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에 밀린 가계부를 몰아서 맞추는 중이었다. 숫자는 틀리면 지워야 하니까 볼펜 대신 샤프를 잡았는데, 세 줄에 한 번꼴로 심이 톡톡 부러졌다. 부러진 심 토막이 종이 위를 굴러다니는 걸 보면서 생각했다. 이게 내 손 탓인가, 심 탓인가, 아니면 굵기 탓인가.

답부터 말하면 셋 다 관련이 있는데, 가장 큰 변수는 심 굵기와 심을 빼 둔 길이다. 이 글은 샤프심이 무엇으로 만들어지는지, 0.3과 0.5와 0.7이라는 숫자가 실제로 무엇을 바꾸는지, 심이 부러지는 원인과 안 부러지게 고르는 기준까지 정리한다. 가계부 정산은 그날 못 끝냈다. 대신 샤프심 규격을 정리한 표가 하나 생겼는데, 이 교환이 남는 장사였는지는 여전히 계산 중이다.

샤프심은 무엇으로 만드나: 흑연과 폴리머

샤프심은 흑연 가루를 폴리머(플라스틱 계열 고분자) 결합재로 굳혀 구운 심이다. 나무 연필의 심이 흑연을 점토로 굳히는 것과 재료부터 다르다. 이 폴리머 배합은 1962년 펜텔이 0.5mm와 0.7mm 심을 내놓으면서 도입한 방식으로, 점토 심으로는 불가능했던 가는 지름에서도 심이 버틸 만큼 강도를 끌어올렸다. 지금 문구점의 가는 샤프심은 전부 이 계보 위에 있다. 0.5mm라는 규격이 당연해 보이지만, 폴리머 이전에는 그 굵기로 깎아 만든 심이 필압을 견디지 못했다는 뜻이기도 하다.

경도 표기는 연필과 같은 문법을 쓴다. H 쪽으로 갈수록 단단하고 연하게, B 쪽으로 갈수록 무르고 진하게 나온다. 흑연과 결합재의 비율이 그 차이를 만든다는 원리도 같은데, 자세한 이야기는 연필 심 경도 글에서 다뤘다. 샤프심에서 다른 점은 폭이다. 나무 연필이 10H부터 12B까지 넓게 퍼지는 동안, 샤프심은 0.5mm 기준으로 4H에서 4B 안팎까지만 나온다. 가는 심을 아주 무르게 만들면 쓰기도 전에 부러지니, 물리적으로 성립하는 구간만 남긴 결과다.

샤프심 0.3, 0.5, 0.7mm의 단면을 실제 비율의 원으로 나란히 놓고 단면적 배율을 적은 모식도
숫자는 0.2씩 늘지만 단면적은 배로 는다 (모식도)

샤프심 굵기별 차이: 0.3, 0.5, 0.7

숫자는 심의 지름이다. 그런데 부러짐과 필기감을 정하는 것은 지름보다 단면적이고, 단면적은 지름의 제곱으로 커진다. 0.5를 기준으로 놓으면 0.3의 단면적은 그 36%밖에 안 되고, 0.7은 약 두 배다. 표기는 0.2씩 얌전하게 늘어나는데 실제 몸집은 배 단위로 뛰는 것이다. 이 산수 하나로 굵기별 성격이 거의 설명된다.

굵기 단면적 (0.5 기준) 성격 어울리는 용도
0.3mm 36% 선이 가늘고 또렷, 부러짐에 민감 제도, 작은 글씨, 수첩
0.5mm 기준 균형형, 심 종류가 가장 많다 일반 필기, 시험
0.7mm 약 2배 잘 안 부러지고 덜 닳는다, 선이 굵다 필압 센 손, 빠른 메모
0.9mm~ 3배 이상 연필에 가까운 감각 어린이 글씨 연습, 스케치

0.5가 표준이 된 이유도 이 표 안에 있다. 정밀함과 강도의 절충점이 그 근처이기 때문이다. 심 종류와 경도 선택지가 가장 많은 것도, 어느 문구점에나 리필이 있는 것도 0.5다. 표준이라서 좋은 게 아니라, 좋아서 표준이 됐고 표준이라서 더 편해진 순환이다.

샤프심이 부러지는 진짜 이유

부러짐의 물리는 지렛대다. 심은 슬리브(촉 끝의 금속 관)에서 나온 만큼만 힘을 받는데, 같은 필압이라도 심을 길게 빼 두면 뿌리 쪽에 걸리는 부담이 길이에 비례해서 커진다. 심을 아끼려고 길게 빼서 쓰는 습관이 오히려 심을 더 잃게 만드는 구조다(아낀다는 행동이 낭비를 만드는 사례를 나는 이걸로 하나 더 추가했다). 노크는 두 번이 아니라 한 번, 심은 슬리브 밖으로 1mm 안팎만 내놓는 게 물리적으로 옳은 사용법이다.

필압과 각도도 변수다. 꾹 눌러쓰는 손, 펜을 많이 눕혀 쓰는 손은 심의 옆면에 힘을 건다. 심은 세로로 누르는 힘보다 옆으로 미는 힘에 약해서, 같은 0.5라도 사람에 따라 부러짐 빈도가 몇 배로 갈린다. 진하게 쓰고 싶어서 누르는 경우라면 힘 대신 경도를 바꾸는 쪽이 맞다. HB에서 B나 2B로 내려가면 누르지 않아도 진해진다. 필압이 손 피로로 이어지는 이야기는 볼펜 그립과 피로도 글에서 다룬 것과 같은 줄기다.

심을 짧게 뺐을 때와 길게 뺐을 때 같은 필압이 심 뿌리에 만드는 부담 차이를 그린 지렛대 모식도
같은 힘도 심이 길면 뿌리에서 몇 배가 된다 (모식도)

흔한 오해도 하나 바로잡자. "0.3은 원래 계속 부러지는 심"이라는 말은 절반만 맞다. 단면적이 작으니 여유가 없는 것은 사실이지만, 짧게 빼고 세워 쓰면 0.3도 얌전히 버틴다. 반대로 길게 빼고 눌러쓰면 0.7도 부러진다. 심 탓을 하기 전에 확인할 것은 두 가지, 내민 길이와 필압이다.

흰 종이 위에 놓인 샤프펜슬, 촉 끝에 심이 짧게 나와 있다
심은 이 정도만 내놓는 게 물리적으로 옳다

그래서 어떤 굵기를 사나

필압이 세거나 글씨가 큰 손이면 0.7이다. 심 걱정 없이 눌러쓸 수 있고, 리필도 덜 자주 한다. 글씨가 작고 수첩이나 표 안에 쓰는 일이 많으면 0.3이 주는 또렷함이 값을 한다. 어느 쪽인지 모르겠으면 0.5다. 선택지가 가장 많아서, 심 경도를 바꿔 가며 자기 필압을 파악하기에도 표준 굵기가 유리하다.

반대로 지울 일이 거의 없는 사람에게는 이 고민 자체가 필요 없다. 샤프의 존재 이유는 지우개와 한 세트니까, 볼펜으로 끝나는 생활이라면 볼펜을 쓰면 된다. 나는 가계부 정산이라는 지울 일이 명확했으므로 심을 1mm만 내놓고 마저 맞췄다. 다음 궁금증은 이미 정해졌다. 노크 한 번에 심이 나오는 길이는 대체 누가 정하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