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샤프심 글을 쓰면서 심은 1mm 안팎만 내놓으라고 적었다. 쓰고 나니 궁금해졌다. 노크를 한 번 눌렀을 때 나오는 심의 길이는 누가 정했나. 내 엄지는 매번 같은 깊이로 누르지 않는데 심은 매번 비슷하게 나온다. 우연일 리가 없다.
답부터 말하면 그 길이는 샤프 내부의 척이라는 부품이 움직이는 거리로, 설계 단계에서 고정된 값이다. 이 글은 노크 한 번에 벌어지는 일을 순서대로 뜯어보고, 그 기본 구조 위에 심 보호 기능을 얹은 세 계열, 쿠루토가와 오렌즈와 델가드가 각각 무엇을 해결하는지 공개 자료를 종합해 비교한다. 참고로 이 궁금증은 밤 11시에 시작해서 제조사 특허 해설 글을 세 개 읽고 끝났다. 예상 소요 시간을 늘 넘기는 것도 이제는 통계라고 부를 만하다.
샤프 노크의 기본 구조: 척이 심을 잡았다 놓는다
노크식 샤프의 심장은 척이다. 심을 물고 있는 두세 갈래의 작은 조(jaw)가 링 안에 앉아 있는 구조로, 평소에는 링이 조를 조여서 심을 단단히 물고 있다. 노크를 누르면 척이 앞으로 밀리면서 링을 벗어나고, 조가 벌어지면서 물고 있던 심을 놓는다. 이때 심이 앞으로 나간다. 손을 떼면 스프링이 척을 제자리로 당기고, 조는 다시 조여져 심을 문다.
여기서 한 가지 의문이 남는다. 조가 심을 놓는 순간, 심은 왜 아래로 빠져 버리지 않는가. 촉 안쪽에 리테이너라고 부르는 작은 고무 부품이 심을 가볍게 붙잡고 있기 때문이다. 척이 놓는 순간에도 심이 흘러내리거나 되밀리지 않게 잡아 두는 문지기다. 노크 소리 한 번에 물고, 놓고, 다시 무는 세 박자가 지나가는 셈이고, 흔들이 샤프는 이 버튼을 관성 추가 대신 눌러 주는 변형일 뿐 원리는 같다.
노크 한 번에 나오는 심 길이는 설계값이다
심이 나오는 길이는 척이 전진하는 거리와 같고, 그 거리는 부품 치수로 고정돼 있다. 엄지로 얕게 누르든 깊게 누르든, 척이 링을 벗어나 끝까지 갔다 오는 행정은 같기 때문에 배출량이 일정하다. 모델마다 이 값은 다르게 설계되는데, 제도용은 짧게, 필기용은 그보다 여유 있게 잡는 경향이 있다. 어제 글에서 심을 짧게 내놓으라고 한 것과 같은 이유다. 길게 나오는 만큼 부러질 팔도 길어진다. 심 굵기와 부러짐의 산수는 샤프심 굵기 글에 정리해 뒀다.
그러니까 노크 횟수는 사용자에게 열려 있지만 1회분의 양은 설계자가 정해 놓은 값이다. 내 엄지가 아니라 척의 행정이 정한다는 것, 그 사실 하나로 밤의 검색은 절반쯤 보상을 받았다.
심 보호 기능 비교: 쿠루토가, 오렌즈, 델가드
기본 노크 구조는 어느 회사나 같다. 차이는 그 위에 얹은 보호 장치에서 갈리고, 세 대표 계열이 겨냥하는 문제가 각각 다르다. 세 제조사의 공개 자료를 한 표로 모으면 이렇다.
| 계열 (제조사) | 장치 | 작동 방식 | 해결하는 문제 |
|---|---|---|---|
| 쿠루토가 (uni) | 심 자동 회전 | 펜을 들 때마다 내부 기어가 심을 조금씩 돌린다 | 심 끝이 한쪽만 닳아 납작해지는 편마모 |
| 오렌즈 (펜텔) | 슬라이딩 슬리브 | 금속 관이 심을 감싼 채 닳는 만큼 따라 들어간다 | 0.2, 0.3mm 극세심의 부러짐 |
| 델가드 (제브라) | 필압 흡수 가드 | 힘이 실리면 스프링이 심을 안으로 피신시킨다 | 꾹 눌러쓰는 필압에 의한 부러짐 |
쿠루토가의 회전은 수치가 공개돼 있다. 표준 모델 기준으로 펜을 종이에서 뗄 때마다 심이 9도씩 돌아서, 마흔 획이면 한 바퀴가 된다. 심이 늘 같은 면으로 닳으면 끝이 끌처럼 납작해져 글씨가 점점 굵어지는데, 돌려 가며 쓰면 원뿔 모양이 유지된다. 글씨를 많이 쓰는 사람일수록 효과가 누적되는 구조다.
오렌즈는 반대로 심을 아예 내놓지 않는 쪽을 택했다. 슬리브가 심을 끝까지 감싸고, 종이에 닿는 것은 슬리브 끝에서 아주 살짝 나온 심뿐이다. 심이 닳으면 슬리브가 그만큼 미끄러져 들어간다. 부러질 팔 자체를 없앤 설계라, 0.2mm라는 비현실적인 굵기가 상품이 될 수 있었다. 델가드는 문제를 필압으로 정의했다. 세로로 누르면 심이 스프링을 타고 안으로 들어가고, 비스듬히 눌리면 가드가 나와 심 뿌리를 감싼다. 부러뜨리는 힘이 감지되는 순간에만 개입하는 방식이다.
어떤 샤프를 고르나: 내 문제부터 정한다
표를 뒤집으면 선택 기준이 된다. 심이 자주 부러지는 게 고민이고 그 원인이 필압이면 델가드, 가는 심을 쓰고 싶어서라면 오렌즈가 정답에 가깝다. 부러짐보다 글씨 굵기가 들쭉날쭉한 게 거슬리면 쿠루토가 쪽이다. 셋은 경쟁 제품이라기보다 서로 다른 질문에 대한 답에 가깝다.
그리고 아무 불만이 없다면 표준 노크로 충분하다. 심을 짧게 내놓고 필압이 온건한 사람에게 보호 장치는 있어도 작동할 일이 드문 보험이다. 나는 이 결론에 이르러서야 장바구니에 넣어 둔 샤프 두 자루를 뺐다. 검색 세 시간의 결론이 "지금 것으로 충분하다"라니, 손해 같지만 안 쓴 돈을 생각하면 흑자로 치기로 했다. 볼펜 볼의 구조를 파던 날과 똑같은 결말인 것은 우연이 아닐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