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랍 정리를 하다가 몇 달 전에 사둔 포스트잇 뭉치를 발견했다. 반가운 마음에 모니터 옆에 붙였는데 몇 시간 만에 스르륵 흘러내렸다. 당신 책상 서랍에도 이런 뭉치 하나쯤 있을 것이다. 포스트잇 뒷면에는 접착제가 표면 전체에 발린 게 아니라 마이크로구체라는 작은 구슬 모양 입자가 듬성듬성 붙어 있다. 이 구조가 반복해서 붙였다 뗄 수 있는 이유이자, 시간이 지나면 헐거워지는 이유이기도 하다.

포스트잇 접착제, 마이크로구체란 무엇인가
포스트잇 뒷면의 접착제는 액체 풀처럼 면 전체를 덮는 방식이 아니라, 지름 수십 마이크로미터(1마이크로미터는 1000분의 1밀리미터)짜리 작은 구슬, 즉 마이크로구체를 성기게 한 겹만 뿌려 놓은 방식이다. 제조사 특허 문서(WO2009041920A1) 실험값 기준으로 마이크로구체 지름은 2125마이크로미터가 흔하고, 최적 범위는 1050마이크로미터로 잡는다. 다른 접착제 특허(US4855170)는 10~125마이크로미터까지 범위를 넓게 잡기도 한다. 자료마다 이렇게 편차가 있는 걸 보면 제품별로 구체 크기를 다르게 튜닝하는 모양이다. 현미경으로 들여다보면 이 표면이 마치 농구공 가죽처럼 오돌토돌하다는 설명이 여러 자료에 공통으로 나온다.
이 기술을 처음 만든 사람은 3M의 화학자 스펜서 실버다. 1968년에 초강력 접착제를 개발하다가 우연히 이 저점착 재사용 접착제를 발견했는데, 정작 5년 동안 쓸 곳을 못 찾았다. 1974년 동료 아서 프라이가 찬송가책 책갈피가 자꾸 떨어지는 걸 보고 이 접착제를 메모지에 발라 보자고 제안하면서 지금의 포스트잇이 나왔다. 관련 특허는 1993년에야 등록됐다.
마이크로구체가 붙었다 떨어지는 원리
마이크로구체 하나하나는 표면에 살짝 눌렸다가 다시 둥글게 돌아오는 탄성체다. 이 눌림과 복원이 반복 부착의 핵심이다. 메모지를 표면에 대고 누르면 둥근 구체가 순간적으로 눌려 납작해지면서 접촉 면적이 커진다. 이때 반데르발스 힘, 즉 분자 사이의 아주 약한 인력이 늘어난 접촉면만큼 커져서 종이가 표면에 붙어 있게 된다. 손을 떼면 눌렸던 구체는 다시 둥근 모양으로 돌아오고, 접착제 자체는 표면에 거의 남지 않는다. 그래서 다음에 다른 자리에 붙여도 또 같은 과정이 반복된다.
포스트잇 점착력이 떨어지는 이유
새 포스트잇이 잘 붙다가 시간이 지나면 헐거워지는 건 접착제가 닳아서가 아니라 먼지가 쌓여서다. 붙였다 뗄 때마다 표면의 먼지와 이물질이 마이크로구체 표면에 조금씩 옮겨 붙는다. 구체 하나하나가 접촉할 수 있는 면적이 이 이물질만큼 줄어들고, 반데르발스 힘도 그만큼 약해진다. 서랍 속에서 몇 달 방치된 뭉치가 유난히 힘없이 떨어지는 것도 같은 이유로 설명된다. 꺼내 쓰기 전부터 공기 중 먼지에 계속 노출돼 있었을 테니(이 대목에서 서랍 속 먼지량까지 걱정하게 되는 건 직업병이다). 표면을 마른 천으로 닦고 붙이면 접착력이 다시 살아나는 것도 같은 원리로 설명된다: 이물질을 줄이면 남은 구체가 접촉할 수 있는 면적이 다시 늘어난다.
일반 테이프와 무엇이 다른가
포스트잇과 일반 접착테이프는 접착제를 바르는 방식 자체가 다르다. 포스트잇은 성긴 한 겹, 테이프는 빈틈없는 막이다. 박스 포장용 테이프나 문구용 테이프 같은 일반 압력감응접착제는 접착 성분을 표면 전체에 연속으로 코팅한다. 접촉 면적이 넓고 빈틈이 없어서 접착력이 강하고, 뗄 때 종이가 찢어지거나 자국이 남기 쉽다. 마이크로구체 방식은 반대다. 표면과 맞닿는 지점이 애초에 듬성듬성하니 접촉 면적 자체가 좁고, 그만큼 접착력도 약하게 설계된다. 접착력이 약한 게 결함이 아니라 재사용을 위한 조건이다. 마스킹테이프도 비슷한 논리로 잘 떨어지도록 설계된 테이프다. 접착력을 낮추는 방향의 설계가 이쪽 업계에서는 드물지 않다.
그래서 포스트잇을 오래 쓰려면
포스트잇 점착력을 오래 유지하려면 답은 간단하다. 먼지 없는 깨끗한 면에, 너무 여러 번 반복해서 붙였다 떼지 않는 것이다. 매번 다른 자리에 옮겨 붙이는 용도라면 마이크로구체 방식이 딱 맞다. 반대로 한 자리에 오래, 강하게 고정해 둘 메모라면 포스트잇보다는 딱풀 같은 일반 접착제 쪽이 낫다. 접착력이 약한 게 포스트잇의 단점이 아니라 태생적인 설계 조건이라는 걸 알고 나면, 몇 달 방치한 뭉치가 힘없이 떨어져도 억울할 일은 아니다.
포스트잇 한 장 다시 붙여보겠다고 자정 넘어서까지 접착제 특허 문서를 뒤졌다. 원래는 서랍 정리 10분짜리였는데, 결국 반데르발스 힘이라는 단어까지 배우고 나서야 끝났다(남는 장사인지는 아직 계산 중이다). 다음엔 스카치테이프가 왜 그렇게 세게 붙는지가 궁금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