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에 다이어리를 사려고 장바구니를 열었다. 연초에 산 다이어리와는 몇 달 전에 서로 소원해졌고, 기록은 다시 하고 싶고, 그래서 새 물건을 찾는 흔한 경로다. 그런데 날짜가 인쇄된 다이어리는 지금 사면 1월부터 6월까지 반년치 지면이 포장을 뜯기도 전에 지난 페이지가 된다. 대안으로 눈에 들어온 것이 만년다이어리였다. 양식은 똑같은데 날짜 칸만 비어 있고, 언제 시작해도 된다고 적혀 있다.
언뜻 완벽한 답 같지만, 만년다이어리의 유연함은 공짜가 아니다. 값은 날짜 쓰기라는 노동으로 치른다. 이 글은 만년다이어리와 날짜인쇄형의 구조 차이, 만년형이 사용자에게 넘기는 일의 크기, 그리고 어떤 기록 패턴에 어느 쪽이 맞는지를 따져본다.
만년다이어리란: 날짜 칸이 비어 있는 다이어리
만년다이어리는 먼슬리와 위클리 양식은 인쇄돼 있고 날짜 숫자만 비어 있는 다이어리다. 쓰는 사람이 날짜를 직접 채우기 때문에 어느 해 어느 달에 펼쳐도 첫 장부터 쓸 수 있다. 만년이라는 이름이 여기서 나온다. 특정 연도에 묶이지 않으니 이론상으로는 만 년 뒤에 사도 쓸 수 있다(그때도 일주일이 7일이라면 말이지만).
다이어리를 자유도 순서로 한 줄에 세워보면 만년형의 위치가 보인다. 한쪽 끝에는 아무것도 인쇄되지 않은 백지 노트가 있다. 불렛저널이 이 극단을 쓰는 방식으로, 날짜는커녕 양식까지 그날그날 만든다. 반대쪽 끝에는 날짜와 요일, 공휴일까지 전부 인쇄된 날짜인쇄형이 있다. 만년다이어리는 그 중간에 선다. 양식이라는 뼈대는 공장에서 받고, 날짜라는 살은 직접 붙이는 구조다.
만년다이어리 장점: 언제 시작해도 버리는 페이지가 없다
만년다이어리의 장점은 결국 하나로 요약된다. 죽는 페이지가 없다. 7월에 사도 첫 장부터 쓰고, 두 달을 쉬었다 돌아와도 빈 지면 없이 바로 다음 장에서 이어진다. 날짜인쇄형은 둘 다 못 한다. 하반기에 사면 상반기 지면이 통째로 놀고, 중간에 쉬면 그 공백이 빈 페이지로 남아 펼칠 때마다 눈에 밟힌다.
이 빈 페이지의 위력을 우습게 보면 안 된다. 플래너 업체들이 공통으로 지적하는 실패 경로가 바로 밀린 지면의 죄책감이다. 비어 있는 몇 주를 마주하기 싫어서 다이어리 자체를 덮어버리는 것이다. 데일리 양식이 3월에 백지가 되는 문제는 위클리 플래너와 데일리 플래너 비교에서 기록량 관점으로 다뤘는데, 만년형은 같은 문제를 구조로 지운다. 안 쓴 주는 지면 위에 존재하지 않고, 기록은 공백 없이 이어진 것처럼 보인다. 다이어리를 자주 갈아타는 사람에게도 유리하다. 1년을 약속하지 않고 새 양식을 시험할 수 있기 때문이다.

만년다이어리 단점: 1년치 날짜는 700칸이 넘는다
대신 그 날짜를 전부 손으로 쓴다. 흔한 구성인 먼슬리 12개월에 위클리 52주짜리를 기준으로 세어보면, 먼슬리 달력의 날짜 칸이 365개, 위클리의 날짜 칸이 또 365개다. 1년을 완주하면 날짜 숫자만 730번을 쓴다. 요일 칸까지 비어 있는 제품이면 364번이 더 붙는다. 궁금해서 세기 시작했는데 표가 완성될 무렵에는 이걸 왜 세고 있는지 잊어버렸다. 어쨌든 숫자는 남았다.
물론 이 노동은 몰아서 처리할 수 있다. 매달 초에 그 달 치 날짜를 한 번에 채우는 식으로 묶으면 한 달에 한 번, 몇 분짜리 세팅 의식이 된다. 문제는 이 의식을 열두 번 반복할 규칙성이 나에게 있는가다. 만년다이어리는 달력의 유지비를 사용자에게 넘긴 구조라서, 세팅이 밀리는 순간 다이어리가 아니라 그냥 줄 쳐진 노트에 가까워진다.
더 조용한 비용도 있다. 요일 맞추기다. 날짜인쇄형에서 7월 23일이 목요일 칸에 있는 것은 공장이 검증해 준 사실이다. 만년형에서는 그 정합이 매번 내 책임이고, 한 칸 밀려 쓰면 그 주의 약속 전체가 하루씩 어긋난다. 지우개로 지울 수 있는 실수지만 발견은 대개 주 중반쯤, 약속 하나가 꼬인 뒤에 난다.
날짜인쇄형이 나은 경우: 기록이 끊기지 않는 사람
날짜인쇄형의 본질은 대행이다. 달력을 만드는 노동과 요일을 맞추는 검증을 공장이 미리 끝내놓아서, 사는 날 바로 쓰기 시작할 수 있다. 오늘 펼칠 페이지가 이미 정해져 있다는 것도 은근한 장점이다. 페이지를 스스로 만들어야 하는 양식에서는 오늘 지면을 안 만들면 계획도 없던 일이 되는데, 인쇄형에는 그 도주로가 없다.
여기에 역설이 하나 있다. 만년다이어리의 유연성은 기록이 끊기는 사람을 위한 보험이다. 1월부터 12월까지 거의 매주 쓰는 사람이라면 그 보험금을 탈 일이 없다. 남는 것은 보험료뿐이고, 그 보험료가 위에서 센 730번의 날짜 쓰기다. 꾸준히 쓰는 사람일수록 만년형의 장점은 줄고 비용만 남는다. 유연성은 쉬는 사람의 재산이지, 매일 쓰는 사람에게는 그냥 요금이다.
어떤 다이어리를 살까: 지난 다이어리의 공백이 답이다
기준은 취향이 아니라 이력이다. 작년 다이어리를 펼쳐 빈 구간을 보면 된다. 몇 주씩 끊긴 자리가 있고 그 공백 때문에 복귀가 늦어진 기억이 있다면 만년다이어리가 맞다. 연중 아무 때나 다시 시작할 수 있고, 끊긴 자리가 지면에 남지 않는다. 반대로 공백이 거의 없는 사람, 특히 학기나 연 단위 목표를 다이어리로 관리하는 사람은 날짜인쇄형이 낫다. 유연성 보험료를 낼 이유가 없다.
중간이 필요하면 제3의 길도 있다. 속지를 갈아 끼우는 6공 바인더는 필요한 달의 날짜인쇄 속지만 사서 꽂는 방식이라, 인쇄된 달력과 시작 시점의 자유를 어느 정도 겸한다. 다만 속지 규격이라는 새 공부가 하나 생기는데, 그 이야기는 분량이 따로 필요해서 다음 글로 미룬다.
7월의 장바구니는 결국 만년다이어리로 결제됐다. 날짜 기입 횟수까지 세어놓고도 산 이유는 간단하다. 내 작년 다이어리에는 공백이 세 군데 있었다. 계산은 계산이고, 데이터가 그렇게 말하면 따라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