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회의 메모를 찾겠다고 노트를 앞에서부터 넘기다가, 같은 페이지를 세 번째 지나쳤다. 분명 이 노트에 적었는데 어느 쪽인지가 기억나지 않았다. 페이지 번호 하나만 적어 뒀어도 금방 끝났을 일이다.
다이어리 페이지 번호가 처음부터 인쇄돼 있는 노트와 내가 직접 번호를 써야 하는 노트는 무엇이 다를까. 결론부터 말하면 번호는 내용의 주소일 뿐이고, 그 주소를 모아 적는 인덱스는 어느 쪽이든 내가 써야 한다. 갈리는 건 주소가 생기는 시점이다. 인쇄형은 제조 단계에서 미리 깔려 있고, 수기형은 쓰는 사람이 채운다. 이 글은 그 차이가 인덱스를 얼마나 쓸 만하게 만드는지 공개된 자료로 따져 본다.
페이지 번호는 왜 필요한가, 내용에 붙이는 주소
페이지 번호가 하는 일은 하나, 특정 쪽을 가리킬 수 있게 만드는 것이다. 위키백과의 페이지 번호 항목도 번호가 있어야 문서의 특정 쪽을 인용할 수 있고 독자가 원하는 부분을 찾기 쉬워진다고 설명한다.
인덱스는 그 주소를 한 장에 모아 둔 목록이다. 불렛저널 공식 안내는 노트 앞쪽 몇 쪽을 비워 "Index"라고 이름 붙이고, 새 주제를 쓸 때마다 주제와 쪽 번호를 적으라고 한다. 예시는 "New Zealand Trip: 5-10, 23, 34-39"처럼, 한 주제가 노트 여기저기 흩어져 있어도 한 줄에 모아 준다. 번호가 없으면 이 줄을 쓸 수가 없다. 주소 없는 주소록은 없으니까.
책에는 오래된 관례도 하나 있다. 1쪽과 모든 홀수 쪽은 오른쪽 면이고, 짝수 쪽은 왼쪽 면이다(미시간주립대 도서관 자료). 이 관례를 따르면 노트를 펼쳤을 때 왼쪽 짝수와 오른쪽 홀수가 한 쌍으로 보인다.
번호가 인쇄된 노트, 인덱스 자리까지 만들어져 있다
인쇄형 노트는 모든 쪽에 번호가 미리 찍혀 있어서, 아직 안 쓴 쪽도 주소를 갖고 있다. 로이텀1917(Leuchtturm1917)의 A5 하드커버는 공식 페이지에서 번호가 매겨진 251쪽에 빈 목차 페이지를 갖췄다고 소개한다. 같은 판형 소프트커버는 123쪽이다.
인쇄형의 강점은 구조에서 나온다. 번호가 제조 단계에서 찍히니 구조상 빠지거나 겹치는 쪽이 생기지 않고, 인덱스에 적을 주소를 만드느라 시간을 쓸 일이 없다. 목차 페이지도 앞쪽에 마련돼 있어서 인덱스를 어디에 쓸지 고민할 필요가 없다.
한계도 같은 구조에서 나온다. 번호는 자동이지만 목차 페이지는 비어 있다. 번호가 인쇄돼 있으면 찾기가 알아서 쉬워질 거라고 기대하기 쉬운데, 번호는 주소일 뿐이라서 주소록은 결국 내가 쓴다.
번호를 직접 쓰는 노트, 쓰는 만큼만 주소가 생긴다
번호가 없는 무지 노트는 쓰는 사람이 주소를 만든다. 공식 안내가 정해 주는 건 인덱스 자리뿐이고, 앞쪽 몇 쪽을 비워 두라는 것이 전부다. 인디애나대 도서관 안내는 노트 앞쪽 네 쪽에 1번부터 4번까지 번호를 쓰고 "Index"라고 적는 것으로 시작한다.

수기형의 첫 규칙은 번호를 미루지 않는 것이다. 번호 매기는 요령을 정리한 글은 노트를 쓰는 만큼 그때그때 적으라고 권한다. 미루면 밀린 쪽이 쌓이고, 몰아서 매기는 사이에 실수가 끼기 때문이다. (번호 쓰는 수고를 아끼려다 나중에 찾는 데 더 큰 수고를 쓰는 건 이 바닥의 오랜 전통이다.)
요령도 하나 있다. 짝수만 쓰는 것이다. 마주 보는 두 쪽은 짝수 하나와 홀수 하나라서, 짝수만 써도 모든 펼침면에 번호가 하나씩은 남고 옆 쪽은 하나 더하거나 빼면 나온다. 번호 쓰는 횟수가 절반으로 줄어든다.
수기형에는 장점도 있다. 안 쓴 쪽에는 번호가 없으니 쓴 데까지만 매기면 되고, 인덱스에 몇 쪽을 쓸지도 내가 정한다. 번호가 주소 노릇을 하면 인덱스 말고도 쓸 데가 생긴다. 이어지는 내용이 다른 쪽에 있을 때 그 쪽 번호를 적어 두는 것이다. 불렛저널 쪽에서는 이렇게 관련 쪽끼리 번호로 잇는 방식을 스레딩(threading)이라고 부른다. 대신 이 자유의 값은 내가 치른다. 빼먹은 번호와 밀린 번호다.
인쇄형과 수기형 비교, 인덱스가 작동하는 조건
두 방식을 표 하나로 모았다. 표를 만들어야 직성이 풀리는 성격 탓이다.
| 비교 항목 | 인쇄형 | 수기형 |
|---|---|---|
| 번호가 생기는 시점 | 제조 단계, 모든 쪽 | 쓰는 사람이 쓸 때 |
| 안 쓴 쪽의 번호 | 있음 | 없음 |
| 번호 쓰는 수고 | 없음 | 쓰는 만큼 (짝수만 쓰면 절반) |
| 번호 누락 위험 | 구조상 없음 | 미루면 생김 |
| 인덱스 자리 | 목차 페이지가 마련돼 있음 | 앞쪽을 비워 직접 확보 |
| 인덱스 내용을 채우는 일 | 내가 함 | 내가 함 |
표의 마지막 줄이 이 글의 요점이다. 번호가 인쇄돼 있든 아니든 인덱스를 채우는 건 내 일이다. 차이는 그 앞 단계, 주소를 만드는 수고를 제조사가 대신했느냐 내가 치르느냐에 있다. 그리고 그 수고는 작은 편이다. 짝수만 써도 되고, 쓰는 순간에 하나씩 적으면 되니까.
어떤 노트를 고를까, 인덱스를 쓸 사람만 번호를 따진다
주제별로 흩어 적고 나중에 모아서 찾아야 하는 사람에게는 인쇄형이 손이 덜 간다. 불렛저널 쓰는 법처럼 인덱스가 핵심인 기록법이라면 번호와 목차 자리가 미리 있는 쪽이 시작 장벽이 낮다.
이미 쓰고 있는 무지 노트가 있는데 인덱스를 시작하고 싶다면 노트를 바꿀 이유는 없다. 앞쪽 몇 쪽을 비우고, 쓰는 만큼 짝수 번호만 적어 나가면 인쇄형과 같은 구조가 된다.
번호를 따질 필요가 없는 사람도 있다. 날짜순으로만 쓰고 나중에 주제로 되돌아가 찾을 일이 없다면, 특히 날짜가 인쇄된 다이어리라면 날짜가 이미 주소다. 이런 노트에서 페이지 번호는 장식에 가깝다. 옆면의 인덱스 탭이 필요한지도 같은 기준으로 갈린다. 되돌아가 찾을 일이 없으면 탭도 필요 없다.
이 글을 쓰면서 제일 오래 걸린 건 '짝수만 써도 되는 이유'를 확인하는 일이었다. 알고 나니 너무 당연해서 머쓱했다. 다음으로 궁금한 건 책이 왜 1쪽을 오른쪽 면에서 시작하게 됐는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