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인장의 책상

만년필

필기구

만년필 캡 밀봉 구조, 나사식과 스냅식은 뭐가 다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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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여행 가방에 넣어 뒀던 만년필을 꺼내 첫 줄을 그었더니 잉크가 뚝뚝 끊겼다. 분명 캡을 끝까지 눌러 닫아 뒀는데도 이 모양이었다. 볼펜이었으면 새로 사면 그만인데, 만년필은 닙을 씻어야 하나 컨버터를 다시 채워야 하나 머릿속만 복잡해졌다. 캡을 닫아도 닙이 마르는 이유는 캡의 밀봉 구조 자체에 있다. 나사를 돌려 잠그는 캡과 눌러서 딸깍 닫는 캡은 밀폐력이 다르고, 그 안에 이너캡이 따로 있는지도 다르다. 그래서 밤 늦게 특허 문서까지 뒤졌다(원래는 캡 제대로 닫는 법만 확인하려던 것이었다). 어떤 구조가 왜 덜 마르게 만드는지 정리했다. 만년필 캡, 밀봉이 안 되면 왜 닙이 마르나 닙이 마르는 건 잉크 속 용매 성분이 증발하기 때문인데, 이 증발 속도를 좌우하는 게 캡 내부의 밀폐 정도다. 대부분의 만년필은 캡 안쪽에 있는 턱(숄더)이 펜 몸통(섹션) 끝에 맞닿으면서 닙 주변 공간을 막는 방식으로 밀봉한다. 별도 장치 없이 두 부품이 맞닿는 접촉면 하나가 밀봉의 전부인

노트·다이어리

번짐 없는 노트 찾는 법, 코팅 여부가 잉크 반응을 바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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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노트를 뜯어서 젤펜을 올렸더니 잉크 선 가장자리가 실처럼 갈라졌다. 지난 노트와 같은 가격대인데 이게 왜 이러지. 포장을 확인하니 80gsm. 지난 노트도 80gsm이었다. 무게가 같으면 같아야 하는 게 아닌가. 그렇지 않다. 평량은 종이 무게만 나타낸다. 표면 처리는 별도다. 이 글이 답하는 질문은 하나다: 같은 평량의 노트인데 번짐이 다른 이유가 뭔가. 퍼짐과 번짐, 두 현상은 원인이 다르다 번짐이라고 묶어서 부르지만 실제로는 두 현상이 따로 존재한다. 퍼짐(feathering)은 잉크 선 가장자리가 갈라지는 것이고, 번짐(bleed-through)은 잉크가 종이를 뚫고 뒤면까지 나타나는 것이다. 퍼짐은 표면에서 시작한다. 잉크가 종이 섬유에 닿는 순간 모세관 작용으로 섬유를 타고 옆으로 번진다. 섬유 배열이 불규칙할수록, 표면 처리가 부족할수록 퍼짐이 커진다. 번짐은 깊이의 문제다. 잉크가 섬유 사이 틈새를 따라 아래로 침투해 반대면까지 스민다. 평량이 낮거나 섬유

필기구

만년필 잉크 병 바닥 설계, 컨버터 충전 효율과 어떤 관계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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잉크가 4분의 1쯤 남은 시점에서 컨버터를 아무리 돌려도 공기만 들어왔다. 병 바닥에 잉크가 분명히 남아 있는데 닙이 거기까지 닿질 않아서다. 이 경험을 한 번이라도 해봤다면, 잉크 병 바닥이 단순한 디자인 결정이 아닐 수 있다는 의심을 품게 된다. 실제로 그렇다. 잉크 병의 형태가 제조사마다 다른 데는 이유가 있다. 이 글은 만년필 잉크 병의 주요 바닥 구조 4가지를 비교해, 잔량이 줄었을 때 컨버터 충전 효율이 어떻게 달라지는지 구조 측면에서 정리한다. 컨버터로 잉크를 빨아올리는 원리 만년필 컨버터는 음압(負壓, negative pressure)으로 잉크를 끌어올린다. 피스톤형 컨버터는 노브를 돌려 내부 피스톤이 위로 당겨지면 챔버가 팽창하고 진공 상태가 되면서, 닙을 통해 잉크가 빨려 올라온다. 스퀴즈형은 몸통을 눌렀다 놓으면 팽창과 수축이 일어나며 같은 효과를 낸다. 여기서 병 형태가 중요해진다. 충전이 작동하려면 닙 끝이 잉크에 충분히 잠겨 있어야 한다. 닙이 잉크

필기구

만년필 세척 주기와 방법: 잉크 굳음을 막는 원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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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주를 서랍에 두었다가 꺼낸 만년필이 글씨를 안 쓰던 날이 있었다. 캡을 열고 종이에 대봤는데 아무것도 안 나왔다. 가볍게 흔들고, 꾹꾹 눌러봐도 헛걸음. 잉크는 분명 들어 있었는데. 그때 처음으로 '만년필도 세척이 필요하다'는 말이 실감으로 들어왔다. 왜 굳는지, 어떻게 막는지를 정리해봤다. 만년필 잉크가 굳는 원인 세 가지 잉크 굳음의 원인은 크게 세 가지로 나뉘고, 잉크 종류마다 다른 경로로 굳는다. 첫 번째는 수분 증발이다. 대부분의 만년필 잉크는 물을 기반으로 한다. 캡을 닫아두면 완전히 밀폐된 것처럼 보이지만, 시간이 지나면 미량의 수분이 빠져나간다. 수분이 줄면 잉크 속 염료나 안료가 농축되고, 피드 채널 내부에서 점도가 높아진 잉크가 표면부터 굳기 시작한다. 수용성 잉크 전반에 해당하는 경로다. 두 번째는 철분 잉크(iron gall ink)의 화학 반응이다. 철분 잉크에는 갈잉산(gallic acid, 오크 껍질에서 추출)과 황산철(ferrous sulf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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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년필 피드 구조: 잉크가 일정하게 나오는 원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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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씨를 쓰다가 잉크가 갑자기 끊겼다. 종이에 눌러도, 뚜껑을 잠갔다 열어도 반응이 없다가 어느 순간 다시 흐르기 시작한다. 그 과정이 반복되고 나서야 만년필 피드라는 단어를 처음 찾아봤다. 한 번이면 우연인데 두 번이면 원인을 파야 한다. 만년필에서 잉크가 일정하게 나오는 것은 저절로 되는 일이 아니다. 잉크를 닙(펜촉) 끝까지 공급하고, 빠져나간 잉크만큼 공기를 채워주고, 온도 변화나 필기 속도 변화에도 흐름을 유지하는 기능이 모두 피드(feed) 하나에 들어 있다. 이 글은 피드 구조가 어떻게 그 역할을 하는지, 소재 차이가 실제 흐름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를 분석한다. 만년필 피드란 무엇인가 피드는 닙 바로 아래에 딱 붙어 있는 부품이다. 잉크 저장소(컨버터나 카트리지)와 닙 끝 사이를 연결하는 통로 역할을 한다. 닙 뒤쪽을 보면 검은 납작한 판처럼 붙어 있는 것이 피드다. 대부분 검은색이라 눈에 잘 안 띄지만, 만년필을 분해하면 닙과 비슷한 크기의 별도 부품으로 따로 빠

필기구

만년필이 종이를 가리는 이유, 페더링·번짐·비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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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의실에서 만년필을 꺼냈다가 조용히 다시 넣었다. 회사 복사지 위에서 내 글씨가 수염 난 얼룩으로 변하는 걸 봤기 때문이다. 같은 펜이 집의 노트에서는 흠잡을 데 없이 매끄럽게 구르는데, 종이가 바뀌자 완전히 다른 도구가 되어버렸다. 만년필이 종이를 가리는 이유부터 말하면, 잉크를 다른 필기구보다 훨씬 많이 쏟아내는 도구라서다. 그래서 종이의 약점이 페더링, 번짐, 비침이라는 세 가지 문제로 그대로 드러난다. 이 글은 세 현상의 원인을 나눠서 정리하고, 만년필에 맞는 종이를 확인하는 법과 안 맞는 종이에서 버티는 법까지 다룬다. 만년필 잉크가 유독 많이 나오는 이유 출발점은 잉크 방출량이다. 볼펜의 유성 잉크가 끈적한 잉크를 볼로 조금씩 굴려 바르는 방식이라면, 만년필은 묽은 수성 잉크를 모세관 현상으로 흘려보내는 방식이다. 단위 길이당 종이에 도달하는 액체의 양이 필기구 중에서도 최상위권이다. 그래서 볼펜이 아무 종이에서나 무난한 반면, 만년필은 종이의 모든 약점을 사정없

필기구

컨버터와 카트리지, 몇 번째 리필부터 이득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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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년필 잉크가 떨어졌다는 친구의 두 번째 상담이 왔다. 첫 상담은 닙이었는데, 이번 질문은 리필이다. 카트리지를 계속 사는 게 나을지, 아니면 컨버터라는 걸 사야 할지. 계산 결과부터 말하면, 카트리지 20~30개를 쓸 만큼 필기량이 있으면 컨버터와 병잉크 쪽이 이득이다. 매일 쓰는 펜이면 1년 안쪽에 도달하는 지점이고, 가끔 꺼내는 펜이면 몇 년이 걸린다. 이 글은 그 계산 과정과, 가격 말고 따져야 할 조건들을 정리한다. 취향 문제처럼 보이지만 절반은 계산 문제라서, 계산부터 하고 취향을 얹는 순서가 맞다. 결국 또 시트를 열었다. 만년필 컨버터와 카트리지 구조 차이 카트리지는 일회용 잉크 탱크, 컨버터는 재사용 잉크 탱크다. 꽂는 자리는 같다. 카트리지는 잉크가 담긴 일회용 플라스틱 통이다. 펜에 꽂으면 내부 침이 막을 뚫으면서 잉크가 흐르기 시작한다. 다 쓰면 버리고 새것을 꽂으면 그만이라, 잉크를 직접 만질 일이 없다. 컨버터는 같은 자리에 꽂는 재사용 탱크다. 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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염료 잉크와 안료 잉크 차이, 만년필 잉크 고르는 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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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상 위에 물을 쏟았다. 수습하고 보니 피해가 이상하게 편파적이었다. 다이어리의 볼펜 글씨는 멀쩡한데, 만년필로 쓴 페이지는 파랗게 번져서 졸지에 수채화가 되어 있었다. 같은 잉크라는 이름을 쓰는데 왜 하나는 버티고 하나는 흘러내리는가. 새벽까지 잉크 조성 자료를 읽고 얻은 답부터 말하면, 잉크는 색을 붙잡아두는 방식에 따라 염료 잉크, 안료 잉크, 철갈 잉크로 나뉘고 물에 버티는 힘과 관리 부담이 각각 다르다. 이 글은 세 종류의 차이와 용도별로 고르는 법을 정리한다. 물 쏟은 날 밤에 할 일치고는 좀 뜬금없었지만, 건진 것은 확실했다. 염료 잉크란, 색이 물에 녹아 있는 잉크 만년필 잉크의 기본값은 염료 잉크다. 색 분자가 물에 완전히 녹아든 상태로, 설탕물처럼 입자가 없는 균일한 용액이다. 이 구조의 장점은 만년필이라는 기계와의 궁합이다. 입자가 없으니 가느다란 잉크 길을 막을 일이 없고, 발색이 맑고 선명하며, 색 배합이 자유로워서 잉크 색 놀이의 대부분이 여기서 일

필기구

만년필 닙 EF·F·M, 같은 F인데 굵기가 다른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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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년필에 입문하겠다는 친구에게 연락이 왔다. 질문은 단 한 줄이었다. EF랑 F 중에 뭐 사. 간단히 답해주려다 알게 된 결론부터 말하면, 만년필 닙 굵기 표기는 국제 규격이 아니다. 같은 F가 브랜드에 따라 다른 굵기를 가리킨다. 이 글은 그 이유와 함께 일본 닙과 서양 닙의 차이, 한글 필기에 맞는 닙 고르는 법을 정리한 것이다. 친구에게 답장을 보낸 건 그날 밤 늦게였고, 반응은 "그냥 아무거나 살걸"이었지만. 만년필 닙 표기가 브랜드마다 다른 이유 EF, F, M, B라는 표기는 ISO 같은 표준이 정한 수치가 아니라, 각 제조사가 자기 기준으로 붙이는 상대 등급이다. 그래서 "F 닙 = 몇 mm"라는 절대 환산표는 존재하지 않고, 공개된 브랜드별 자료를 모으면 같은 F라도 선폭이 대략 0.1mm 이상 벌어진다. 볼펜의 0.5mm 표기가 볼 지름이라는 물리량을 가리키는 것과는 완전히 대비되는 지점이다. 만년필의 세계는 숫자 대신 문자를, 규격 대신 관례를 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