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이어리에 밑줄을 긋다가 이상한 걸 발견했다. 어제 그은 줄은 가늘고, 오늘 그은 줄은 훨씬 두껍다. 같은 펜인데 이렇게 다르면 손이 떨렸다고 해야 할지 펜이 이상해졌다고 해야 할지 판단이 안 선다. 결국 필통을 열어 형광펜 촉을 하나하나 들여다봤다. 원인은 손이 아니라 촉의 생김새였다. 형광펜 촉은 크게 사각닙(치즐팁)과 원형닙(원통촉) 두 형태로 나뉘고, 이 모양 차이가 밑줄 굵기의 일관성을 통째로 결정한다.
이 형광펜이 왜 유난히 밝아 보이는지는 형광펜이 밝게 보이는 이유에서 이미 짚었으니, 이번에는 촉 모양 얘기만 하겠다.
형광펜 사각닙과 원형닙, 스펙부터 비교하면
두 촉의 가장 큰 차이는 굵기가 고정이냐 가변이냐다. 사각닙은 쥐는 각도에 따라 굵기가 크게 바뀌고, 원형닙은 어떻게 쥐어도 굵기가 거의 그대로다.
| 구분 | 사각닙 (치즐팁) | 원형닙 (원통촉) |
|---|---|---|
| 단면 구조 | 평평하게 비스듬히 잘린 면 | 둥글고 대칭인 점 |
| 굵기 범위 | 약 1.0~4.0mm (모나미 에딩슈퍼 600 스펙 기준) | 보통 0.6~1.4mm 사이 한 값으로 고정 |
| 쥐는 각도 영향 | 굵기가 크게 바뀐다 | 거의 영향받지 않는다 |
| 장시간 사용 시 | 넓은 면이 먼저 닳아 불균등해지기 쉽다 | 비교적 균일하게 닳는다 |
표만 보면 사각닙이 손해 보는 모양새 같지만, 이건 결함이 아니라 설계 방향이 다른 것뿐이다. 펜촉 구조 하나로 필기감이 이렇게까지 갈리는 사례는 롤러볼펜과 볼펜의 닙 구조 비교에서도 다룬 적이 있는데, 여기서도 결론은 같다. 구조가 용도를 정한다.
사각닙은 왜 굵기가 들쭉날쭉해지나
사각닙의 밑줄 굵기는 종이에 닿는 면이 넓은 평면이냐 좁은 모서리냐에 따라 달라진다. 필압이 아니라 접촉 면적이 굵기를 정한다.
사각닙 끝은 칼로 어슷하게 자른 듯한 평평한 면이다. 이 면을 통째로 대고 그으면 넓은 쪽 전체가 잉크를 바르면서 3~4mm 굵기의 선이 나온다. 손목을 90도 돌려 모서리만 종이에 대면 접촉 면적이 급격히 줄고, 그 결과 1mm 안팎의 가는 선이 그어진다(붓의 옆면과 끝을 구분해 쓰는 것과 비슷한 이치라고 생각하면 대충 맞는다). 문제는 이 각도가 손에 쥔 방식과 필기 습관에 따라 매번 미묘하게 달라진다는 점이다. 어제와 오늘 밑줄 굵기가 다르게 보인 것도 결국 펜을 쥔 각도가 그날그날 달랐기 때문이다. 게다가 사각닙은 넓은 면부터 먼저 닳는 경향이 있어서, 오래 쓸수록 각도별 굵기 차이가 더 벌어질 수 있다.

원형닙이 항상 같은 굵기를 내는 이유
원형닙은 어느 방향으로 돌려도 종이에 닿는 부분이 똑같은 둥근 단면이라 굵기가 변하지 않는다.
닙이 대칭이라는 게 핵심이다. 사각닙은 회전시키면 닿는 면의 모양 자체가 바뀌지만, 원은 아무리 돌려도 원이다. 접촉 면적이 회전과 무관하게 일정하니 굵기도 일정하게 나온다. 그래서 좁은 칸에 체크 표시를 넣거나 글자 위에 정확히 밑줄만 긋는 작업에는 원형닙이 유리하다. 대신 사각닙처럼 한 자루로 넓은 강조와 가는 밑줄을 오가는 유연함은 없다. 원형닙에게 넓은 면적을 칠하라고 하면 왕복 횟수만 늘어난다.
굵기 고민을 없애는 트윈팁이라는 선택지
두 촉을 하나씩 고르기 귀찮다면 답은 이미 나와 있다. 제조사들이 양쪽 끝에 서로 다른 굵기 촉을 붙인 트윈팁 제품을 이미 팔고 있다. 유니볼 프로퍼스 윈도우 형광펜은 넓은 4.0mm 팁과 가는 0.6mm 팁을 한 자루에 담았고, 톰보우 형광펜 코트도 0.8mm와 3.8mm를 양 끝에 나눠 붙였다. 굵기 일관성과 유연성을 동시에 원한다면 이런 콤보형이 가장 실용적인 절충안이다.
밑줄용으로는 어떤 촉을 골라야 하나
정답은 용도에 달렸다. 글자 위에 정확한 두께로만 밑줄을 긋는 게 목적이면 원형닙이 맞는 선택이다. 각도 걱정 없이 매번 같은 굵기가 나온다. 반대로 문단 강조와 세밀한 밑줄을 한 자루로 오가고 싶다면 사각닙이 유리하되, 굵기가 들쭉날쭉해지는 걸 피할 수 없다는 전제는 받아들여야 한다. 이미 트윈팁 제품을 쓰고 있다면 이 고민 자체가 필요 없다. 어느 쪽을 쓰든 결과를 정하는 건 촉이지 손이 서툴러서가 아니라는 사실만 알면 된다.
그래서 결국 필통에는 사각닙 두 자루와 원형닙 한 자루가 나란히 남았다. 굵기 문제 하나 해결하겠다고 촉 구조까지 뒤져본 밤이었는데, 정작 다음 날 밑줄은 여전히 삐뚤빼뚤했다. 그건 각도가 아니라 그냥 손글씨 문제였던 모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