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라인 장바구니에 풀을 담다가 3분을 썼다. 딱풀을 살까, 스틱풀을 살까. 검색까지 하고 나서야 머쓱해졌다. 둘은 같은 물건이다. 딱풀은 아모스가 1984년에 내놓은 고체풀의 상품명이고, 너무 유명해진 나머지 고체풀 전체를 부르는 이름이 됐다. 밴드를 대일밴드라고 부르는 것과 같은 사정이다.
그러니 풀 매대에서 실제로 갈리는 선택지는 둘이다. 고체풀이냐, 물풀이냐. 결론부터 말하면 두 풀은 수분이 날아가면서 굳는 같은 계열의 접착제고, 차이의 핵심은 수분의 양이다. 그 수분이 접착력과 종이가 우는 문제, 어울리는 용도까지 전부 가른다. 이 글은 고체풀과 물풀의 성분과 접착 원리를 공개 자료 기준으로 정리하고, 상황별로 어느 쪽을 집을지 기준을 세운다.
풀이 종이를 붙이는 원리: 스며들고, 마르면서 굳는다
종이용 풀의 일은 세 단계다. 표면을 적시고, 종이 섬유 사이로 스며들고, 물이 증발하면서 굳는다. 풀의 접착 성분은 물에 녹는 긴 사슬 모양 분자(고분자)다. 물에 녹아 있는 동안은 흐를 수 있으니 종이의 미세한 틈으로 파고들고, 물이 마르면 사슬끼리 얽히면서 투명하고 단단한 막이 된다. 종이 두 장은 이 막에 양쪽 섬유가 박힌 채로 묶인다. 겉면에 얹혀서 붙잡는 게 아니라, 굳은 막이 양쪽 종이에 뿌리를 내리고 한 몸이 되는 쪽이다.
같은 서랍에 살아도 테이프와는 반대편 원리다. 마스킹테이프의 감압접착제는 끝까지 굳지 않고 끈적한 상태로 일하기 때문에 도로 뗄 수 있다. 풀은 굳어야 일한다. 굳기 전에는 위치를 고칠 수 있고, 굳은 뒤에는 종이가 찢어지면 찢어졌지 순순히 떨어지지 않는다. 뗄 계획이 있는 자리에 풀을 쓰면 안 되는 이유가 원리 안에 이미 들어 있다.
고체풀은 립스틱에서 태어났다: 성분과 구조
고체풀의 원형은 1969년 독일 헨켈이 내놓은 프리트(Pritt) 스틱이다. 회사 기록에 따르면 1967년 연구원 볼프강 디리히스가 립스틱 바르는 모습을 보고 아이디어를 얻었다. 접착제를 립스틱처럼 돌려 올려 바르면 손에 안 묻고 빠르고 깔끔하지 않을까. 그래서 구조도 립스틱과 같다. 물에 녹는 접착 성분을, 형태를 잡아 주는 단단한 비누 겔에 섞어 막대로 굳혔다. 접착 성분으로는 피브이피(PVP), 물이 마르면 얇은 막을 만드는 수용성 고분자가 흔히 쓰인다.
비누 겔 구조의 효과는 두 가지다. 종이에 문지르면 표면만 얇게 묻어나기 때문에 양 조절이 쉽고, 배합에서 물이 차지하는 비중이 낮다. 이 낮은 수분이 뒤에서 이야기할 고체풀 최대의 무기가 된다. 한국에서는 아모스가 1984년 이 형태의 풀을 딱풀이라는 이름으로 내놨고, 이후는 아는 대로다. 이름이 물건을 이겨 버렸다.

물풀은 PVA 수용액: 수분이 많아서 강하고, 많아서 문제다
물풀의 접착 성분은 폴리비닐알코올(PVA)이다. 이름은 다르지만 역시 물에 녹는 고분자고, 하는 일도 고체풀의 접착 성분과 같다. 다른 것은 상태다. 물풀은 이 성분을 물에 넉넉히 녹여 놓은 액체라서, 배합에서 수분이 차지하는 비중이 고체풀보다 훨씬 높다.
수분이 많으면 유리한 점이 분명하다. 액체는 종이 깊숙이 스며든다. 굳었을 때 물려 있는 면적이 넓으니 접착이 강하고, 표면이 우둘투둘한 재료나 두꺼운 종이에서도 틈을 채우며 붙는다. 참고로 공작 책상의 목공풀도 같은 PVA 계열의 친척이다. 문제는 그 물이 접착만 돕고 얌전히 사라지는 게 아니라는 데 있다.
물풀에 종이가 우는 이유: 섬유가 물을 마신다
물풀을 바른 종이가 우글우글해지는 현상의 범인은 수분이다. 종이 섬유는 물을 먹으면 부풀고, 마르면서 다시 줄어든다. 그런데 풀칠한 자리와 안 한 자리가 다르게 부풀었다가 다르게 수축한다. 이 불균형이 종이를 물결로 만들고, 한번 운 종이는 눌러 둬도 잘 펴지지 않는다. 종이가 얇을수록, 바른 면적이 넓을수록 심해진다.
고체풀이 사무용 풀의 표준이 된 이유가 여기 있다. 수분이 적으니 종이가 덜 울고, 증발시킬 물이 적으니 마르는 것도 빠르다. 수정액이 마를 때까지 기다려야 하는 것과 같은 계열의 비용을 물풀은 수분으로 치르는 중이다. 증발로 일하는 도구는 증발의 대가를 어딘가에서 꼭 받아 간다.
고체풀과 물풀, 어떤 걸 고르나
기준은 종이와 접착력 중 무엇이 더 아쉬운가다. 문서, 얇은 종이, 넓은 면을 반듯하게 붙이는 일이면 고체풀이다. 울지 않는 것이 이 판의 최우선 가치고, 종이끼리 붙이기에는 접착력도 충분하다. 반대로 두꺼운 판지, 요철 있는 재료, 무게가 실리는 공작물이면 물풀이나 목공풀 쪽이다. 우는 것은 감수하고 접착력을 산다.
풀이 아예 답이 아닌 경우도 있다. 뗄 일이 예정된 임시 고정이면 굳는 접착제가 아니라 안 굳는 점착제, 그러니까 마스킹테이프나 접착 메모지의 영역이다. 풀로 붙인 종이는 다치지 않고 떼기 어렵다. 반대로 영영 붙어 있어야 하는 자리에 테이프를 쓰면 세월이 점착제를 말려서 배신한다. 굳는 쪽과 안 굳는 쪽, 접착의 두 진영은 이렇게 용도를 나눠 가졌다.
장바구니의 3분은 결국 헨켈의 50주년 기념 보도자료까지 이어졌다. 풀은 아직 장바구니에 있다. 뭘 살지는 이제 안다. 언제 살지는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