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보드 뒤쪽 다리를 세우는 건 거의 반사 동작이다. 당신 키보드의 다리도 지금 세워져 있을 확률이 높다. 그런데 사무용 키보드 트레이 스펙표를 넘기다가 이상한 숫자를 만났다. 기울기 0도에서 -15도. 키보드를 뒤쪽이 낮아지는 방향으로 15도까지 기울이게 만들어 놨다는 뜻이다. 우리가 다리를 세우는 동안 제조사는 반대 방향을 준비하고 있었다.
이 글은 키보드 트레이의 각도 조절이 손목 각도를 어떻게 바꾸는지, 그 조절 구조가 제품마다 어떻게 다른지를 공개 자료로 정리한 것이다. 결론부터 말하면 기준은 트레이의 각도 자체가 아니라 아래팔과 손등이 일직선이 되느냐다.

키보드 기울기가 손목 각도에 미치는 영향
키보드 뒤쪽이 올라가 있으면 손이 그 경사를 따라 위로 젖혀진다. 미국 OSHA 의 컴퓨터 작업대 안내는 키보드 뒷다리를 펴거나 자판면 설계 각도가 가파르면 손목이 위로 꺾일 수 있다고 적고, 다리가 손목을 더 꺾이게 하면 쓰지 말라고 한다. 이렇게 손을 위로 젖히는 자세를 손목 신전이라 부른다. 코넬대 인간공학 연구실은 대부분의 키보드가 앞에서 뒤로 올라가는 경사라 신전이 생기기 쉽고, 손이 약 15도를 넘게 젖혀지면 손목 안 신경과 조직이 받는 압박이 크게 늘어난다고 설명한다.
다만 꺾이는 정도는 키보드 각도 하나로 정해지지 않는다. 아래팔과 자판면이 이루는 각이 정한다. 아래팔이 수평인데 키보드만 뒤가 높으면 손목이 위로 꺾이고, 키보드가 팔꿈치보다 낮아 아래팔이 비스듬히 내려가면 키보드도 같이 내리막이어야 손목이 곧다. OSHA 가 키보드가 높은 사람은 뒤를, 낮은 사람은 앞을 올리라고 나눠 말하는 이유다.
키보드 트레이에서 음의 기울기를 쓰는 이유
트레이를 팔꿈치보다 낮게 내리면 아래팔이 내려가는 방향을 따라 키보드도 뒤가 낮게 기운다. 이것이 음의 기울기다. 코넬대 안내는 키보드를 팔꿈치보다 낮은, 허벅지 위 1에서 2인치(약 2.5에서 5cm) 높이에 두고 트레이를 허벅지 각도를 따라 살짝 내리막으로 기울이라고 권한다. 허벅지가 기운 정도는 의자 높이와 발 위치에 따라 달라진다(발 쪽 사정은 발받침 각도와 앉은 자세 글에서 따로 다뤘다).
트레이가 필요한 경우도 정해져 있다. OSHA 는 책상이나 의자 높이를 제대로 조절할 수 없을 때 트레이가 필요할 수 있다고 하고, 그 트레이는 높이와 기울기를 모두 조절할 수 있어야 한다고 적었다.
키보드 트레이 각도 조절 구조, 제품별 차이
조절 구조는 기울기 범위, 조절 방식, 각도 표시에서 갈린다. 범위부터 다르다. Humanscale 5G·6G 는 0도에서 -15도이고, 공식 페이지에 양의 기울기로는 넘어가지 않는다고 적혀 있다. Workrite 표준 트레이 2151 은 -15도에서 +10도인데, 판매처 안내에는 양의 기울기를 막아 -6도에서 -15도로 묶는 잠금 키트가 옵션으로 있고 양의 기울기는 인간공학자들이 권하지 않는다고 쓰여 있다. 3M AKT90LE 는 판매처 스펙상 -15도에서 +15도를 다 열어 둔다. 트레이에서는 음의 방향이 기본값이라는 쪽으로 자료가 모인다.
방식과 표시도 다르다. 판매처 설명으로 Humanscale 5G·6G 는 노브나 레버를 풀고 잠글 필요 없는 다이얼이고 각도 기준 표시가 있다. 같은 회사의 2G 는 노브로 조절하고 그 표시가 없다. Ergotron Neo-Flex 97-582 는 판매처 스펙표에 기울기 조절 폭 15도, 노브 하나로 높이와 기울기를 조절한다고 나온다. 하중은 최대 1.4kg 이다(제조사 공식 페이지는 접속이 막혀 판매처 두 곳에서 같은 값을 확인했다). 키보드에도 체중이 있다는 걸 이번에 처음 스펙표로 배웠다.
키보드 트레이를 달아도 손목이 안 펴지는 경우
트레이를 다는 것만으로는 손목이 곧아지지 않는다. 코넬대 연구진이 숙련 타이피스트 6명으로 한 1997년 예비 실험이 그렇다. 일반 키보드는 음의 기울기 트레이에서 손목 신전이 가장 낮았다(왼손 2도, 오른손 -2도). 분리형 키보드는 책상 위가 왼손 7도, 오른손 -1도였는데 평평한 트레이에서는 20도와 10도, 음의 기울기 트레이에서는 15도와 7도였다. 책상 위에서는 팔을 앞으로 뻗어 아래팔이 위를 향한 덕에 손목이 곧아졌다는 것이 연구진의 해석이다. 앞서 본 아래팔과 자판면의 각도 이야기가 그대로 나온다.
마우스도 변수였다. 평평한 트레이의 낮은 마우스 판에서는 손목 신전이 평균 25도를 넘었고 책상 위에서는 8도 미만이었다. 트레이 옆으로 손을 아래로 뻗은 탓이라고 연구진은 봤다.
이 실험은 6명 규모의 예비 실험이고 연구진 스스로 확정적이지 않다고 적었다. 숫자보다 방향을 읽어야 한다. 이 자료들이 다루는 건 각도까지이고, 트레이가 통증을 낫게 한다는 근거는 여기 없다.
키보드 트레이가 필요한 사람, 필요 없는 사람
필요한 사람은 책상과 의자 높이를 못 바꿔서 키보드가 팔꿈치보다 높아지는 사람이다. 이때 스펙표에서 볼 것은 음의 방향으로 15도까지 내려가는지, 각도를 눈으로 읽을 수 있는지, 하중이 키보드와 마우스 판을 버티는지다. 반대로 책상 높이가 이미 팔꿈치와 맞고 손목이 곧다면 트레이는 없어도 된다. 높이만 맞추면 되는 그 경우는 팜레스트 높이와 손목 각도 글의 원리와 같다.
트레이 스펙표를 읽다가 정작 궁금해진 건 책상 자체의 높이를 바꾸는 쪽이다. 전동과 수동 스탠딩데스크는 무엇이 다른지, 다음 검색어는 벌써 정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