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이어리를 넘기다가 가름끈 끝이 붓처럼 풀려 있는 걸 발견했다. 어제까지는 멀쩡했다. 딱히 잡아당긴 기억도 없는데 실 몇 가닥이 삐죽 빠져나와 있었다. 당신 다이어리에도 지금 이렇게 너덜너덜해진 가름끈이 한 가닥쯤 있을 것이다.
책갈피 끈은 왜 유독 끝부분만 이렇게 풀리는가. 다이어리나 양장본에 꿰매어진 이 리본은 정식으로는 가름끈이라 부르는데(제책 공정에서 쓰는 용어다), 같은 리본이라도 소재와 마감 방식에 따라 풀림 속도가 완전히 달라진다.

책갈피 끈은 왜 끝만 풀리는가
리본이 풀리는 자리는 항상 자른 단면이다. 리본은 세로 방향의 날실과 가로 방향의 씨실이 교차해서 짜이는 좁은 직물인데, 가장자리(셀비지)는 실이 서로 감싸며 고정되도록 짜여 있어 원래 잘 안 풀린다. 문제는 원단을 원하는 길이로 자를 때 생긴다. 컷 라인은 날실과 씨실이 마주 물린 지점이 아니라 실이 그대로 노출된 채 잘리는 자리라서, 그 지점의 실 끝은 서로 붙잡아 줄 게 없다. 폴리에스터·나일론 같은 합성섬유는 표면이 매끄러워서 이 노출된 실이 마찰만 조금 받아도 옆으로 슬쩍 밀려 나온다. 매일 손가락으로 짚고 넘기는 자리가 하필 그 컷 단면이니, 가름끈은 태생부터 끝에서 풀리도록 만들어진 셈이다.
그로그랭과 새틴, 가름끈 소재 차이
그로그랭은 촘촘한 교차 덕분에 실이 잘 안 풀리고, 새틴은 길게 뜬 실 때문에 쉽게 풀린다. 가름끈으로 가장 많이 쓰이는 두 소재가 이 둘인데, 짜임 방식부터 다르다. 그로그랭은 두꺼운 씨실을 촘촘하게 넣어 짜는 평직이라 표면에 가로 골이 뚜렷하게 잡히고, 이 골 구조가 실을 단단히 물어준다. 새틴은 수자직이라는 방식으로 짜는데, 날실이나 씨실 한쪽이 여러 가닥을 건너뛰며 표면 위로 길게 떠 있어서 그 매끈한 광택이 나온다. 문제는 이 떠 있는 구간이다. 실이 다른 실과 교차하는 고정점이 적을수록 컷 단면에서 실 한 가닥이 빠질 때 옆 가닥까지 연쇄로 딸려 나오기 쉽다.
그로그랭이 상대적으로 안 풀리고, 새틴은 광택 대신 그 대가를 치르는 구조다. 매일 펼치는 다이어리·성경책류 가름끈은 그로그랭 비중이 높고, 결혼식 답례품처럼 손이 덜 타는 리본에는 새틴이 더 많이 쓰인다.
가름끈 끝을 안 풀리게 마감하는 법
제조 단계에서 쓰는 마감법은 크게 세 가지다. 첫째는 열재단이다. 폴리에스터·나일론은 열가소성 섬유라 뜨거운 칼날이나 초음파 커터로 자르면 자른 자리의 섬유 끝이 그대로 녹아 서로 엉겨 붙는다. 냉각되면 그 자리가 하나의 얇은 막이 되어 실이 빠져나올 통로가 없어진다. 핑킹컷은 지그재그 날로 잘라 절단면의 길이를 늘리고 마찰 지점을 늘리는 방법인데 열재단보다는 효과가 약하다. 프레이체크 같은 액체 실링제는 실 사이를 굳히는 방식으로, 열로 녹지 않는 천연섬유에 주로 쓴다.
다이어리에 꿰매어 파는 가름끈 대부분은 열재단으로 마감돼 있어야 정상이고, 그 마감이 얇거나 아예 생략된 저가 제품일수록 몇 달 안 가 끝이 붓처럼 풀린다.
이미 산 다이어리, 가름끈이 계속 풀린다면
이미 풀리기 시작한 가름끈을 라이터로 지지면 임시방편은 된다. 다만 이건 제조 단계에서 정밀하게 하는 열재단과는 다르다. 손으로 지지면 온도 조절이 안 돼 뭉치거나 눌어붙기 쉽고, 그 부분이 딱딱해져서 다음 페이지를 넘길 때 걸리적거린다(나도 한 번 시도했다가 리본 끝이 새까맣게 타서 결국 가위로 잘라내야 했다). 매일 여러 번 손이 가는 다이어리·플래너라면 애초에 그로그랭 소재를 쓰거나 마감이 단단한 제품을 고르는 쪽이 계산이 빠르다. 반대로 가름끈을 거의 안 쓰고 장식으로만 두는 사람이라면 이 차이는 신경 쓸 이유가 없다. 어차피 손이 안 닿는 자리는 풀릴 일도 없다.
가름끈 하나 풀린 걸 보고 시작한 검색이었는데 결국 직물 조직 이름까지 외우고 있었다. 다이어리의 제본 방식이나 180도로 펼쳐지는 구조는 고를 때 이것저것 따져봤으면서, 가름끈은 딸려오는 부속품 취급하며 한 번도 눈여겨본 적이 없었다. 다음 다이어리를 살 땐 표지 소재보다 가름끈 끝부터 만져볼 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