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상 끝에 자주 꺼내 보는 책 일곱 권을 세워 뒀다. 며칠은 꼿꼿했다. 한 권을 빼서 읽고 다시 꽂으러 갔더니 남은 여섯 권이 일제히 사선으로 누워 있었다. 도미노가 쓰러지다 만 각도였다. 밀어 세우면 이번에는 반대쪽으로 기운다. 세 번 반복하고서야 인정했다. 이건 책의 문제가 아니라 구조의 문제다.

북엔드를 검색하다가 더 앞의 것이 궁금해졌다. 책은 왜 꼭 쓰러지는가. 그리고 어떤 북엔드는 종잇장 같은 철판 한 장인데 어떻게 수십 권을 버티는가. 이 글은 책이 쓰러지는 이유와 L자 북엔드가 책 무게를 빌려 버티는 원리, 높이·무게·바닥 마찰로 고르는 기준을 도서관 보존 지침과 판매 자료 기준으로 정리한다.

책이 쓰러지는 이유: 받침은 좁고 무게중심은 높다

세운 책이 쓰러지는 이유는 받침이 좁아서다. 무게중심은 물체의 무게가 그 한 점에 모여 있다고 쳐도 되는 지점을 말하는데, 서 있는 물체는 이 점이 바닥에 닿은 면 바깥으로 나가는 순간 넘어진다. 단행본이 바닥에 닿는 폭은 책 두께인 2cm 안팎, 높이는 20cm를 넘는다. 받침 대 높이가 1 대 10이다. 몇 도만 기울어도 무게중심이 받침을 벗어난다. 홀로 선 책은 사실 곡예 중이다.

여러 권을 나란히 세우면 서로 기대며 버티니 사정이 조금 낫다. 대신 기댄 책들은 줄 끝 방향으로 미는 수평 힘을 만들고, 그 힘은 맨 끝 책에 몽땅 쌓인다. 끝 책이 밀리면 줄 전체가 차례로 눕는다. 한 권을 빼면 이 균형이 새로 짜이고, 남은 책들은 새 각도로 무너진다.

기운 채로 두는 것이 미관 문제만도 아니다. 워싱턴대 도서관의 자료 보관 지침은 책을 기울인 채 꽂아 두지 말라고 못 박는다. 제본에서 가장 약한 곳이 표지와 속지가 만나는 이음매(경첩이라고 부른다)인데, 기운 자세에서는 중력이 속지를 이 이음매에서 떼어 내는 쪽으로 당긴다. 오래 기울어 있던 책이 표지를 잡으면 덜렁거리게 되는 이유다.

L자 북엔드의 원리: 책 무게가 북엔드를 고정한다

철판 북엔드가 버티는 비밀은 세로판이 아니라 바닥판에 있다. L자의 짧은 변을 책 밑에 깔면 그 위에 올라선 책들의 무게가 북엔드를 책상에 눌러 준다. 물체가 미끄러지려 할 때 접촉면에서 버티는 힘이 마찰력이고, 마찰력은 대체로 바닥을 누르는 힘에 비례해 커진다. 책이 무겁게 올라탈수록 북엔드는 더 세게 고정된다. 기대는 책이 미는 힘도 커지지만, 눌러 주는 힘이 같이 커지는 구조다.

이 설계는 좀 감동적인 데가 있다. 책이 자기 무게로 자기를 지킨다. 이 철판 구조는 1877년 윌리엄 스테빈스 바너드의 특허 이후 형태가 거의 변하지 않았다. 150년 가까이 고칠 것이 없었다는 뜻이다.

책 무게가 L자 북엔드 바닥판을 눌러 마찰력을 만드는 힘의 방향을 그린 단면 모식도
L자 북엔드가 버티는 힘의 구조 모식도

약점도 같은 구조에서 나온다. 바닥판을 눌러 줄 책이 없으면 이 북엔드는 그냥 가벼운 철판이다. 꽂힌 책을 하나씩 빼다 보면 어느 순간 전체가 헐거워지는 경험, 아마 있을 것이다. 바닥판에 남은 책이 한두 권이 되면 누르는 힘이 모자라 북엔드째 미끄러진다.

무게형과 와이어형 북엔드: 구조가 다르면 약점도 다르다

바닥판 없이 버티는 무게형 북엔드는 자기 몸무게가 전부다. 주물과 대리석 장식형이 여기 속한다. 책 무게를 빌릴 수 없으니 기준은 순수하게 질량이다. 해외 북엔드 가이드는 지탱할 책 전체 무게의 20% 이상을 권하고, 일반 단행본 위주면 한 짝에 0.91.4kg, 두꺼운 전공서나 화집이면 1.42.3kg급을 잡으라고 안내한다. 손에 들어 묵직해야 하한선이라는 얘기다.

무게형의 함정은 바닥이다. 무게가 충분해도 유리나 하이그로시처럼 매끈한 상판에서는 밀린다. 마찰력은 누르는 힘에 표면 궁합을 곱한 값이라서다(같은 무게라도 고무판과 유리판 위의 버티는 힘은 다르다). 그래서 가이드들은 고무나 코르크 패드가 붙은 바닥을 권하고, 패드가 눌려 납작해지면 6~12개월 주기로 갈라고 적는다. 매끈한 상판에서 자꾸 미끄러지는 문제라면 데스크매트 소재 비교에서 다룬 표면 이야기와 뿌리가 같다.

흰 책 두 권을 받쳐 세운 짙은 녹색 대리석 북엔드
무게형 북엔드, 질량이 곧 스펙이다

위 선반에 걸쳐 아래로 내려오는 와이어형도 있다. 도서관 지침이 콕 집어 경계하는 유형이다. 와이어와 선반 바닥 사이가 뜨기 쉬워서, 책이 그 밑으로 미끄러져 들어가 기운 자세로 갇힌다. 어디든 걸 수 있는 편리함과 맞바꾼 것이 지지력이다.

L자 철판형과 무게형, 와이어형 북엔드의 지지 방식과 약점을 비교한 모식도
북엔드 세 유형의 지지 구조 비교 모식도

북엔드 고르는 기준: 높이 절반, 무게 20%, 바닥 패드

스펙에서 확인할 것은 셋으로 압축된다. 첫째는 높이다. 도서관 기준은 책 높이의 절반을 넘는 지지대다. 절반 아래만 받치면 책 윗부분이 북엔드 너머로 꺾여 넘어온다. 책상용은 반대로 15cm를 넘으면 손과 시야에 걸린다는 조언이 붙는다. 둘째는 무게와 바닥이다. 무게형이면 책 무게의 20% 룰과 논슬립 패드 여부를 보고, L자형이면 바닥판이 책 두세 권은 올라탈 깊이인지를 본다. 셋째는 수량 계획이다. 한 쌍이 감당하는 권수를 가이드들은 12~15권 선으로 잡는다. 그보다 길게 꽂으면 가운데부터 처지며 기울기 시작한다.

무게가 필요한 자리인지 마찰이 필요한 자리인지만 구분해도 절반은 고른 셈이다. 책상 위 구조물의 하중 이야기는 모니터암 하중 글에서 킬로그램 단위로 따져 봤다.

북엔드가 필요 없는 경우부터: 상황별 선택 정리

먼저 필요 없는 경우다. 꽉 찬 책장에는 북엔드가 필요 없다. 책끼리 서로 지탱하기 때문이고, 도서관 지침도 북엔드를 덜 찬 선반에 쓰는 물건으로 규정한다. 빽빽한 선반에 북엔드까지 밀어 넣으면 오히려 뺄 때마다 책등 위쪽을 당기게 되어 제본이 상한다.

책상 위에 자주 꺼내는 책 몇 권을 두는 쪽이라면 L자 철판형이 합리적이다. 싸고 가볍고, 책 무게를 빌리는 원리 덕에 서너 권만 올라가도 충분히 버틴다. 두껍고 무거운 책을 소수만 세워 두거나 상판이 매끈하다면 논슬립 패드가 붙은 무게형이 맞다. 장식을 겸하려면 역시 무게형이다. 와이어형은 상시 지지대보다 임시용으로 쓰는 편이 안전하다. 책이 아니라 서류를 세우고 싶다면 그건 북엔드가 아니라 서류 트레이 수직형의 영역이다.

책 일곱 권 세우자고 대학 도서관 보존 지침까지 읽었다. 지침에는 책을 눕혀 쌓아 두지 말라는 조항도 있었다. 지금 내 책상 왼쪽 구석에는 책 다섯 권이 눕혀 쌓여 있다. 오른쪽 일곱 권부터 해결하고 나서 생각하기로 한다.