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탠드를 켜고 하얀 노트를 펼치면 종이가 화면처럼 번쩍여 보일 때가 있다. 문구 매대 앞에서 아이보리 내지와 백지 내지를 번갈아 집었다 놓았다 하다가 결국 검색창을 열었는데, 고르는 데 걸린 시간이 노트 한 권 값어치를 넘겼다.

노트 내지 색상, 그러니까 아이보리와 백지는 제지사 공개 스펙으로 보면 ISO 밝기가 13점에서 14점, CIE 백색도가 50점에서 56점 차이 난다. 미색 종이가 눈에 덜 부시다는 설명은 흔하지만 종이 색만 따로 떼어 잰 시험은 이번 조사에서 찾지 못했고, 눈부심에는 종이 색 말고도 표면 광택과 조명이 끼어든다.

노트 내지 색상, 백지와 아이보리는 수치로 얼마나 다른가

제지사 스펙 기준으로 백색 종이와 크림 종이는 ISO 밝기가 13점에서 14점, CIE 백색도가 50점에서 56점 벌어진다.

범위부터 밝혀 둔다. 한솔제지 제품 소개 등 확인한 범위에서는 노트 내지의 백색도 수치를 공개한 자료를 찾지 못했다. 그래서 수치가 공개된 Arctic Paper의 Munken 서적용 종이 4종을 기준으로 삼았다. 노트용은 아니지만 같은 백색 대 크림 구도이고, 제조사 기술 데이터가 그대로 나와 있다.

용어는 한 줄씩만 풀어 둔다. ISO 밝기는 종이가 파란빛을 얼마나 반사하는지 백분율로 나타낸 값이다. CIE 백색도는 파란빛만이 아니라 가시광 전체의 반사와 색조의 치우침까지 반영한 지수다.

종이 색조 ISO 밝기 CIE 백색도
Munken Premium White 백색 96% 116
Munken Print White 백색 96% 116
Munken Premium Cream 크림 83% 66
Munken Print Cream 크림 82% 60

결국 표를 만들었다. 이 조사가 시트에서 끝나는 건 정해진 수순이다. 백색과 크림의 격차는 밝기 13점에서 14점, 백색도 50점에서 56점으로 계산된다.

Munken 서적용 종이 4종의 ISO 밝기와 CIE 백색도를 나란히 그린 막대그래프 모식도
백색 계열과 크림 계열의 격차는 밝기보다 백색도에서 훨씬 크다 (모식도)

ISO 밝기와 CIE 백색도, 격차가 다르게 나오는 이유

크림 종이는 노란 기가 돌아서, 파란빛 하나만 재는 ISO 밝기보다 색조 전체를 보는 CIE 백색도에서 격차가 훨씬 크게 벌어진다.

노란 기가 도는 종이는 파란빛을 덜 반사한다. 계산해 보면 크림의 밝기는 백색의 85에서 86퍼센트인데 백색도는 52에서 57퍼센트 수준이다(모두 위 표에서 나눈 계산값). 밝기 14점 차이를 "빛을 14퍼센트 덜 반사한다"로 읽으면 안 된다. 그 수치는 파란빛에 한정된 값이라, 종이 전체가 그만큼 어둡다고 옮겨 적을 근거가 없다.

종이를 더 하얗게 보이게 하는 방법 중에는 형광증백제가 있다. Antalis는 자외선을 흡수해 파란빛으로 다시 내보내는 첨가제라서 종이가 실제보다 차갑고 밝은 흰색으로 보인다고 설명한다. 같은 자료에서 사무용지의 CIE 백색도는 보통 120에서 140이다. 이 눈금에서 Munken 백색의 116은 사무용지보다 한 단계 낮은 흰색이다. 백지 안에서도 폭이 꽤 넓다는 얘기다.

눈부심과 필기 대비, 아이보리 내지가 유리하다는 근거는 어디까지인가

아이보리 내지가 눈이 덜 부시다는 건 제조사 설명으로는 흔하지만, 종이 색만 바꿔 잰 시험 결과는 이번 조사에서 확인하지 못했다.

한솔제지는 미색백상플러스를 "자연스러운 미색의 백상지로 눈의 피로도를 덜어주고"라고 소개한다. Antalis는 흰 종이가 빛을 더 많이 반사해 대비가 커지고, 따뜻한 흰색은 색을 부드럽게 하며 대비를 낮춘다고 쓴다. 두 설명이 가리키는 방향은 같지만 둘 다 "그렇게 알려져 있다"는 수준이다. 눈이 덜 피곤한지는 개인차가 있을 것이고, 이 글에서 단정할 수 있는 건 수치까지다.

필기 대비로 옮기면 이렇다. 검정 잉크는 어느 종이에서도 읽힌다. 차이는 연한 잉크에서 커질 것으로 추정한다. 배경이 노랗고 어두워질수록 연한 색과의 명암 차이가 줄기 때문이다. 한솔제지 소개에는 노트·수첩 용도가 백색 라인에, 다이어리·수첩과 필기용 사무용품이 미색 라인에 적혀 있다. 제지사도 노트의 정답을 어느 한쪽으로 갈라놓지는 않았다.

눈부심은 종이 색만의 문제도 아니다. 광택은 정반사 방향으로 표면이 빛을 얼마나 잘 반사하느냐를 가리키는 성질이고, 표면이 매끈하면 정반사에, 거칠면 난반사에 가깝다. 코팅으로 매끈해진 내지는 스탠드 빛이 눈 쪽으로 튀는 각도에서 종이 색과 상관없이 번쩍일 수 있다. 코팅 여부가 잉크에 미치는 영향은 번짐 없는 노트 찾는 법에서 다뤘다.

무광 종이의 난반사와 광택 코팅지의 정반사를 스탠드와 눈 위치로 비교한 모식도
같은 빛도 표면이 매끈하면 한 방향으로 튄다 (모식도)

조명도 변수다. 조명 색이 다르면 같은 종이도 다른 색으로 보이니, 노트 색을 고르기 전에 스탠드 색온도와 연색성(CRI)부터 짚어 볼 만하다. 사진으로 종이 색을 가리기 어려운 것도 같은 이유다.

나무 책상 위에 펼쳐 놓은 빈 노트 양쪽 면이 모두 비어 있다
사진 속 종이 색은 촬영 조건에 따라 달라 보여서 사진만으로 백지와 아이보리를 가리기는 어렵다

백지와 아이보리 노트, 어떤 걸 고를까

밤에 스탠드 아래서 글 위주로 오래 쓴다면 아이보리, 색을 여러 개 쓰거나 나중에 스캔해서 공유한다면 백지가 무난하다.

아이보리는 제조사 설명대로라면 눈에 덜 자극적인 쪽이다(확인된 시험은 없으니 개인차를 전제로). 다색 필기, 연한 형광펜, 도해처럼 색이 중요한 기록은 밝은 흰 배경이 색을 도드라지게 한다는 Antalis의 설명을 따르면 백지가 유리하다. 눈부심이 거슬린다면 종이 색부터 바꾸기 전에 내지가 코팅지는 아닌지, 스탠드 빛이 눈 쪽으로 튀는 각도는 아닌지, LED 조명 플리커 같은 조명 쪽 요인은 없는지를 먼저 본다.

낮에 자연광 아래서 검정 볼펜으로 잠깐 적는 메모용이라면 두 종이의 체감 차이는 작을 것으로 추정한다. 그럴 때는 색보다 평량과 뒷비침 같은 조건이 더 큰 변수가 된다.

표를 다 채우고 나서야 눈치챘다. 매대 앞에서는 색만 붙잡고 있었는데, 정작 변수는 광택과 조명 쪽에도 있었다. 다음 궁금증은 아이보리 종이와 세월이 지나 누렇게 바랜 종이가 같은 노란색인가다. 중성지와 산성지 글에서 다룬 변색과는 원리가 다를 것 같은데, 그건 다음에 파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