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랍 속 날짜 도장을 꺼내 서류에 찍다 보면, 같은 패드인데 찍히는 날이 다를 때가 있다. 어떤 날은 경계선이 선명한데, 어떤 날은 테두리가 번지고, 또 어떤 날은 잉크가 부족한 것처럼 흐릿하게 나온다. 누르는 힘 탓인가 종이 탓인가 생각하다가, 결국 패드 자체의 소재를 들여다보게 됐다. 당신 서랍 도장도 한 번쯤 이런 날이 있지 않았는지.

스탬프 패드는 크게 두 가지 소재로 나뉜다. 펠트(felt)와 폼(foam). 겉에서 보면 비슷한 두 소재는 잉크를 담고 내보내는 방식이 구조적으로 다르다. 그 차이가 찍힘의 선명도, 번짐, 그리고 패드 수명까지 결정한다.

녹색 잉크 스탬프 패드가 열린 모습
스탬프 패드 사진

펠트 패드와 폼 패드, 소재 구조가 어떻게 다른가

펠트는 양모나 합성 섬유를 열과 압력으로 눌러 굳힌 재료다. 실처럼 짜인 직물 구조가 아니라 섬유들이 뒤엉켜 압착된 상태여서, 내부에는 아주 작고 균일한 틈들이 촘촘하게 분포한다. 눈에는 보이지 않는 수준의 작은 틈들이 잉크를 붙잡아 두는 공간이 된다.

폼(foam)은 폴리우레탄 계열의 다공성 재료다. 구조의 핵심은 오픈셀(open-cell), 즉 기포들이 서로 연결된 스펀지 구조다. 스펀지를 물에 담갔다 꺼냈을 때 물이 순식간에 빨려 들어가는 것처럼, 폼도 잉크를 기포 안에 대량으로 담을 수 있다. 담을 수 있는 양이 많다는 것은, 반대로 도장이 닿을 때 한꺼번에 많이 나올 수도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요약하면 펠트는 작고 촘촘한 섬유 틈, 폼은 크고 연결된 기포다. 이 구조 차이 하나에서 이후의 모든 성능 차이가 출발한다.

펠트 패드와 폼 패드의 기공 구조 단면 비교 모식도
소재별 기공 구조 비교 모식도

잉크가 패드에서 나오는 원리

펠트의 좁은 틈은 모세관 현상을 활용한다. 모세관 현상이란 액체가 가는 관 속에서 중력을 거슬러 이동하는 현상으로, 관이 가늘수록 그 힘이 강하다. 펠트 내부의 좁은 섬유 틈은 잉크를 단단히 붙잡아 두고, 외부에서 압력이 가해질 때만 조금씩 밀어낸다. 세게 누르든 가볍게 누르든 한 번에 나오는 잉크 양이 비교적 일정하게 유지된다.

폼은 다르다. 기포가 크고 서로 연결되어 있어서, 도장이 패드에 닿는 순간 잉크가 기포 사이를 타고 빠르게 이동한다. 누르는 힘에 따라 나오는 잉크 양의 편차가 크다. 세게 누르면 많이 나오고, 가볍게 닿으면 조금 나온다. 이 민감도가 폼 패드의 결과를 다루기 까다롭게 만드는 원인이다.

만년필도 비슷한 원리로 잉크 공급량을 조절한다. 만년필 피드가 잉크를 일정하게 공급하는 원리도 채널 폭과 표면장력을 제어하는 구조다. 스탬프 패드의 기공 설계는 같은 물리 현상의 다른 응용이다.

찍힘 선명도와 번짐, 소재별로 어떤 차이가 나나

구조 차이는 찍힌 결과물에서 세 가지 차이로 나타난다.

선명도 차이가 가장 눈에 띈다. 펠트는 잉크가 조금씩 균일하게 배어 나와서 도장 테두리가 날카롭게 찍힌다. 잔 획이 많은 한자 도장이나 세밀한 디자인 스탬프에 유리하다. 폼은 한꺼번에 많은 잉크가 나올 경우 획 바깥으로 퍼지며 번짐이 생길 수 있다.

일관성도 다르다. 펠트는 누르는 힘 편차에 둔감하다. 같은 도장을 여러 사람이 번갈아 찍어도 결과가 비교적 고르게 나온다. 폼은 힘 차이에 민감해서 같은 사람도 날마다 다른 결과가 나올 수 있다. 사무 환경에서 여러 명이 공용으로 쓰는 날짜 도장이 대부분 펠트 패드 기반인 이유가 여기 있다.

수명도 차이가 있다. Avery의 소재별 패드 비교 자료에 따르면, 펠트 패드의 설계 수명은 약 15,000회, 폼 패드는 약 5,000회다. 섬유 구조가 기포 구조보다 반복 압착에 대한 복원력이 강하다. 폼은 반복 압축에서 기포가 점차 찌그러지며 회복력이 떨어지고, 결국 잉크 분배가 불균일해진다.

어떤 작업에 어떤 패드를 고르나

두 가지 기준으로 고를 수 있다. 도장의 복잡도와 사용 빈도다.

세밀한 인장, 한자 서명 도장, 날짜 도장처럼 획이 많거나 간격이 좁은 도장에는 펠트가 맞다. 찍는 사람이 달라도 결과가 일정하고 번짐이 적다. 빈번하게 사용하는 사무 환경이라면 수명도 길어 교체 주기가 늘어난다.

폼 패드는 획이 굵고 단순한 도장, 또는 크래프트·아트 스탬프처럼 면적이 넓고 발색을 풍성하게 채우고 싶은 작업에 어울린다. 잉크를 많이 담아 두기 때문에 초반 발색이 진하고 빠르다. 단, 누르는 힘을 의식적으로 일정하게 유지해야 결과가 고르게 나온다.

참고로 마이크로포어(micropore)라는 세 번째 소재도 있다. 펠트보다 기공이 훨씬 세밀하고 잉크 분배가 균일해, 하루 수백 번 이상 찍는 물류·접수 환경에 맞춰 약 20,000회 수명으로 설계된 소재다. 시판 스탬프 패드 제품 설명에서 "고성능", "장수명" 표기가 붙은 제품이 이 계열인 경우가 많다.

수정테이프와 수정액이 소재 구조에 따라 용도가 나뉘듯(수정테이프 vs 수정액 비교 참고), 스탬프 패드도 소재를 알고 나면 어디에 쓸지가 명확해진다. 다음에 패드를 새로 살 때 "펠트냐 폼이냐"를 살펴보게 될 것이다.

스탬프 패드를 들여다보기 시작하면 자연스럽게 잉크 자체로 넘어간다. 같은 패드에서 안료 잉크와 염료 잉크가 왜 다르게 행동하는지, 속건성 차이가 어디에서 오는지가 궁금해지는데, 그건 다음 글에서 따로 다루기로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