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인장의 책상

잉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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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을 쏟고 알게 된 것, 염료 잉크와 안료 잉크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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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상 위에 물을 쏟았다. 수습하고 보니 피해가 이상하게 편파적이었다. 다이어리의 볼펜 글씨는 멀쩡한데, 만년필로 쓴 페이지는 파랗게 번져서 졸지에 수채화가 되어 있었다. 같은 잉크라는 이름을 쓰는데 왜 하나는 버티고 하나는 흘러내리는가. 새벽까지 잉크 조성 자료를 읽고 나서야 알게 됐다. 물 쏟은 날 밤에 할 일치고는 좀 뜬금없었지만, 잉크의 세계는 색이 아니라 색을 붙잡아두는 방식으로 나뉜다는 사실 하나는 확실히 건졌다. 염료 잉크, 색이 물에 녹아 있다 만년필 잉크의 기본값은 염료 잉크다. 색 분자가 물에 완전히 녹아든 상태로, 설탕물처럼 입자가 없는 균일한 용액이다. 이 구조의 장점은 만년필이라는 기계와의 궁합이다. 입자가 없으니 가느다란 잉크 길을 막을 일이 없고, 발색이 맑고 선명하며, 색 배합이 자유로워서 잉크 색 놀이의 대부분이 여기서 일어난다. 대가는 명확하다. 물에 녹아 있던 색은 물을 다시 만나면 도로 녹아버린다. 내 다이어리에서 벌어진 일이 정확히 이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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볼펜은 왜 굳는가, 그리고 살릴 수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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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랍을 정리하다가 볼펜을 아홉 자루 발견했다. 시필을 해보니 네 자루가 안 나왔다. 버리려고 모아 쥐는데 손이 멈췄다. 잉크가 절반 넘게 남은 게 훤히 보이는데, 이것들은 대체 왜 침묵하는가. 버리는 일은 자연스럽게 미뤄졌고, 굳은 볼펜의 사인을 규명하는 일이 대신 시작됐다. 이런 식으로 청소가 조사로 바뀌는 게 벌써 몇 번째인지 모르겠다. 굳는 경로는 하나가 아니다 공개 자료를 종합하면 안 나오는 볼펜의 사인은 크게 세 가지다. 첫 번째는 용제의 증발이다. 유성 잉크는 염료를 알코올 계열 용제에 녹인 것인데, 펜 끝 볼과 소켓 사이의 미세한 틈으로 용제가 아주 천천히 달아난다. 용제가 줄면 잉크 점도가 계속 올라가다가 결국 볼이 구르지 못하는 지경에 이른다. 뚜껑을 잃어버린 펜이 먼저 가는 이유가 여기 있다. 두 번째는 팁 표면의 건조 피막이다. 볼에 묻은 채 공기와 만난 잉크가 말라붙어서 마개 역할을 해버린다. 속은 멀쩡한데 입구만 막힌 상태라, 살릴 가능성이 가장 높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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젤펜과 유성볼펜의 필기감 차이, 잉크 점도로 설명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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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이어리를 사흘 밀리고 몰아 쓰는 밤이었다. 손에 잡히는 볼펜으로 첫 줄을 썼는데 종이를 긁는 느낌이 거슬려서 다른 펜으로 바꿨더니, 이번에는 미끄러지듯 나갔다. 둘 다 촉은 0.5mm였다. 같은 규격인데 경험이 다르다면 규격이 말해주지 않는 무언가가 있다는 뜻이고, 그런 걸 발견하면 이 책상에서는 하던 일이 멈춘다. 밀린 일기는 결국 다음 날로 넘어갔다. 우선순위가 이상하다는 자각은 있는데, 고칠 생각은 별로 없다. 0.5mm라는 숫자가 말해주지 않는 것 펜 포장의 0.5mm는 볼의 지름, 정확히는 선폭 규격이다. 필기감에 대한 정보가 아니다. 그 바깥에서 필기감을 쥐고 흔드는 변인이 있으니, 공개된 자료를 종합하면 대부분 잉크의 점도다. 점도, 자릿수가 다르다 제조사들이 공개한 스펙을 한 표에 모았다. 결국 스프레드시트를 열었다는 뜻이고, 여기까지 오면 이 조사는 끝을 보게 되어 있다. 재미있는 것은 숫자의 크기가 아니라 단위였다. 유성 잉크와 젤 잉크는 점도가 몇 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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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광펜은 왜 형광인가, 빛을 더하는 잉크의 원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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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장을 정리하다가 7년 전 수험서를 펼쳤다. 이상한 일이 벌어져 있었다. 볼펜 밑줄은 멀쩡한데 형광펜 자국만 유령처럼 옅어져 있는 것이다. 같은 페이지에서 하나는 살아남고 하나는 증발했다면, 두 잉크는 애초에 다른 원리로 살았다는 얘기가 된다. 책 정리는 그 자리에서 중단됐다. 궁금한 것이 생기면 하던 일이 멈추는 체질이라 어쩔 수 없다. 미리 말해두면, 형광펜이 눈에 띄는 이유와 형광펜이 사라지는 이유는 같은 원리에서 나온다. 이 글은 그 원리 하나를 따라가는 이야기다. 형광은 반사가 아니라 재방출이다 일반 잉크의 색은 뺄셈으로 만들어진다. 종이에 닿은 빛 가운데 일부 파장을 흡수하고 나머지를 돌려보내는 방식이라, 빨간 잉크는 빨강 이외의 빛을 삼켜서 빨갛게 보인다. 당연히 들어온 빛보다 많은 빛이 나갈 수는 없다. 형광 염료는 여기에 덧셈을 얹는다. 사람 눈에 보이지 않는 자외선을 흡수한 뒤, 그 에너지를 눈에 보이는 파장으로 바꿔서 다시 내보내는 것이다. 주변 종이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