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의 중에 메모하다가 심이 다 들어가서 뚜껑을 눌렀다. 손을 완전히 새로 고쳐 잡아야 했고, 그 잠깐 사이에 발표자가 넘긴 슬라이드 한 장을 놓쳤다. 별일도 아닌데 그날따라 유난히 거슬렸다. 그래서 찾아봤다. 왜 대부분의 샤프는 심을 꺼내려면 손을 놓아야 하는가.

답은 이미 있었다. 사이드노크 샤프다. 몸통 옆을 누르면 그립을 놓지 않고도 심이 나온다. 그런데 왜 다들 상단노크만 쓰는가. 궁금증은 여기서 시작됐다.

배럴 끝에 흰색 노브가 달린 은색 샤프펜슬, 클립과 HB 각인이 보이는 클로즈업
대부분의 샤프는 이렇게 끝을 눌러 심을 낸다

사이드노크 샤프 원리, 상단노크와 뭐가 다른가

둘의 노크 메커니즘 자체는 같다. 심을 물고 밀어내는 클러치(척) 구조는 노크 위치와 무관하게 똑같이 작동한다. 한국어 위키백과 설명대로 클러치는 "메커니즘 맨 앞에 있으며 샤프심이 일정 길이만큼 배출하고 잡아주는 역할"을 한다. 다른 건 이 클러치를 밀어주는 버튼의 자리뿐이다. 상단노크는 배럴 맨 끝 노브를 축 방향으로 누르고, 사이드노크는 그립 근처 옆면 레버를 누른다.

문제는 힘의 방향이다. 상단노크는 손가락 힘이 클러치가 움직이는 방향과 일직선이라 손실이 적다. 사이드노크는 옆에서 누른 힘을 레버가 축 방향으로 꺾어서 전달해야 한다. 일본 문구 전문 블로그 큐프알씨는 두 방식을 실사용 비교하면서 "물리적으로 힘점이 변하면서 상단노크보다 다소 더 많은 힘이 필요하다"고 정리한다. 방향을 꺾는 만큼 그 과정에서 힘이 새니, 같은 양의 심을 내보내려면 손끝에 더 힘을 줘야 하는 구조다.

상단노크와 사이드노크의 힘 전달 방향을 비교한 단면 모식도
힘이 꺾이는 만큼 손끝에 더 실린다 (모식도)

사이드노크 샤프, 실제로 어떤 제품이 있었나

사이드노크는 최근 나온 신기술이 아니다. 큐프알씨에 따르면 최초의 사이드노크식으로 추정되는 제품은 1973~1976년 미쓰비시연필이 낸 펙커(PECKER)로, 당시 광고에서는 "요코타(横打) 샤프펜슬"이라 불렸다. 반백 년 전에 이미 있던 구조라는 뜻이다.

지금도 몇몇 회사가 이 방식을 이어간다. 펜텔의 피아니시모와 젯클릭, 톰보우의 스피노, 파이롯트의 클리커가 대표적이다. 대부분 200~500엔대의 가벼운 필기구고, 그립을 쥔 채 엄지나 검지로 옆 레버를 눌러 쓰는 구조는 동일하다. 그립을 놓지 않아도 된다는 점은 미국 특허 문서에서도 사이드노크식의 핵심 설계 목적으로 명시한다. "그립을 잡은 채 쓸 수 있어 잡는 것을 다시 할 필요가 없다"는 이 한 문장이 사이드노크가 반세기 동안 완전히 사라지지 않은 이유다.

사이드노크가 무조건 편하다는 오해

여기서 흔한 오해가 하나 있다. 사이드노크가 상단노크보다 무조건 편하다는 생각이다. 실제로는 조건부다. 필기 중 심이 자주 부러져 노크를 자주 눌러야 하는 손이면, 그립을 유지할 수 있는 사이드노크가 확실히 이득이다. 손을 다시 고쳐 잡는 그 짧은 동작이 누적되면 필기 중 손이 피곤해지는 요인 중 하나가 되기도 한다. 반대로 노크를 어쩌다 한 번만 누르는 손이면, 힘이 더 드는 구조가 오히려 손해다.

인지도 문제도 있다. 큐프알씨는 "다른 사람에게 빌려주면 열 명 중 아홉 명이 머리부분을 노킹하려 한다"고 적었다(웃을 일이 아니다, 나도 그 아홉 명 중 하나였을 것이다). 상단노크가 워낙 표준이라 사이드노크 샤프를 처음 쥔 사람은 옆에 레버가 있다는 걸 모르고 헤맨다. 혼자 쓰는 필기구면 상관없지만, 회의실에서 남에게 자주 빌려주는 손이라면 이 학습 비용도 계산에 넣어야 한다.

그래서 어떤 샤프를 고르나

결론은 손의 노크 빈도에 달렸다. 필기량이 많아 심을 자주 채워야 하는 손이면 사이드노크가 실제로 손의 리듬을 아껴준다. 노크를 드물게 쓰거나 남에게 자주 빌려주는 손이면 상단노크 쪽이 여전히 합리적이다. 두 방식 다 클러치는 똑같이 작동하니 필기감 자체가 달라지는 건 아니다. 달라지는 건 심을 채우는 그 짧은 순간, 손이 그립을 놓느냐 마느냐뿐이다.

이 글을 쓰다가 알았는데 오십 년 전 광고 문구를 뒤지는 데만 삼십 분이 걸렸다. 심 하나 채우는 동작 때문에 이렇게까지 파고들 일인가 싶다가도, 노크 버튼 위치 하나가 손의 리듬을 바꾼다는 게 재미있어서 멈추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