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랍에서 노트를 꺼내다가 표지 모서리가 서랍 틈에 걸려 접혔다. 돌이켜 보면 접히고 벗겨지는 곳은 늘 모서리다. 표지 한가운데가 먼저 접히는 일은 없다.

라운드 코너 노트는 각진 노트보다 모서리가 덜 닳을까. 결론부터 말하면 업체들은 그렇다고 설명하지만, 반경별 마모 시험값을 공개한 자료는 찾지 못했다. 이 글은 국내외 인쇄 업체와 노트 브랜드가 밝힌 코너 반경 규격을 표 하나에 모으고, 그 규격이 모서리 끝을 얼마나 깎는지 계산해서 근거의 크기를 가늠해 본다.

라운드 코너와 각진 코너, 가공 단계부터 다르다

각진 코너는 재단만 하면 끝이고, 라운드 코너는 재단 뒤에 모서리를 한 번 더 깎는 가공이다. 국내 인쇄 업계는 이 가공을 귀도리(라운딩)라고 부른다. 한 제본 업체 안내는 귀도리를 책의 귀퉁이를 둥글게 재단해 뾰족한 부분을 없애는 방식이라고 설명한다.

별도 옵션으로 안내하는 업체도 있다. 미국의 북 인쇄 업체는 라운드 코너를 프리미엄 추가 옵션 목록에 올려 두었고, 네덜란드의 인쇄 업체도 마감 가공 메뉴에서 소개한다. 완제품 노트도 표기는 제각각이다. 몰스킨 클래식은 공식 제품 페이지의 특징 목록에 라운드 코너를 적어 두지만 반경은 밝히지 않는다.

각진 코너와 라운드 코너를 나란히 그리고 원래 꼭짓점이 안쪽으로 물러나는 거리를 표시한 모식도
라운드 코너는 꼭짓점을 반경의 0.41배만큼 깎아 낸다 (모식도)

코너 반경 규격 비교, 4mm에서 9.5mm까지

공개된 코너 반경은 4mm에서 9.5mm 사이에 몰려 있다. 표에는 원문에서 확인한 수치만 넣었다.

출처 코너 반경 꼭짓점 후퇴 (계산값)
국내 인쇄 안내 4mm, 6mm (그 외는 별도 견적) 1.7mm, 2.5mm
국내 커스텀 노트 업체 5mm (기본 적용) 2.1mm
미국 온라인 인쇄 업체 0.25인치 (6.35mm) 2.6mm
네덜란드 인쇄 업체 3/8인치 (9.5mm) 3.9mm
Field Notes 스펙 문구 3/8인치 (9.5mm) 3.9mm
몰스킨 클래식 라운드 코너, 반경 미공개 알 수 없음

꼭짓점 후퇴는 원래 모서리 끝이 안쪽으로 물러나는 거리다. 반경에 0.41(√2에서 1을 뺀 값)을 곱해 내가 계산한 값이고, 제조사가 밝힌 수치는 아니다. (모서리 2mm 얘기를 하겠다고 인치 분수를 밀리미터로 환산하고 앉아 있는 사람이 나다.) Field Notes 수치는 공식 페이지가 접속을 막아서, 스펙 문구를 그대로 옮겨 적은 판매처 두 곳에서 확인했다.

숫자만 보면 의외로 작다. 국내 커스텀 노트 업체의 기본값인 5mm 반경이면 꼭짓점이 2mm쯤 물러나고, Field Notes가 적은 9.5mm도 4mm를 넘지 않는다. 라운드 코너의 실체는 뾰족한 끝을 몇 mm 깎아 낸 것이다.

국내외 인쇄 업체와 노트 스펙의 코너 반경을 가로 막대로 비교한 차트 모식도
코너 반경 규격은 4mm에서 9.5mm 사이에 몰려 있다 (모식도)

라운드 코너가 덜 닳는다는 근거는 어디까지인가

업체가 내세우는 이유는 두 갈래다. 내구성을 말하는 쪽과 외관을 말하는 쪽이다.

내구성 쪽부터 보면, 미국의 북 인쇄 업체는 라운드 코너가 접힘과 해짐, 모서리 접힘(도그이어)을 줄인다고 안내한다. 국내 커스텀 노트 업체는 가방에 넣어도 모서리가 구겨지지 않고 깔끔하게 유지된다고 소개한다. 책 모서리에 씌우는 보강 부품을 다루는 한 제본 업체 글은 표지 모서리가 취급, 보관, 운송 중 손상에 특히 약하다고 짚는다. 반면 네덜란드와 미국의 온라인 인쇄 업체 안내는 디자인 효과만 말하고 내구성은 언급하지 않는다.

구조상 그럴 만한 이유는 있다. 꼭짓점은 두 변이 만나는 끝이라 서랍 틈이나 옆 책에 제일 먼저 걸리는 자리다. 라운드 코너는 그 끝을 없애서 걸릴 곳을 줄인다. 다만 이건 추정이다. 이번 조사에서 반경별로 얼마나 덜 닳는지 시험한 값은 찾지 못했다. 모서리를 깎았다고 가장자리 자체가 안 닳는 것도 아니다.

오렌지색 하드커버 노트 표지의 한쪽 모서리 클로즈업으로 모서리가 둥글게 마감돼 있다
꼭짓점이 사라진 라운드 코너의 모양

코너 모양 말고 함께 볼 것, 제본과 표지 재질

코너 모양은 내구성을 가르는 여러 요인 중 하나다. 노트 제본별 내구성을 정리한 글에서 봤듯이 스프링 노트는 링과 구멍이, 떡제본 노트는 등의 접착제가 먼저 약해지고, 양장 노트는 속보다 겉, 특히 표지 모서리부터 낡는다. 모서리 형태가 개입할 수 있는 곳은 이 가운데 양장이다.

표지 소재도 같이 따져야 한다. 같은 모서리라도 노트 커버 소재가 무엇이냐에 따라 닳는 방식이 다르기 때문이다. 코너 반경만 보고 노트를 고르면 정작 더 큰 요인을 놓친다.

라운드 코너는 어떤 노트에 필요할까

서랍과 가방과 책장에 자주 끼웠다 빼는 양장 노트라면 라운드 쪽이 손해 볼 게 없다. 걸릴 곳이 줄어든다는 게 업체 설명이고 구조상으로도 이치에 맞는다. 값이 비슷하다면 둥근 쪽을 고르면 된다.

책상 위에서만 쓰는 노트나 스프링, 떡제본 노트는 코너 모양을 따질 필요가 거의 없다. 약한 곳이 다른 데 있기 때문이다. 반경이 4mm냐 9.5mm냐가 수명 차이로 이어지는지는 자료가 없어서 판단을 보류한다.

국내는 밀리미터로, 해외는 인치 분수로 정하는데 결과가 4~10mm 안쪽에 몰려 있는 게 신기했다. 다음에는 왜 하필 그 범위인지 찾아볼 생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