 떼어낸다. 캐나다 맥길 대학교 과학 상식 사이트(Office for Science and Society)는 지우
필통을 정리하다 보면 롤러볼 펜과 볼펜, 라이너펜이 한 칸에 뒤섞여 있는 걸 자주 본다. 비슷하게 생겼으니 아무 생각 없이 던져 넣었을 텐데, 닙(펜촉) 구조를 뜯어보면 이 셋의 관계는 생각보다 복잡하다. 롤러볼과 볼펜은 사실 사촌에 가깝고, 라이너펜은 아예 다른 집안이다.
세 필기구를 볼 유무와 잉크 종류 기준으로 나란히 놓고 구조를 비교하면 필기감 차이가 어디서 오는지 바로 보인다. 어제 밤에 궁금증이 나서 그대로 못 자고 특허 문서와 제조사 자료까지 뒤져 정리했다(제도 펜 하나 사려던 참이었는데 이렇게 됐다).
롤러볼 펜과 볼펜, 닙 구조는 얼마나 같을까
결론부터 말하면 거의 같다. 두 펜 모두 텅스텐카바이드로 만든 작은 볼이 소켓 안에서 회전하며 잉크를 종이에 옮기는 방식이다. 볼이 굴러가며 잉크를 긁어내는 원리는 볼펜 볼 원리 글에서 이미 다뤘다. 두 펜의 차이는 볼 자체가 아니라 그 볼이 만나는 잉크에 있다.
볼포인트는 유성(오일 베이스) 잉크를 쓴다. 점도가 높
책상 서랍 안쪽에서 두 달 만에 형광펜을 꺼냈다. 뚜껑은 분명히 닫아뒀는데 첫 줄부터 색이 반쯤 죽어 있었다. 뚜껑을 닫는 것과 마르지 않는 것은 다른 얘기였다는 뜻이다.
형광펜이 마르는 속도는 뚜껑의 밀폐 구조에 따라 크게 갈린다. 같은 시간을 방치해도 어떤 형광펜은 멀쩡하고 어떤 형광펜은 반나절 만에 갈라진 소리를 낸다. 형광펜이 애초에 왜 빛나 보이는지는 다른 질문이다(관련 글: 형광펜은 왜 형광인가). 오늘 파고들 건 마름의 문제, 정확히는 뚜껑 구조와 잉크 증발의 관계다.
형광펜 잉크는 왜 마르는가
형광펜이 마르는 이유는 잉크 안의 휘발 성분이 공기 중으로 날아가기 때문이다. 형광펜 잉크는 대부분 물을 기본 용매로 색소를 녹인 수성 잉크인데, 펠트촉을 타고 잘 흐르도록 점도를 낮추는 용도로 에탄올이나 이소프로판올 같은 알코올을 소량 섞는 제품이 많다.
문제는 이 알코올의 휘발성, 그러니까 공기 중으로 빠르게 날아가는 성질이 강하다는 점이다. 뚜껑이 열려 있으면 알코
서랍 속 연필깎이를 꺼내 새 연필을 넣었더니 처음엔 잘 깎인다. 그런데 같은 연필깎이로 몇 주 뒤 다시 깎으면 느낌이 다르다. 날이 슥슥 미끄러지고, 심이 뭉툭하게 나온다. 연필 탓인가 싶어 다른 연필을 꽂아봐도 마찬가지다. 새 연필깎이로 바꾸면 다시 잘 깎인다. 결국 날 문제였다.
연필깎이 날이 무뎌지는 속도는 날 구조와 소재에 달려 있다. 이 두 가지를 이해하면 "왜 저가형이 빨리 망가지는지"와 "어떤 연필깎이를 고르면 오래 쓰는지"가 스펙 차원에서 설명된다.
연필깎이 날 방식은 두 가지다: 직선형과 원통형
연필깎이의 날은 크게 두 방식으로 나뉜다. 어떤 방식이냐에 따라 깎이는 형태와 날의 마모 특성이 달라진다.
직선형 날(flat blade): 원뿔형 구멍 안 한쪽 면에 칼날이 고정되어 있다. 연필을 구멍에 꽂고 돌리면 고정된 날에 연필 표면이 닿으면서 깎인다. 구조가 단순해 가정용 소형 연필깎이 대부분이 이 방식이다. 날이 하나인 외날형은 연필밥이 긴 나선형으로 나오
볼펜 리필을 사러 문구점에 들어섰다가 진열대 앞에서 멈춰 선 적이 있다. Parker, D1, G2라고 쓰인 라벨들이 나란히 꽂혀 있는데, 지금 쓰는 펜에 어떤 규격이 들어가는지 모른다. 검색을 해봐도 "G2 규격"이 파커 방식 볼펜심을 가리키는 건지 파일럿 G2 젤펜 리필인지 헷갈린다. 이 혼란은 제품 이름과 규격 이름이 겹쳐 있는 데서 시작한다.
볼펜 리필에는 사실상 세 분류가 있다. 크기 기준의 국제 표준인 D1, 브랜드 표준에서 출발해 국제 표준이 된 Parker G2 방식, 그리고 제조사별 독자 규격. 세 분류는 치수가 달라 서로 교체가 안 된다. 어느 쪽에 속하는지 알면 구매 전에 호환 문제를 미리 피할 수 있다.
D1 규격이란 무엇인가
D1은 ISO 12757-1로 정의된 국제 표준 규격이다. 길이 67mm, 지름 2.3mm — 볼펜 리필 가운데 가장 작은 분류다. 이 크기가 필요한 이유는 구조적으로 명확하다. 4색이나 5색 볼펜처럼 하나의 몸통 안에 여러 리필심
잉크가 4분의 1쯤 남은 시점에서 컨버터를 아무리 돌려도 공기만 들어왔다. 병 바닥에 잉크가 분명히 남아 있는데 닙이 거기까지 닿질 않아서다. 이 경험을 한 번이라도 해봤다면, 잉크 병 바닥이 단순한 디자인 결정이 아닐 수 있다는 의심을 품게 된다. 실제로 그렇다.
잉크 병의 형태가 제조사마다 다른 데는 이유가 있다. 이 글은 만년필 잉크 병의 주요 바닥 구조 4가지를 비교해, 잔량이 줄었을 때 컨버터 충전 효율이 어떻게 달라지는지 구조 측면에서 정리한다.
컨버터로 잉크를 빨아올리는 원리
만년필 컨버터는 음압(負壓, negative pressure)으로 잉크를 끌어올린다. 피스톤형 컨버터는 노브를 돌려 내부 피스톤이 위로 당겨지면 챔버가 팽창하고 진공 상태가 되면서, 닙을 통해 잉크가 빨려 올라온다. 스퀴즈형은 몸통을 눌렀다 놓으면 팽창과 수축이 일어나며 같은 효과를 낸다.
여기서 병 형태가 중요해진다. 충전이 작동하려면 닙 끝이 잉크에 충분히 잠겨 있어야 한다. 닙이 잉크
몇 주를 서랍에 두었다가 꺼낸 만년필이 글씨를 안 쓰던 날이 있었다. 캡을 열고 종이에 대봤는데 아무것도 안 나왔다. 가볍게 흔들고, 꾹꾹 눌러봐도 헛걸음. 잉크는 분명 들어 있었는데. 그때 처음으로 '만년필도 세척이 필요하다'는 말이 실감으로 들어왔다. 왜 굳는지, 어떻게 막는지를 정리해봤다.
만년필 잉크가 굳는 원인 세 가지
잉크 굳음의 원인은 크게 세 가지로 나뉘고, 잉크 종류마다 다른 경로로 굳는다.
첫 번째는 수분 증발이다. 대부분의 만년필 잉크는 물을 기반으로 한다. 캡을 닫아두면 완전히 밀폐된 것처럼 보이지만, 시간이 지나면 미량의 수분이 빠져나간다. 수분이 줄면 잉크 속 염료나 안료가 농축되고, 피드 채널 내부에서 점도가 높아진 잉크가 표면부터 굳기 시작한다. 수용성 잉크 전반에 해당하는 경로다.
두 번째는 철분 잉크(iron gall ink)의 화학 반응이다. 철분 잉크에는 갈잉산(gallic acid, 오크 껍질에서 추출)과 황산철(ferrous sulfa
글씨를 쓰다가 잉크가 갑자기 끊겼다. 종이에 눌러도, 뚜껑을 잠갔다 열어도 반응이 없다가 어느 순간 다시 흐르기 시작한다. 그 과정이 반복되고 나서야 만년필 피드라는 단어를 처음 찾아봤다. 한 번이면 우연인데 두 번이면 원인을 파야 한다.
만년필에서 잉크가 일정하게 나오는 것은 저절로 되는 일이 아니다. 잉크를 닙(펜촉) 끝까지 공급하고, 빠져나간 잉크만큼 공기를 채워주고, 온도 변화나 필기 속도 변화에도 흐름을 유지하는 기능이 모두 피드(feed) 하나에 들어 있다. 이 글은 피드 구조가 어떻게 그 역할을 하는지, 소재 차이가 실제 흐름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를 분석한다.
만년필 피드란 무엇인가
피드는 닙 바로 아래에 딱 붙어 있는 부품이다. 잉크 저장소(컨버터나 카트리지)와 닙 끝 사이를 연결하는 통로 역할을 한다. 닙 뒤쪽을 보면 검은 납작한 판처럼 붙어 있는 것이 피드다. 대부분 검은색이라 눈에 잘 안 띄지만, 만년필을 분해하면 닙과 비슷한 크기의 별도 부품으로 따로 빠
잡화점 색연필 한 통을 오래 쓰다 보면 이상한 패턴이 생긴다. 빨간색은 금방 닳는데 파란색은 멀쩡하고, 겹쳐 칠해도 어떤 색은 잘 섞이고 어떤 색은 위에 덮이기만 한다. 나중에 성분을 뒤졌더니 답은 심 안쪽에 있었다. 심에 들어간 안료 입자 크기와 바인더 비율이 달랐고, 유성 색연필과 수성 색연필의 심은 그보다 더 근본적인 곳에서 갈렸다.
색연필의 발색과 혼색 능력은 심에 든 바인더 종류가 거의 결정한다. 유성이냐 수성이냐는 단순히 물에 녹느냐 아니냐의 차이가 아니라, 심의 딱딱함, 안료가 종이에 달라붙는 방식, 색이 섞이는 조건 전체를 결정하는 기준이다.
색연필 심은 무엇으로 만들어지나
색연필 심은 안료(pigment), 바인더(binder), 필러(filler) 세 가지 재료의 조합이다. 안료가 색을 내고, 바인더가 안료 입자들을 한데 묶어 심 모양으로 굳혀주고, 필러는 초크나 점토 같은 충전재로 심의 강도와 발림성을 조절한다.
바인더가 무엇이냐에 따라 유성 색연필과 수
문구 매대의 30cm 자는 보통 세 갈래다. 투명한 아크릴 자, 가벼운 알루미늄 자, 묵직한 스테인리스 자. 눈금은 셋 다 똑같이 생겼는데 가격은 몇 배씩 벌어진다. 눈금이 같다면 대체 무엇에 값을 매기는 걸까. 가위 날을 정리한 글 끝에 예고한 대로, 이번에는 직선의 최종 책임자인 자 차례다.
결론부터 말하면 자의 정확도는 눈금이 아니라 눈금을 지키는 능력에서 갈린다. 자 눈금에는 허용 오차 규격이 있고, 소재는 그 오차가 온도와 세월 앞에서 얼마나 버티는지를 정한다. 이 글은 자 눈금의 오차 규격, 소재별 열팽창, 눈금 새김 방식, 자 두께가 만드는 읽기 오차까지 공개 규격과 재료 물성값 기준으로 정리한다.
자 눈금에도 오차 규격이 있다: JIS B 7516
자는 감으로 만드는 물건이 아니다. 금속 자의 경우 일본 공업 규격 JIS B 7516이 눈금 허용 오차를 등급으로 정해 두는데, 1급 기준으로 전체 길이 500mm 이하에서 ±0.15mm다. 30cm 스틸 자라면 눈
다이어리 일정에 색 구분을 들이기로 했다. 일은 파랑, 개인 약속은 초록, 마감은 빨강. 그래서 4색 볼펜을 꺼내 엄지로 슬라이더를 딸깍거리는데, 문득 손이 멈췄다. 색을 바꿀 때마다 촉이 나오는 구멍은 하나다. 좁은 관 하나를 네 색이 번갈아 지나다니는데, 파란 글씨에는 빨강이 한 톨도 묻어 나오지 않는다. 이게 왜 당연하지.
답부터 말하면 당연한 게 맞다. 4색 볼펜 안에는 잉크관과 촉이 한 몸인 독립 리필이 네 개 들어 있고, 네 잉크는 펜 안 어디에서도 만나지 않기 때문이다. 이 글은 4색 볼펜의 내부 구조와 슬라이더가 색을 바꾸는 원리, 그리고 멀티펜의 세계를 지탱하는 공용 리필 규격 D1까지 정리한다. 일정 색 구분은 그날 밤 리필 규격 조사로 번졌고, 정신을 차려 보니 리필 호환표를 만들고 있었다. 표가 나왔다는 것은 이 조사도 끝을 봤다는 뜻이다.
4색 볼펜에는 펜이 네 자루 들어 있다
색이 안 섞이는 이유는 구조 그 자체다. 4색 볼펜의 리필은 잉크관 끝에 볼
어제 샤프심 글을 쓰면서 심은 1mm 안팎만 내놓으라고 적었다. 쓰고 나니 궁금해졌다. 노크를 한 번 눌렀을 때 나오는 심의 길이는 누가 정했나. 내 엄지는 매번 같은 깊이로 누르지 않는데 심은 매번 비슷하게 나온다. 우연일 리가 없다.
답부터 말하면 그 길이는 샤프 내부의 척이라는 부품이 움직이는 거리로, 설계 단계에서 고정된 값이다. 이 글은 노크 한 번에 벌어지는 일을 순서대로 뜯어보고, 그 기본 구조 위에 심 보호 기능을 얹은 세 계열, 쿠루토가와 오렌즈와 델가드가 각각 무엇을 해결하는지 공개 자료를 종합해 비교한다. 참고로 이 궁금증은 밤 11시에 시작해서 제조사 특허 해설 글을 세 개 읽고 끝났다. 예상 소요 시간을 늘 넘기는 것도 이제는 통계라고 부를 만하다.
샤프 노크의 기본 구조: 척이 심을 잡았다 놓는다
노크식 샤프의 심장은 척이다. 심을 물고 있는 두세 갈래의 작은 조(jaw)가 링 안에 앉아 있는 구조로, 평소에는 링이 조를 조여서 심을 단단히 물고 있다
주말에 밀린 가계부를 몰아서 맞추는 중이었다. 숫자는 틀리면 지워야 하니까 볼펜 대신 샤프를 잡았는데, 세 줄에 한 번꼴로 심이 톡톡 부러졌다. 부러진 심 토막이 종이 위를 굴러다니는 걸 보면서 생각했다. 이게 내 손 탓인가, 심 탓인가, 아니면 굵기 탓인가.
답부터 말하면 셋 다 관련이 있는데, 가장 큰 변수는 심 굵기와 심을 빼 둔 길이다. 이 글은 샤프심이 무엇으로 만들어지는지, 0.3과 0.5와 0.7이라는 숫자가 실제로 무엇을 바꾸는지, 심이 부러지는 원인과 안 부러지게 고르는 기준까지 정리한다. 가계부 정산은 그날 못 끝냈다. 대신 샤프심 규격을 정리한 표가 하나 생겼는데, 이 교환이 남는 장사였는지는 여전히 계산 중이다.
샤프심은 무엇으로 만드나: 흑연과 폴리머
샤프심은 흑연 가루를 폴리머(플라스틱 계열 고분자) 결합재로 굳혀 구운 심이다. 나무 연필의 심이 흑연을 점토로 굳히는 것과 재료부터 다르다. 이 폴리머 배합은 1962년 펜텔이 0.5mm와 0.7mm 심
회의록을 몰아 쓰던 날이었다. 마음이 급해서 손이 말을 앞질러 갔고, 페이지를 넘기려고 손날로 종이를 쓸었더니 방금 쓴 문장이 길게 번져 있었다. 파란 자국은 손날에도 묻어 있었다. 옆자리 동료의 메모는 멀쩡했다. 조건이 다른 것은 펜 하나뿐이었다.
결론부터 말하면 그 차이는 잉크의 용매, 그러니까 색을 실어 나르는 액체가 기름이냐 물이냐에서 온다. 펜 포장에 적힌 유성·수성·중성이 바로 그 구분이다. 이 글은 세 잉크의 성분과 점도 차이를 비교하고, 번짐과 건조 속도와 필압을 기준으로 용도에 맞는 볼펜을 고르는 법까지 정리한다. 회의록은 그날 밤 다시 정리했다. 잉크 용매를 검색하다가 자정을 넘긴 것은 예정에 없던 일이지만.
유성 수성 중성 펜의 차이, 용매가 가른다
세 이름은 잉크의 용매 구분이다. 유성 잉크는 기름 계열 용매에 염료를 녹인 것이고, 수성 잉크는 물에 염료를 녹인 것이다. 중성 잉크는 물 기반이라는 점에서는 수성 쪽이지만, 안료와 겔화제(잉크를 젤리처럼 굳
문구점 시필 코너에서 같은 0.5가 적힌 볼펜 여섯 자루를 나란히 그어 본 적이 있다(여섯 자루는 과했다는 자각은 있다). 선 여섯 개가 전부 달랐다. 굵기도, 손끝에 오는 감촉도 달랐다. 같은 숫자를 달고 어떻게 이럴 수 있는지, 집에 오는 내내 펜 끝에서 구를 작은 공을 생각했다. 볼펜이라는 이름이 앞세우는 그 볼 말이다.
그래서 이 글은 볼펜 볼의 원리를 다룬다. 지름 1mm 안팎의 공이 어떻게 잉크를 종이로 옮기는지, 촉 안쪽은 어떻게 생겼는지, 굵기 표기 0.5는 무엇의 치수인지, 부드러운 볼펜과 긁히는 볼펜은 어디서 갈리는지. 제조사 기술 문서와 공개 자료를 종합해 정리했다.
볼펜 볼의 원리, 잉크 묻은 공을 굴려서 쓴다
볼펜은 잉크를 뿜지 않는다. 잉크가 묻은 공을 종이 위에 굴린다. 촉 끝 볼의 안쪽 절반은 잉크 관에 잠겨 있고, 잉크가 중력을 타고 내려와 그 면을 적신다. 펜을 끌면 볼이 구르면서 잉크 묻은 면을 종이에 대 주고, 잉크를 넘겨준 면은 돌아 들어
필통을 정리하다가 같은 모델의 볼펜이 세 자루라는 걸 발견했다. 잉크가 다 되면 리필심 대신 매번 새 펜을 샀던 흔적이다. 리필이 있는 줄 몰랐던 것도 아닌데 왜 자꾸 본체를 샀을까.
게으름이라고 결론 내리기 전에 그 게으름이 실제로 얼마짜리인지 계산해 봤고, 답부터 말하면 펜에 따라 다르다. 천 원대 펜은 리필해도 이득이 거의 없고, 만 원대 이상 펜은 리필 서너 번이면 본체 값을 회수한다. 이 글은 그 갈림길과 함께, 리필 규격 확인법과 새 펜만 살 때 생기는 숨은 비용까지 정리한다.
리필형 볼펜과 일회용 볼펜, 가격 구조 차이
시중 가격들을 모아 스프레드시트에 정리해 보니, 펜의 세계는 리필 관점에서 두 부류로 나뉜다.
저가 펜은 본체 가격과 리필심 가격이 거의 붙어 있다. 본체가 천 원인데 리필이 칠팔백 원인 식이다. 이 구간에서 리필은 경제 행위가 아니라 그냥 취향의 문제다. 그립이 길이 들었든 몸통에 정이 들었든, 돈으로는 딱히 정당화가 안 된다.
중가 이상의
회의실에서 만년필을 꺼냈다가 조용히 다시 넣었다. 회사 복사지 위에서 내 글씨가 수염 난 얼룩으로 변하는 걸 봤기 때문이다. 같은 펜이 집의 노트에서는 흠잡을 데 없이 매끄럽게 구르는데, 종이가 바뀌자 완전히 다른 도구가 되어버렸다.
만년필이 종이를 가리는 이유부터 말하면, 잉크를 다른 필기구보다 훨씬 많이 쏟아내는 도구라서다. 그래서 종이의 약점이 페더링, 번짐, 비침이라는 세 가지 문제로 그대로 드러난다. 이 글은 세 현상의 원인을 나눠서 정리하고, 만년필에 맞는 종이를 확인하는 법과 안 맞는 종이에서 버티는 법까지 다룬다.
만년필 잉크가 유독 많이 나오는 이유
출발점은 잉크 방출량이다. 볼펜의 유성 잉크가 끈적한 잉크를 볼로 조금씩 굴려 바르는 방식이라면, 만년필은 묽은 수성 잉크를 모세관 현상으로 흘려보내는 방식이다. 단위 길이당 종이에 도달하는 액체의 양이 필기구 중에서도 최상위권이다.
그래서 볼펜이 아무 종이에서나 무난한 반면, 만년필은 종이의 모든 약점을 사정없
손글씨를 몰아 쓴 날이면 중지 첫마디에 펜이 지나간 자국이 남는다. 오래 눌린 살이 조용히 항의하는 흔적이다. 늘 손버릇 문제라고만 생각했는데, 필기구 인체공학 자료들을 읽다가 관점이 완전히 바뀌었다.
결론부터 말하면, 필기할 때 손이 아픈 이유의 상당 부분은 펜의 스펙 세 가지에 있다. 그립 지름, 그립 소재, 그리고 무게중심이다. 이 셋이 쥐는 힘을 어떻게 바꾸는지, 손이 편해지는 조합은 무엇인지 정리한다.
그립 지름이 가늘면 손에 힘이 더 들어가는 이유
직관과 반대로, 가는 펜일수록 손은 더 세게 쥔다. 그립이 가늘수록 손가락이 더 오므라들고, 오므라든 손은 같은 제어를 하기 위해 더 강하게 쥐어야 하기 때문이다.
통용되는 인체공학 가이드들이 필기구 그립 지름으로 10mm 안팎 이상을 권하는 이유가 여기 있고, 손이 크거나 필기량이 많을수록 굵은 그립의 이득도 그만큼 커진다. 물론 반대급부도 있다. 굵은 그립은 세밀한 획 제어에서 정밀도를 조금 내준다. 가는 펜이 여전
만년필 잉크가 떨어졌다는 친구의 두 번째 상담이 왔다. 첫 상담은 닙이었는데, 이번 질문은 리필이다. 카트리지를 계속 사는 게 나을지, 아니면 컨버터라는 걸 사야 할지.
계산 결과부터 말하면, 카트리지 20~30개를 쓸 만큼 필기량이 있으면 컨버터와 병잉크 쪽이 이득이다. 매일 쓰는 펜이면 1년 안쪽에 도달하는 지점이고, 가끔 꺼내는 펜이면 몇 년이 걸린다. 이 글은 그 계산 과정과, 가격 말고 따져야 할 조건들을 정리한다. 취향 문제처럼 보이지만 절반은 계산 문제라서, 계산부터 하고 취향을 얹는 순서가 맞다. 결국 또 시트를 열었다.
만년필 컨버터와 카트리지 구조 차이
카트리지는 일회용 잉크 탱크, 컨버터는 재사용 잉크 탱크다. 꽂는 자리는 같다.
카트리지는 잉크가 담긴 일회용 플라스틱 통이다. 펜에 꽂으면 내부 침이 막을 뚫으면서 잉크가 흐르기 시작한다. 다 쓰면 버리고 새것을 꽂으면 그만이라, 잉크를 직접 만질 일이 없다. 컨버터는 같은 자리에 꽂는 재사용 탱크다. 피
내 얇은 사전에 형광 줄을 그었더니 뒷장의 단어 세 개가 노란 배경을 얻어버렸다. 앞장을 강조했는데 뒷장이 멋대로 편집된 것이다. (도서관에서 빌린 책 이야기는 아니다. 빌린 책에 형광펜을 긋는 건 그 자체로 범죄니까.)
얇은 종이에서 형광펜이 사고를 내는 원인은 두 가지다. 잉크가 종이를 뚫고 스며드는 번짐, 그리고 색이 뒷면까지 보이는 비침. 이 글은 그 원인을 정리하고, 뒷면을 지키는 대안 세 가지(고체 형광펜, 파스텔 형광펜, 드라이 하이라이터)를 스펙 기준으로 비교한다.
형광펜이 뒷면까지 비치는 이유
형광펜이 뒷면을 망치는 경로는 두 갈래다. 첫째, 형광펜은 잉크를 많이 쏟는 도구다. 넓은 칩으로 면을 칠하는 구조라 필기구 중에서도 단위 면적당 잉크 방출량이 가장 많은 축인데, 수성 잉크가 이 정도 양으로 들어오면 사전지 같은 얇은 종이는 그냥 뚫려버린다. 이게 번짐이다. 둘째, 용케 안 뚫려도 문제가 남는다. 형광색은 빛을 더해 내보내는 색이라 존재감이 워낙 강해서
책상 위에 물을 쏟았다. 수습하고 보니 피해가 이상하게 편파적이었다. 다이어리의 볼펜 글씨는 멀쩡한데, 만년필로 쓴 페이지는 파랗게 번져서 졸지에 수채화가 되어 있었다. 같은 잉크라는 이름을 쓰는데 왜 하나는 버티고 하나는 흘러내리는가.
새벽까지 잉크 조성 자료를 읽고 얻은 답부터 말하면, 잉크는 색을 붙잡아두는 방식에 따라 염료 잉크, 안료 잉크, 철갈 잉크로 나뉘고 물에 버티는 힘과 관리 부담이 각각 다르다. 이 글은 세 종류의 차이와 용도별로 고르는 법을 정리한다. 물 쏟은 날 밤에 할 일치고는 좀 뜬금없었지만, 건진 것은 확실했다.
염료 잉크란, 색이 물에 녹아 있는 잉크
만년필 잉크의 기본값은 염료 잉크다. 색 분자가 물에 완전히 녹아든 상태로, 설탕물처럼 입자가 없는 균일한 용액이다.
이 구조의 장점은 만년필이라는 기계와의 궁합이다. 입자가 없으니 가느다란 잉크 길을 막을 일이 없고, 발색이 맑고 선명하며, 색 배합이 자유로워서 잉크 색 놀이의 대부분이 여기서 일
만년필에 입문하겠다는 친구에게 연락이 왔다. 질문은 단 한 줄이었다. EF랑 F 중에 뭐 사.
간단히 답해주려다 알게 된 결론부터 말하면, 만년필 닙 굵기 표기는 국제 규격이 아니다. 같은 F가 브랜드에 따라 다른 굵기를 가리킨다. 이 글은 그 이유와 함께 일본 닙과 서양 닙의 차이, 한글 필기에 맞는 닙 고르는 법을 정리한 것이다. 친구에게 답장을 보낸 건 그날 밤 늦게였고, 반응은 "그냥 아무거나 살걸"이었지만.
만년필 닙 표기가 브랜드마다 다른 이유
EF, F, M, B라는 표기는 ISO 같은 표준이 정한 수치가 아니라, 각 제조사가 자기 기준으로 붙이는 상대 등급이다. 그래서 "F 닙 = 몇 mm"라는 절대 환산표는 존재하지 않고, 공개된 브랜드별 자료를 모으면 같은 F라도 선폭이 대략 0.1mm 이상 벌어진다.
볼펜의 0.5mm 표기가 볼 지름이라는 물리량을 가리키는 것과는 완전히 대비되는 지점이다. 만년필의 세계는 숫자 대신 문자를, 규격 대신 관례를 쓴다.
서랍을 정리하다가 볼펜을 아홉 자루 발견했다. 시필을 해보니 네 자루가 안 나왔다. 잉크가 절반 넘게 남은 게 훤히 보이는데 대체 왜 침묵하는가.
결론부터 말하면, 안 나오는 볼펜의 원인은 크게 세 가지고 그중 상당수는 살릴 수 있다. 이 글은 볼펜 잉크가 굳는 원인과 살리는 법, 예방법을 정리한다. 버리는 일은 자연스럽게 미뤄졌고, 굳은 볼펜의 원인을 규명하는 일이 대신 시작됐다. 이런 식으로 청소가 조사로 바뀌는 게 벌써 몇 번째인지 모르겠다.
볼펜 잉크가 굳는 세 가지 원인
공개 자료를 종합하면 안 나오는 볼펜의 원인은 세 가지다. 용제 증발, 팁 표면의 건조 피막, 그리고 잉크 역류다.
첫 번째는 용제의 증발이다. 유성 잉크는 색소를 알코올 계열 용제에 녹인 것인데, 펜 끝 볼과 소켓 사이의 미세한 틈으로 용제가 아주 천천히 달아난다. 용제가 줄면 잉크 점도가 계속 올라가다가 결국 볼이 구르지 못하는 지경에 이른다. 뚜껑을 잃어버린 펜이 먼저 가는 이유가 여기 있다.
회사 비품함에서 연필을 하나 집었다. 몸통에 HB라고 적혀 있었다. 그 순간 이상한 기억이 따라왔다. 초등학생 때는 다들 2B를 쓰라고 했는데, 어른의 연필은 왜 HB일까.
답부터 말하면, 연필 경도 기호는 등급이 아니라 흑연과 점토의 배합 비율 표시다. H는 단단하고 연하게, B는 무르고 진하게. 이 글은 그 기호가 뜻하는 것과 함께, 어린이 연필이 2B인 이유, 미국 연필의 #2, 경도를 정해 두는 JIS 규격, 용도별로 경도를 고르는 법까지 정리한다. 연필을 깎다 말고 시작된 검색이 여기까지 왔다.
연필 경도 기호(H·B)가 뜻하는 것
연필심은 흑연 가루와 점토를 반죽해서 굽고, 이 배합비가 경도의 전부다. 점토가 많아질수록 심이 단단해지고(H, hard) 글씨는 연해진다. 흑연이 많아질수록 심이 무르고(B, black) 글씨는 진해진다. HB는 그 중간, F는 HB와 H 사이에 낀 미묘한 존재다. 4H에서 2H, H, F, HB, B, 2B, 4B로 갈수록 점토의 자리
다이어리를 사흘 밀리고 몰아 쓰는 밤이었다. 손에 잡히는 볼펜으로 첫 줄을 썼는데 종이를 긁는 느낌이 거슬려서 다른 펜으로 바꿨더니, 이번에는 미끄러지듯 나갔다. 둘 다 촉은 0.5mm였다.
결론부터 말하면 이 차이는 잉크 점도, 그러니까 잉크가 얼마나 끈적한가에서 온다. 이 글은 젤펜과 유성볼펜의 필기감 차이를 점도로 설명하고, 내 손에 맞는 펜을 고르는 기준까지 정리한다. 밀린 일기는 결국 다음 날로 넘어갔다. 우선순위가 이상하다는 자각은 있는데, 고칠 생각은 별로 없다.
볼펜 굵기(mm)만으로 필기감을 알 수 없는 이유
0.5mm라는 숫자에는 필기감 정보가 없다. 펜 포장의 0.5mm는 볼의 지름, 정확히는 선폭 규격이다. 같은 규격의 두 펜이 완전히 다른 느낌을 주는 이유는 그 바깥에 있고, 공개된 자료를 종합하면 대부분 잉크의 점도다.
젤펜과 유성볼펜의 잉크 점도 차이
젤펜과 유성볼펜의 잉크 점도는 몇 배 정도가 아니라 자릿수가 다르다. 제조사들이 공개한 스펙을
필통을 열었더니 지우개가 자에 눌어붙어 있었다. 떼어내니 자 표면이 뿌옇게 녹아 있다. 지우개가 옆에 있던 문구를 공격하는 이 현상, 한 번쯤 겪어봤을 것이다.
범인을 찾다 보니 질문이 하나 앞서 나왔다. 애초에 지우개는 어떤 원리로 연필 글씨를 지우는 걸까. 답부터 말하면, 지우개는 글씨를 갈아내는 게 아니라 흑연을 자기 쪽에 붙여서 떼어낸다. 이 글은 그 원리와 플라스틱·고무 지우개의 차이, 그리고 필통 사건의 범인까지 정리한다.
연필 자국이 종이에 남는 원리
연필로 쓴 자국은 잉크처럼 종이에 스며든 것이 아니다. 흑연 입자가 종이 표면의 섬유 사이에 얹혀 있을 뿐이다.
볼펜 글씨는 잉크가 섬유 속으로 파고들어서 지우개로는 어쩔 도리가 없지만, 연필 글씨는 표면에 붙어 있는 상태라 떼어낼 수 있다. 지울 수 있는 필기구와 없는 필기구의 운명이 여기서 갈린다. 참고로 표면에 얹히는 흑연의 양은 연필 경도(H·B)에 따라 달라서, 진하게 쓴 연필일수록 오히려 잘 지워진다.
책장을 정리하다가 7년 전 수험서를 펼쳤다. 볼펜 밑줄은 멀쩡한데 형광펜 자국만 유령처럼 옅어져 있었다. 같은 페이지에서 하나는 살아남고 하나는 증발했다면, 두 잉크는 애초에 다른 원리로 살았다는 뜻이다.
그래서 이 글은 형광펜의 원리를 정리한다. 형광펜이 왜 유난히 밝게 보이는지, 왜 노란색이 표준이 됐는지, 왜 햇빛에 바래는지. 셋 다 형광 염료라는 하나의 원리에서 나오는 이야기다. 책 정리는 그 자리에서 중단됐다. 궁금한 게 생기면 하던 일이 멈추는 체질이라 어쩔 수 없다.
형광펜이 유난히 밝아 보이는 이유
형광펜이 밝아 보이는 이유는 받은 빛보다 많은 빛을 눈에 돌려보내기 때문이다. 색이 진해서 튀는 게 아니라, 물리적으로 더 많은 빛이 눈에 들어온다.
일반 잉크의 색은 뺄셈으로 만들어진다. 종이에 닿은 빛 가운데 일부 파장을 흡수하고 나머지를 돌려보내는 방식이라, 빨간 잉크는 빨강 이외의 빛을 삼켜서 빨갛게 보인다. 당연히 들어온 빛보다 많은 빛이 나갈 수는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