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랍을 정리하다가 노란 형광펜을 네 자루나 발견했다. 잉크가 마를 때마다 새것을 사고 마른 것은 버린 흔적이었다. 그런데 형광펜 중에는 몸통은 그대로 두고 잉크가 든 부분만 갈아 끼우는 리필형도 있다는 걸 나중에 알았다. 진작 그걸 샀으면 이 서랍 사정이 좀 나아졌을까.

리필형 형광펜과 일체형은 구조부터 다르고, 그 차이가 비용과 버려지는 쓰레기양에 어떻게 이어지는지는 계산해봐야 아는 문제였다. 실제 판매가를 놓고 손익을 따져봤다.

리필형 형광펜과 일체형, 구조부터 다르다

리필형은 몸통을 남겨두고 잉크가 든 부분만 교체하는 구조고, 일체형은 잉크와 팁, 몸통이 하나로 성형돼 있어 다 쓰면 펜 전체가 소모품이 되는 구조다.

국내에서 실제로 팔리는 리필형 사례로는 펜텔 핸디라인S가 있다. 노크식 본체에 리필심(품번 SLR3)을 갈아 끼우는 구조로, 리필심 안에 펠트팁과 잉크가 함께 들어 있어서 이 부분만 빼고 새로 꽂으면 된다. 반대로 모나미 에딩슈퍼 600 같은 일체형은 잉크 저장고와 팁, 뚜껑 달린 몸통이 하나로 붙어 있어서 애초에 분리할 부품이랄 게 없다.

일체형 형광펜은 몸통째 폐기하고 리필형은 몸통을 남긴 채 카트리지만 교체하는 구조를 나란히 비교한 모식도
일체형은 몸통째 리필형은 카트리지만 폐기한다 (모식도)

실제 판매가로 계산해보면

실제 가격을 대입하면 리필형이 항상 싼 것도 아니다. 결국 또 시트를 열어 숫자부터 모았다.

모나미 에딩슈퍼 600, 일체형 기준으로 다나와 최저가는 자루당 220원이다. 펜텔 핸디라인S 본체는 같은 기준으로 최저가 1,320원인데 판매처에 따라 4천 원대까지 벌어진다. 리필심(SLR3)은 오피스존 판매가 기준 1,150원이다. 가격은 확인 시점 기준이고 구매할 땐 다시 확인하는 게 맞다. 리필형을 처음 사는 비용은 본체와 리필심을 더한 2,470원이고, 그다음부터는 리필심 값만 추가된다.

리필형이 무조건 이득이라는 건 오해다

리필형이 당연히 경제적일 거라고 생각했는데 이 가격대로는 그렇지 않다. 1,150원짜리 리필심 하나가 이미 220원짜리 일체형 새 자루보다 5배 넘게 비싸기 때문이다. 리필을 몇 번을 반복하든 누적 비용은 매번 새 일체형을 사는 쪽보다 항상 많이 든다(계산값). 손익분기 지점이 아예 없다는 걸 확인하려고 시트를 다섯 줄이나 채운 게 좀 허무했다.

형광펜을 다섯 번 다 쓸 때까지 리필형과 일체형의 누적 비용을 선그래프로 비교한 모식도
리필을 거듭해도 누적 비용은 계속 벌어진다 (모식도)

다만 이 비교가 완전히 공평하지는 않다. 노크식 리필형은 애초에 저가 일체형과 다른 급의 제품이고, 몸통의 만듦새나 팁 교체 편의성 같은 값이 가격에 포함돼 있다. 볼펜 리필심과 새 펜 구매 글에서도 본체 가격이 낮으면 리필이 불리하다는 같은 패턴이 나왔는데, 형광펜도 다르지 않았다.

그런데 폐기물 기준으로 보면 얘기가 달라진다

값이 아니라 버려지는 플라스틱 양으로 보면 결론이 뒤집힌다. 일체형은 매번 뚜껑과 클립까지 포함한 몸통 전체를 버리고, 리필형은 몸통을 그대로 둔 채 카트리지 하나만 버린다. 카트리지는 잉크통과 펠트팁만 담은 작은 부품이라 부피 자체가 몸통 전체보다 훨씬 작다. 같은 횟수만큼 다 써도 버려지는 플라스틱 총량은 구조상 리필형 쪽이 적을 수밖에 없다.

밝은 회색 책상 위에 파란색 형광펜 한 자루가 놓여 있고 옆에 형광 연두색 스티커 메모지와 인덱스탭 몇 개가 흩어져 있다
형광펜과 인덱스탭이 놓인 흔한 책상 위 조합

형광펜은 어느 쪽이든 분리배출 대상이 아니다. 고무나 금속 부품이 섞여 있고 부피도 작아서 재활용 가치가 없다는 이유로 일반쓰레기로 분류된다. 그러니 두 방식의 차이는 재활용으로 상쇄되는 게 아니라 애초에 덜 버리는 쪽이 이기는 문제다. 형광펜을 방치해서 마르게 하는 것도 결국 조기 폐기인데, 그 문제는 형광펜 오래 쓰는 법에서 뚜껑 구조로 따로 짚었다.

그래서 어떤 형광펜을 고르나

가격만 보면 저가 일체형 여러 자루를 사는 쪽이 유리하다. 형광펜을 가끔 한두 자루만 쓰는 사람에게는 리필형의 초기 비용 2,470원이 회수되지 않는 부담일 뿐이다.

반대로 색상별로 여러 자루를 오래, 자주 쓰는 사람이라면 얘기가 다르다. 매번 버려지는 플라스틱 총량을 줄이는 데 의미를 둔다면 가격에서 보는 손해는 그 대가로 감수할 만하다.

계산을 끝내고 나니 서랍 속 형광펜 네 자루가 좀 억울해졌다. 진작 리필형을 알았어도 돈이 굳지는 않았을 거라는 뜻이니까. 그래도 다음에 하나를 새로 살 땐 카트리지 규격이 몇 가지나 있는지부터 확인해볼 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