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의실에서 만년필을 꺼냈다가 조용히 다시 넣었다. 회사 복사지 위에서 내 글씨가 수염 난 얼룩으로 변하는 걸 봤기 때문이다. 같은 펜이 집의 노트에서는 흠잡을 데 없이 매끄럽게 구르는데, 종이가 바뀌자 완전히 다른 도구가 되어버렸다. 만년필은 왜 이렇게 종이를 가리는가. 그동안 이 블로그에서 조각조각 다뤄온 이야기들이 사실 하나의 지도로 모인다는 걸 깨달았고, 오늘은 그 지도를 그려본다.
전제, 만년필은 잉크를 쏟아붓는 도구다
출발점은 잉크 방출량이다. 볼펜의 유성 잉크가 고점도 잉크를 볼로 조금씩 굴려 바르는 방식이라면, 만년필은 저점도 수성 잉크를 모세관 현상으로 흘려보내는 방식이다. 단위 길이당 종이에 도달하는 액체의 양이 필기구 중에서도 최상위권이라, 볼펜이 아무 종이에서나 무난한 반면 만년필은 종이의 모든 약점을 사정없이 들춰낸다. 종이를 가리는 게 아니라, 종이의 실력이 그대로 드러나는 것이다.
세 가지 참사, 원인을 나눠 본다
복사지 위의 참사를 분해하면 사실
헌책방에서 같은 연대의 책 두 권을 만졌다. 한 권은 페이지 모서리가 누렇게 바스라져 가루를 남겼고, 다른 한 권은 종이가 그저 미색일 뿐 멀쩡했다. 나이는 같은데 노화가 다르다. 책의 팔자를 가른 것이 무엇인지 궁금해졌는데, 답은 종이의 산도였다. 이 이야기가 헌책방 취미가 없는 사람에게도 상관있는 이유는, 지금 쓰는 다이어리가 20년 뒤 어느 쪽 책이 될지를 바로 이 산도가 정하기 때문이다.
산성지, 자기를 파괴하는 종이
19세기 후반부터 20세기 후반까지 대량 생산된 종이는 대부분 산성지다. 목재 펄프를 값싸게 종이로 만드는 과정에서 산성 약품이 쓰였고, 종이에 남은 산은 시간이 지나며 종이의 골격 분자인 셀룰로오스를 가수분해로 야금야금 끊어낸다. 사슬이 짧아진 종이는 누렇게 변하고 유연성을 잃다가 결국 만지면 부서진다. 외부의 공격이 아니라 종이가 제 몸에 지닌 산으로 스스로를 소화하는 구조라서, 서늘한 서고에 고이 모셔둬도 진행 자체는 멈추지 않는다. 도서관들이 20세
도서관에서 빌린 책 이야기는 아니다. 빌린 책에 형광펜을 긋는 건 그 자체로 범죄니까. 내 얇은 사전에 형광 줄을 그었더니 뒷장의 단어 세 개가 노란 배경을 얻어버렸다. 앞장을 강조했는데 뒷장이 멋대로 편집된 셈이다. 얇은 종이와 형광펜의 조합은 왜 항상 이런 참사로 끝나는지, 그리고 매대에는 대안이 있는지, 스펙을 모아 따져봤다.
참사의 구조, 두 사건이 겹친다
평량 글에서 나눈 용어를 다시 쓰면, 얇은 종이 위의 형광펜은 비침과 번짐을 동시에 일으킨다. 먼저 형광펜은 잉크를 많이 쏟는 도구다. 넓은 칩으로 면을 칠하는 구조라 필기구 중에서도 단위 면적당 잉크 방출량이 가장 많은 축인데, 수성 잉크가 이 정도 양으로 들어오면 사전지 같은 저평량 종이는 그냥 뚫려버린다. 이게 번짐이다. 둘째, 어찌어찌 뚫리는 건 면했다 해도 형광색은 빛을 재방출하는 색이라 존재감이 워낙 강해서, 종이의 낮은 불투명도를 뚫고 뒷면에서 훤히 비쳐버린다. 이건 비침이다. 두 사건의 원인이 다르니 대
젤펜 글 끝에서 예고한 숙제를 하러 왔다. 잉크가 종이에 스며들 때 종이 쪽에서는 무슨 일이 벌어지는가. 발단은 노트 쇼핑몰의 후기였다. "만년필에는 무조건 100gsm 이상"이라는 문장이 상식처럼 반복되고 있었는데, 평량은 종이 1제곱미터의 무게일 뿐이다. 무게가 무거우면 안 비친다는 게 정말일까. 스펙 자료를 모아 따져봤더니 절반만 맞는 이야기였다. 그리고 이런 절반짜리 상식이야말로 이 책상이 좋아하는 먹잇감이다.
용어부터, 비침과 번짐은 다른 사건이다
후기들이 "비친다"로 뭉뚱그리는 현상은 사실 둘이다. 비침(show-through)은 뒷면 글씨가 종이를 투과해 어른거리는 것으로 빛의 문제고, 번짐(bleed-through)은 잉크가 종이를 뚫고 뒷면까지 도달하는 것으로 침투의 문제다. 원인이 다르면 처방도 달라야 하는데, 둘을 섞어 부르는 순간 "두꺼운 종이 사면 해결"이라는 절반짜리 답이 태어난다.
평량은 무게 지표다, 차폐 지표가 아니라
평량(gsm)은 말 그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