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 쓴 노트는 버리지 않고 상자에 모아둔다. 언젠가 들춰볼 거라는, 아직 실현된 적 없는 믿음의 상자다. 며칠 전 그 상자에서 파손 두 건을 발견했다. 스프링 노트는 링이 눌려 페이지가 중간에 걸렸고, 밑에 깔린 회의 노트는 표지를 들자 낱장 여남은 장을 쏟아냈다. 같은 상자에서 같은 세월을 보냈는데 하나는 링이, 하나는 등이 무너졌다. 그리고 제일 오래된 양장 일지 한 권만 아무 일 없다는 얼굴로 나왔다.
차이는 제본이다. 노트 제본 종류마다 종이를 붙잡는 재료가 다르고, 약한 곳과 망가지는 순서도 다르다. 이 글은 스프링·떡제본·양장 세 방식의 구조와 각각 먼저 망가지는 부위, 오래 보관할 기록에 맞는 제본, 튼튼한 노트를 스펙에서 가려내는 법을 정리한다. 펼침성 비교는 노트가 180도로 펼쳐지는 제본 구조에서 했으니, 오늘의 관심사는 수명이다.
노트 제본 종류 3가지: 스프링, 떡제본, 양장
시중 노트의 제본은 크게 셋이다. 낱장에 구멍을 뚫어 링으로 꿰는 스프링, 낱장의 등에 접착제를 발라 굳히는 떡제본, 접은 종이 묶음을 실로 꿰매고 딱딱한 표지를 씌우는 양장. 종이를 붙잡는 재료가 금속, 접착제, 실로 전부 다르다.
스프링 제본에서 페이지를 잡는 것은 링이지만, 링을 잡는 것은 구멍 둘레의 종이 몇 밀리미터다. 결속의 절반을 종이가 스스로 부담하는 구조다. 떡제본의 정식 이름은 무선 제본이다. 실이 없다는 뜻인데, 낱장을 시루떡처럼 쌓아 등에 접착제를 바르는 모양새 때문에 떡제본으로 더 자주 불린다. 연습장부터 소프트커버 책까지 세상 인쇄물의 다수가 이 방식이고, 접착제 층 하나가 결속의 전부다.
양장은 공정부터 다르다. 종이를 16쪽, 32쪽 단위로 접어 작은 묶음을 만들고, 묶음마다 실로 꿰맨 다음 서로 이어 붙인다. 사철이라 부르는 방식이다. 여기에 판지 심이 든 표지를 따로 만들어 면지(표지와 속지를 잇는 종이)로 연결한다. 등이 표지에 직접 붙지 않아서 겉이 충격을 받아내고 속은 따로 움직인다.

스프링은 링, 떡제본은 등, 양장은 모서리부터 망가진다
세 제본은 약한 곳의 위치가 다르다. 스프링의 약점은 링과 구멍이다. 금속 링은 가방 안에서 눌리면 찌그러지고, 찌그러진 링은 페이지를 걸리게 만든다. 그다음은 구멍 차례다. 걸린 페이지를 억지로 넘기다 보면 구멍 둘레가 찢어지며 낱장이 통째로 이탈한다. 금속보다 종이가 먼저 지는 싸움이다. 플라스틱 코일은 탄성이 있어 눌려도 어느 정도 돌아오는 대신 비틀리기 쉽고, 금속 더블 링은 변형에 버티다가 한번 찌그러지면 그대로다.
떡제본의 약점은 등의 접착제다. 접착제는 화학 물질이라 세월과 온도에 따라 성질이 변한다. 가장 흔한 EVA 핫멜트 접착제는 추위에 딱딱해져 갈라지고, 더위에는 다시 물러진다. 굳고 무르기를 몇 계절 반복한 등은 벽돌처럼 굳고, 펼칠 때마다 꺾이는 피로까지 쌓이면 어느 날 낱장이 빠지기 시작한다. 상자 속 회의 노트가 겪은 일이 정확히 이것이다.
양장의 약점은 뜻밖에 속이 아니라 겉이다. 실은 웬만해서 끊어지지 않는다(수십 년을 버틴 도서관 책들이 증거다). 낡는 것은 표지 모서리와 표지·등을 잇는 관절이다. 속이 멀쩡한 채 겉부터 늙는, 셋 중 유일하게 안팎의 수명이 역전된 구조다.
오래 보관할 노트는 실로 꿰맨 제본이 맞다
몇 년 넘게 보관할 기록이라면 답은 실로 꿰맨 쪽, 사철과 양장이다. 도서관과 기록 보관소가 사철 제본을 선호한다는 사실이 그대로 근거다. 실은 종이를 물리적으로 꿰어 붙잡기 때문에 화학적으로 늙지 않고, 끊어지지 않는 한 결속력이 유지된다.
접착제도 개선형은 사정이 낫다. PUR 접착제는 공기 중 습기와 반응해 굳는 방식이라, 한번 굳으면 열에 다시 녹지 않고 탄성을 유지한다. 접착력이 EVA보다 최대 50% 높다는 인쇄 업계 자료도 있다. 같은 떡제본이라도 스펙에 PUR이 적혀 있으면 수명 걱정이 한 단계 준다.
하나 더 있다. 제본이 버텨도 종이가 삭으면 소용이 없다. 오래 남길 기록이라면 중성지와 산성지의 차이까지 확인해야 한다. 보관 수명은 결속과 종이, 두 축이 함께 정한다.
하드커버 노트가 전부 양장은 아니다
딱딱한 표지와 양장은 다른 말이다. 양장의 핵심은 표지가 아니라 속을 실로 꿰맸는가이고, 시중에는 하드커버를 씌운 떡제본이 얼마든지 있다. 겉은 단단한데 속은 접착제 한 줄인 조합. 튼튼해 보여서 골랐는데 낱장이 빠진다면 대개 이 경우다.
확인하는 자리는 페이지가 시작되는 안쪽 골짜기다. 노트를 펼쳐 안쪽을 들여다봤을 때 종이 묶음 사이로 실땀이 보이면 사철이다. 온라인이라면 상세 스펙에서 사철, 실 제본, PUR 같은 단어를 찾는다. 이런 단어 없이 고급 제본 같은 수식만 있다면 떡제본으로 보는 편이 안전하다. 실 제본은 수명만이 아니라 펼침성까지 좋아서, 이 두 글자를 확인하면 걱정 두 개가 같이 준다.
몇 년 쓸 기록인지가 제본을 정한다
고르는 기준은 노트에게 기대하는 수명이다. 몇 달 쓰고 버릴 연습장이면 떡제본으로 충분하다. 수명이 짧은 물건에 실 제본 값을 낼 이유가 없다. 낱장을 뜯는 용도면 스프링이 맞고, 뜯었다 다시 꽂는 쪽이 주 용도라면 6공 바인더라는 다른 갈래가 있다. 가방에서 험하게 굴러다닐 노트라면 굵은 금속 링이나 표지가 방패 노릇을 하는 양장이 낫다. 몇 년 뒤에도 들춰볼 일기, 공부 기록, 업무 일지라면 사철이나 PUR 중 한 단어는 스펙에서 확인하고 사는 쪽을 권한다.
물론 이 계산이 무의미한 사람도 있다. 노트를 끝까지 쓰는 일 자체가 드물다면(뜨끔했다면 당신만은 아니다) 제본 수명이 아니라 완주가 먼저다. 그런 손에는 얇은 떡제본 한 권이 양장보다 훨씬 유익하다.
상자 정리는 그날 반에서 멈췄다. 낱장 빠진 노트를 붙잡고 접착제의 노화 조건을 검색하다 시간이 다 갔기 때문이다. 수확은 다음 궁금증이다. 같은 세월을 버틴 표지들, PP와 가죽과 천은 각각 어떻게 늙는가. 상자가 다시 열리는 날이 머지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