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이어리 표지 안쪽에 사진 한 장을 딱풀로 붙였다. 다음 날 펼쳐보니 그 페이지만 파도처럼 휘어 있었다. 옆 페이지는 멀쩡한데 사진을 붙인 자리만 그렇다. 풀칠 몇 번 했다고 종이가 이렇게까지 뒤틀리는 이유가 뭘까.

평량 탓이라고 생각했다. 다이어리 속지치고는 얇은 편이니까. 그런데 찾아보니 평량은 절반의 답이었다. 나머지 절반은 종이의 결 방향과 물기가 어느 면에 닿았는지에 있었다. 당신 다이어리 어딘가에도 이유 없이 우글쭈글해진 페이지가 한 장쯤 있을 것이다.

종이가 휘는 이유, 결 방향과 수분 팽창

종이가 휘는 이유는 섬유가 물을 먹을 때 사방으로 똑같이 부풀지 않기 때문이다. 종이를 만들 때 섬유는 기계가 흐르는 방향(MD, machine direction)으로 나란히 눕는다. 이 방향과 수직인 방향을 교차 방향(CD, cross direction)이라 부른다. 셀룰로스 섬유 한 가닥은 마른 상태에서 물을 최대로 먹은 상태까지 지름이 15~20% 늘어나는데, 섬유 대부분이 MD로 정렬돼 있으니 그 팽창은 CD 쪽으로 쌓인다. 결 방향에 수직인 섬유는 결 방향보다 최대 400% 더 크게 팽창하거나 수축한다는 인쇄업계 자료도 있다. 물을 한쪽 면에만 발라 보면 바로 확인되는 현상이다. 종이는 즉시 그 방향으로 말리기 시작한다.

결 방향과 편면 흡습이 종이를 뒤트는 두 가지 경로 모식도
결 방향·편면 흡습 뒤틀림 모식도

다이어리에 붙인 사진도 같은 경로다. 딱풀의 수분이 종이 안쪽 면에만 스몄고, 그 면의 섬유가 CD 방향으로 더 크게 부풀면서 종이가 젖은 면을 감싸듯 휘었다.

라벨 산업에서는 접착제 휘김을 이렇게 관리한다

이 현상은 라미네이션(접착제 적층) 공정에서는 오래된 골칫거리다. 스티커나 라벨은 상면재(종이)와 이형지를 접착제로 붙이는 두 겹 구조인데, 두 층의 수분 팽창률이 다르면 상면재 쪽으로 말린다. 습도가 40%에서 70%로만 올라가도 섬유가 부풀어 휘김이 시작된다는 게 업계 설명이다.

그래서 라벨 제조 공정은 습도 45~55%를 표준으로 관리하고, 접착제 도포량도 ±0.5g/m² 오차 범위 안에서 통제한다. 완성된 롤의 휘김 정도는 ASTM D4825 기준으로 네 모서리 높이를 재서 5mm를 넘으면 불합격으로 판정한다(집에서 이 정도 정밀도를 갖출 필요는 없지만, 원리는 그대로 가져다 쓸 수 있다). 접착제(물)가 종이 한쪽 면에만 닿으면 그 면의 섬유가 더 크게 늘어나고, 상대적으로 짧아진 마른 면 쪽으로 종이가 굽는다.

평량이 높으면 덜 뒤틀릴까, 종이 등급별 수분 함량 비교

평량이 높다고 덜 뒤틀리는 건 아니다. 평량은 1제곱미터당 무게일 뿐, 종이가 수분을 얼마나 머금고 얼마나 안정적으로 마르는지를 나타내는 지표가 아니다. 종이의 수분 함량은 등급에 따라 212% 사이에서 제각각이다. 신문용지는 7.59.5%, 사무용지는 4.04.5%, 인쇄용지는 67%, 티슈는 2~7% 수준이라는 업계 자료가 있다. 평량이 아니라 펄프 종류와 정제 정도, 표면 처리가 수분 함량을 가른다.

커팅매트 위에 놓인 스크랩북 재료와 종이 조각들
스크랩북 작업대, 풀칠이 자주 일어나는 자리

흡습 팽창률(습도가 바뀔 때 늘어나거나 줄어드는 비율)도 등급마다 다르다. 무카본지는 결 방향 0.050.15%, 교차 방향 0.20.4%가 늘어나는데, 가스켓용지는 결 방향만 0.41.0%, 교차 방향은 0.51.1%까지 늘어난다. 두 등급 모두 교차 방향이 결 방향보다 크게 움직이는 패턴은 같지만 절대치는 8배 넘게 차이가 난다. 평량 하나로는 이 차이를 짐작할 수 없다. 평량이 번짐에 미치는 영향에서 다뤘듯, 평량은 두께의 지표일 뿐 종이 반응 전체를 설명하는 단일 변수가 아니다.

풀칠할 때 뒤틀림을 줄이는 법

뒤틀림을 완전히 막을 수는 없지만 줄이는 방법은 있다. 첫째는 접착제의 수분량이다. 딱풀과 물풀의 차이에서 정리했듯 딱풀은 고체 왁스 기반이라 수분이 거의 없고, 물풀은 수분 함량이 훨씬 높다. 같은 면적을 붙인다면 딱풀 쪽이 뒤틀림이 작다. 둘째는 압착이다. 풀칠한 면을 무거운 책 사이에 몇 시간 끼워두면 마르는 동안 종이가 평평한 상태를 유지해 뒤틀림이 덜 남는다. 셋째는 양면 처리다. 한쪽 면에만 물기가 닿으면 그쪽만 팽창하므로, 스크랩북처럼 넓은 면적을 붙일 때는 반대 면에도 물을 살짝 발라 균형을 맞추는 방법을 쓰기도 한다.

어떤 사람에게 종이 뒤틀림이 문제가 되나

스티커 한 장, 사진 한 장을 붙이는 정도라면 뒤틀림은 신경 쓸 일이 아니다. 마르고 나면 대부분 평평해지고, 다이어리를 덮어두면 눌림 효과까지 더해진다. 반면 스크랩북처럼 한 페이지에 여러 장을 겹쳐 붙이거나 콜라주로 넓은 면적을 한 번에 붙이는 사람이라면 얘기가 다르다. 결 방향을 맞추고 압착하는 습관을 들이는 쪽이 나중에 페이지를 다시 펴는 수고를 던다. 물풀 대신 딱풀을 쓰는 습관 하나만 바꿔도 뒤틀림은 확실히 줄어든다.

효율 계산은 이번에도 어긋났다. 스티커 한 장 때문에 시작한 조사였는데 결국 라벨 업계의 ASTM 표준 문서까지 열어보고 있었다. 다음엔 결 방향을 표시해 파는 종이 제품이 있는지부터 찾아볼 참이다. 인쇄용지는 결 표시가 있다는데 다이어리 속지에서는 본 적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